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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Sep 28. 2023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린다.

- 존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도종환 ‘화인’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린다.

       - 존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도종환 화인’    

                            

   학생들과 영화 ‘어벤져스 엔드 게임’을 보러 갔다. 영화를 보는 동안 영국의 성직자이자 시인인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만물이 같은 영혼의 다른 모습이듯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아프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영화관람 후 학생들에게 영화의 첫 장면을 물어보았다.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마블 영화 특성과 영상 세대들에게는 인물의 서사보다는 화려한 영상과 시원한 액션에 더  익숙하니까. 그래서인지 어벤져스 영웅들이 총출동하는 액션 장면이 등장하기 전 1시간 동안 영화가 너무 지루해서 잠을 잤다거나 재미없었다는 평이 꽤 많았다.

  첫 장면은 한 가족이 공원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중에 한 순간에 흔적도 없이 아내와 아들과 딸이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놀라고 당황한 모습으로 넓은 공원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진 가족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주위는 어떤 소리도 없이 소름 끼치게 고요할 뿐이다. 매우 끔찍한 장면이다. 만약에 실제 상황이고 내가 당사자였다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첫 장면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예술의 좋은 점은 경험의 한계를 지닌 인간이 예술을 통해 역지사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고전소설의 홍길동이나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다. 시·공간을 초월할 수 없어 경험치가 한정되어 있다. 사유의 범위 또한 자기 경험 안에서 주로 결정된다. 경험치의 한계로 인해 좁고 얕은 사고의 틀에 갇힐 수도 있는 우리는 예술을 통해 간접 경험해 봄으로써 사고와 감성의 폭과 깊이를 확장할 수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는 순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우리 국민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슬픔을 안겨주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2014년 4월 16일이 생생하게 다가왔고 동시에 존 던의 시와 도종환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물속으로 사라진 300명의 학생은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한 학년 전체 300명과 동일했다. 이처럼 끔찍하고 비극적인 일이 또 있을까?

  세월호 사건 이후 국민들은 분노하고 절망하며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영화 속 살아남은 어벤저스 영웅들도 타노스를 막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분노하고 절망한다. 그들의 흔들리는 일상을 영화 전반부 1시간 가까이 할애해 자세히 보여준다. 화려한 액션과 멋진 영웅들의 볼거리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실망하며 지루해한다.

  어떤 영웅은 분노와 좌절감에 파묻혀 살찐 거구의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어떤 영웅은 눈물을 흘리며 정신과 상담을 받고, 어떤 영웅은 닌자가 되어 범죄자들을 죽이는 데에 쏟아내고, 어떤 영웅은 태연한 척 평범한 가장 노릇을 하며 일상을 견딘다. 그렇게 좌절했던 그들은 다시 모여 불가능한 일에 도전한다. 지구 절반의 사라진 사람들을 살려내기 위해 정말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 결국 그들은 승리하고 먼지처럼 사라졌던 사람들, 지구 절반의 사람들을 다시 살려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도 저렇게 시간을 되돌려 그 아이들을 살려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 사건 이후 몇 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왜 아직도 그 일을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일까? 왜 해마다 노란 리본을 달며 ‘기억하자 416’이라고 쓰며 잊지 말자고 하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어벤져스들은 왜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잊지 못할까? 왜 저렇게 기를 쓰고 그들을 살려내려 죽을힘을 다할까? 실상 자기 일도 아니지 않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있는 듯하다. 존 던이 살았던 17세기 영국 런던에서는 마을에서 사람이 죽으면 교회당의 종을 치는 풍습이 있었다. 종소리가 들리면 귀족들은 하인을 시켜 누가 죽었는지 알아 오게 했다. 귀족들은 죽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장례식에 참석할지 말지를 판단했다고 한다. 인류애를 중시했던 존 던은 시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지를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린다.’라고 말한다. 귀족들에게 ‘어떤 이의 죽음도 사소하지 않으며 우리 모두가 소중한 인류다’라고 깨우침을 주고 있다.      


   1936년 스페인에서 프랑코 군부 독재자가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이 일어났다. 당시 스페인과 전혀 상관이 없는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스페인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헤밍웨이, 조지 오웰 등 유명한 작가, 시인들도 부당함과 불의에 저항하기 위해 의용군으로 지원했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남의 나라 내전에 왜 자발적으로 지원했을까? 돈 한 푼 받지 못하는 전쟁터에 참여하여 왜 목숨 걸고 싸웠을까?  어벤져스 영웅들은 마치 스페인 내전에 지원한 의용군과 닮았다. 의용군들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정의를 위해 싸웠다. 자기 가족 일도 아니고 심지어 남의 나라 일임에도 불의한 현실을 용납할 수 없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아직도 세월호 사건을 잊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그날을 기억하고자 하는 평범한 우리 시민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 인간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세계의 일부이며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너의 뿌리는 나의 뿌리이며, 나 또한 너의 뿌리’라는 『華嚴經 화엄경』의 말씀과 존 던의 시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라는 구절은 서로 맞닿아 있다.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라는 『維摩經 유마경』의 말씀은 드라마 속 애달픈 연인 사이에서만 오가는 낭만적인 대화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내 가족과 친구가 아니어도, 모르는 사람이어도, 누군가의 비극적인 죽음은 우리를 아프게 한다. 존 던의 시가 알려주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같은 인류이니까.     

 

   이것은 비단 인간들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연에도 확장된다. 4대강 사업은 대운하로 이름을 바꾼 채 죽어가는 강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멀쩡한 강바닥을 파헤쳐 콘크리트를 들이붓고 자연을 훼손했다. 아이들은 4대강 이전의 나주 영산강의 동섬 사진과 4대강 사업 이후의 동섬 사진을 함께 제시하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며 인상을 찌푸린다. “와, 미쳤다!”고나 “어른들은 왜 그래요?”라고 탄성을 내지르는 아이들도 있다.  

   영산강의 동섬은 김소월 시인의 시 ‘엄마야 누나야’의 배경이 된 곳으로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고 환상적인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곳이었다. 강이 더러워져 강을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굽이굽이 곡선을 그리며 흐르던 물길을 끊고 강바닥을 파내고 시멘트를 발랐다. 누군가는 경제적 가치를 높이고 부를 창출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필요보다는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아름다운 자연과 강과 산을 줄어들게 한다.

   오늘도 존 던의 시를 읽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에 대하여 생각한다. 인간에게 아무 조건 없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물고기 한 마리,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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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존 던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만일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은 그만큼 줄어든다. 만일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 그대의 친구나 그대의 영토가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줄어들게 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지를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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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인(火印)

                           도종환       

   

비 올 바람이 숲을 훑고 지나가자

마른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떨어져 내렸다

오후에는 먼저 온 빗줄기가

노랑붓꽃 꽃잎 위에 후드득 떨어지고

검은등뻐꾸기는 진종일 울었다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오는 동안 내내 아팠다

자식 잃은 많은 이들이 바닷가로 몰려가 쓰러지고

그것을 지켜보던 등대도

그들을 부축하던 이들도 슬피 울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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