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나라가 되기를
- 신동엽 '산문시1'
나는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신동엽 ‘산문시1’
신동엽 시인의 시 ‘산문시1’을 처음 읽던 날,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국무총리에서 광부, 농부들까지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나라의 모습이 평화로웠다.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 극작가 이름은 알고 퇴근길 광부의 뒷주머니에 꽂혀 있는 시집, 소설책, 철학책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순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었다. 신동엽 시인이 꿈꾸던 이상적인 나라의 모습과 백범 김구가 바라던 문화 강대국의 모습은 닮았다. 오랜 식민지 시기를 거쳐 광복되고 난 후, 백범 김구 선생은 이런 나라를 갖기를 소망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후략)
- 백범 김구 [내가 원하는 나라], 1947
나는 우리나라 어른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문학을 얘기하고 토론했으면 좋겠다. 모여서 일상적인 수다를 떠는 것도 좋지만, 시와 소설을 읽고 그림을 보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나는 학생들이 시를 읊고 소설을 읽고 토론했으면 좋겠다. 자신과 친구를 알아가고 인간과 세계에 대하여 질문을 던졌으면 좋겠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문화적 경험을 하고 토론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서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어른들이, 가정과 학교 그리고 정부가 다 함께 노력해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주 5일제가 시행되기 전, 2000년대 초반 토요일 전일제 동아리를 할 때의 일이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아이들이 많았다.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을 통해 문화적으로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기를 바랐다. ‘문화탐방반’ 동아리를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서울 여기저기를 다녔다. 예술의 전당 전시회 관람, 시립 미술관과 인사동 갤러리 탐방, 삼성 코엑스 전시관 관람, 대학로 연극과 뮤지컬 관람, 경복궁과 창덕궁 등의 궁 탐방, 짚풀생활사 박물관 체험 등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런데 외부 활동을 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말이 동아리지, 교사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학생 수가 30명이나 된다. 교사 혼자서 많은 학생을 데리고 외부 활동을 하는 일이 쉽지 않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날 때 교사 혼자서 대처해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져야 한다. 또한 교장 선생님도 사고의 위험성과 그 책임에 대한 부담감에 교사들이 외부 활동보다는 교내에서 조용히 활동하기를 원한다. 그분들을 매번 설득하다 보면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힘이 다 빠진다.
처음 인사동에 학생들을 데리고 갔을 때, 미술관 앞에서 아이들은 순간 멈칫한다. 나의 목적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아이들이 낯선 경험 앞에서 주눅 들지 않기를 바랐다. 무심히 미술관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작품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랐다.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냥 자신의 느낌 그대로 느끼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냥 보면서 그림과 친해지길 바랐다. 그러다가 자신의 흥미를 발견하고 더 발전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라고 여겼다.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에 쭈뼛쭈뼛하며 주위를 의식하며 눈치를 보며 나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던 학생들이 두 번, 세 번 다른 미술관을 방문하면서 스스럼없이 미술관 안을 다니며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미술과 예술이 결코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체득해 나갔다.
전시회를 가기 전에 미술책으로 그림을 보는 것과 미술관에 가서 직접 원화(실제 작품)를 보는 것은 천지 차이라고 말해 주었다. 아이들은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실제 원화를 넋 놓고 보고 있던 한 여학생이 ‘선생님 말씀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 그림 훔쳐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해맑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이후로도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그림과 로댕의 조각들, 진시황 무덤에서 발굴한 진용을 보며 아이들은 놀라워했다.
문화 동아리이다 보니 남학생이 3명밖에 되지 않았다. 항상 냉소적인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따라다녔던 남학생이 한 명 있었다. 2년이 지나 졸업을 앞 둔 그 남학생이 찾아와 동아리 활동 중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고 조용히 말하고 가기도 했다. 토요일 온종일을 교육 활동에 힘을 다 쏟아 몸은 지쳤지만 그 말 한 마디에 몸이 가벼워졌다.
2024년 현재 우리나라의 예체능 교육은 말하기 창피한 수준이다. 아직도 학급당 학생 수가 30이 넘는 현실에서 악기 하나, 운동 종목 하나 제대로 배우고 익히지 못한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아마추어 수준급의 농구를 할 수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 학생들은 여전히 운동 종목 하나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학교를 졸업한다. 물론 스포츠클럽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전문 강사가 종목별로 지원되지 않는다. 체육과 전혀 상관없이 수업 시수가 적은 교과 교사가 그 수업을 담당한다. 학생 수도 28명이나 되어 담당 교사도 부담이다. 심지어 어떤 종목은 운동할 공간도 없다. 좁은 빈 교실이나 비좁은 시청각실 한 켠에서 요가를 하기도 한다.
국어 교사인 내가 매주 1시간씩, 28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데리고 배드민턴이나 탁구를 가르쳤다. 탁구의 기본도 모르고 경기 규칙이나 방법도 모르는데 말이다. 체육관도 비좁아 28명이 한꺼번에 배트민턴을 할 수도 없다. 수업 시간 45분 동안, 20분씩 나눠서 학생들 중 반 14명은 운동하고 나머지 반은 20분 동안 쉰다. 14명도 좁은 체육관에서는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 또한 운동에 대한 흥미를 갖기 힘들고 열의를 갖고 참여하려는 의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운동신경이 나쁘지 않고 배드민턴을 치는 것도 좋아해서 학생들을 움직이게 하려고 노력한다. 매시간 학생들과 직접 탁구를 치고 배드민턴을 치며 활력을 넣어준다. 그러나 교사 개인의 역량에 수업의 질을 맡기기에는 역부족이고 그 시간들이 아깝다. 예체능 수업이 좀 더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도록 현장에 대한 정부와 교육부 그리고 교육청의 고민이 더 있어야 한다.
나는 정말 학생들이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풍성한 경험을 하며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 경험을 통해 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문화를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삶을 좀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적어도 학생들이 초, 중, 고등학교 학교 수업을 통해 악기 하나, 스포츠 종목 하나는 아마추어급 수준의 실력을 배울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교육부와 교육청이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들여 전문가들과 인프라를 구축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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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시 1
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 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