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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Sep 28. 2023

우리들의 모든 일상에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깃들기를

     - 폴 엘뤼아르 '자유'

   우리들의 모든 순간순간, 모든 일상에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깃들기를   

                     - 폴 엘뤼아르 자유          


  우리나라가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갈망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생겼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과 현대사를 공부했다. 친일과 독재, 4ㆍ19혁명, 제주 4ㆍ3사건,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학교 선배를 따라 처음 나간 시위 현장에서 만난 최루탄은 숨을 쉴 수가 없어 고통스러웠다. 전투경찰은 너무도 두렵고 무서웠다.

  시위 때마다 다치거나 죽는 사람은 부당함에 저항하는 힘없는 학생과 시민들이었다. 또한 권력자의 명령에 따라 시위를 진압해야 하는 힘없는 경찰들, 즉 모두가 서민의 자식들이었다.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권력자는 털끝 하나도 건들 수 없었기에, 그 사실이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났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어둠 속으로 침잠하는 기분이 들었다. 잘못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그들에게 우리의 목소리는 전달되지 않고 메아리처럼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민중가요가 내 머릿속에 맴돌곤 했다.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 타는 목마름으로 / 민주주의여 만세     


  김광석이 부르기도 했던 이 노래는 김지하 시인의 시 ‘타는 목마름’에 곡을 붙인 것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과 목마름을 이보다 더 정확하고 처절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희망이 보이지 않아 모든 것을 체념할 듯도 한데, 피를 토할 것 같은 절절한 염원과 열망이 터지기 일보 직전의 마그마처럼 내면 깊숙이 고집스럽게 박혀 있는 듯했다.

  서점에서 시를 뒤적이다가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자유’라는 시를 발견했을 때 참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 시는 엘뤼아르가 독일의 프랑스 점령에 저항해 레지스탕스 활동을 할 때 썼다.  당시 유럽 전역에 라디오와 낙하산을 통해 시가 전해지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와 자유.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자유를 억압당했을 때의 그 기분이 어떨지, 시를 읽으며 공유하고 싶었다. 학생들에게 “시 한 편 읽어 줄게, 제목 한번 맞혀볼래?”라고 하면서 읽어 준다.

   장시이지만 단어들을 반복적으로 나열하여 경쾌한 리듬감을 느끼게 한다. 장문의 시를 랩처럼 빠르게 읽어 나간다. 시를 다 낭송한 후, 학생들에게 제목을 맞춰보라고 한다. 학생들은 도무지 제목을 짐작할 수 없다며 힌트를 달라고 한다. 힌트를 줘도 맞추지 못한다. 답답한 나머지 제목을 빨리 알려달라고 재촉한다. 너희가 느끼는 이 답답한 느낌에 답이 있는데, 언제 제일 답답한지 한번 생각해보자고 한다. 갇혀 있을 때, 벽이 느껴질 때, 누군가와 대화하는데 말이 안 통할 때 등 학생들의 다양한 답변이 쏟아진다.

  시 제목을 ‘자유’라고 알려준다. 소소하고 소박한 일상에서 매 순간 살아 숨 쉬는 자유에 대한 꿈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폭력과 억압이 일상의 자유를 가둬 질식할 것만 같은 그 시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민주주의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분명 우리 사회는 정치적인 면에서는 많이 진일보했다. 하지만 이 시처럼 일상 곳곳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개인의 기호나 취향에 관한 선택과 결정에는 굉장히 너그럽고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직장에서 합리적이고 자유롭게 사고하며 소통하고 있는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교직 사회에서 일하다 보면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담임을 하다 보면 교사로서의 가치와 신념과 상관없이 학교, 학년 부의 지침대로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 위험을 줄이고 학생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칙과 절차가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교육적 가치와 철학 대신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모든 학급이 똑같이 지침을 지켜야 하는 것이 민주적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2000년대 중반 학생들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 상벌점제가 학교에서 시행됐다. 그린마일리지제도라고 해서 교사가 학생들의 행위를 관찰하여 상점과 벌점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한 번은 한 달에 1번씩 상점이 높은 아이에게 상품권 5천 원을 주는 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교육적 행위의 결과를 돈으로 치환하는 행위를 학교에서 한다는 일에 충격을 받았고 교육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제도를 활용하지 않았다.

  한 번은 복도에 쓰레기가 너무 많이 버려져 있어 복도를 지나가던 낯선 학생에게 쓰레기를 같이 줍자고 말을 걸었다. 그 학생이 흔쾌히 쓰레기를 주우면서 ‘저 상점 주실 거죠?’라고 묻는 말에 과연 우리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든 행위를 함에 있어 주고받기가 당연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 자신에게 이득이 없으면 수고로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우리 어른들.

  그 학생을 보며 웃으면서 ‘샘이랑 너랑 쓰레기를 같이 주우니 복도가 환해졌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더니 ‘그러네요.’라며 쓰레기를 줍고는 씩 웃고 지나간다.

  매번 이렇게 행복한 결말로만 끝나지 않는다. 지침대로 교사가 똑같이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동료 교사와 다른 반처럼 상점을 달라고 요구하는 학생들로 매번 고민이 됐다. 상품권 5천 원을 받아서 게임을 하고 싶은 학생들의 욕망은 그것을 부추기는 어른들에 의해 서로 경쟁적으로 친구들을 감시하고 고자질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교실에서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일도 서로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 해결하기보다는 벌점을 주기를 원했다.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벌점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합리적임을 강조했다.


  교육의 현장이 친구들과 같이 소통하고 배려하며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국가처럼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학급 친구들과의 우정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학급 친구들을 몰아세우는 모습은 교육의 본질과 멀어도 너무 멀었다. 상벌점제에 대한 폐해를 지켜볼 수 없어 교육청에 몇 년 동안 건의했다. 다행히 상벌점제가 사라지기는 했으나 혼자 거스르기에는 버거웠고 씁쓸했다.

  우리 어른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유로운 활동 속에 자유와 책임을 같이 배우며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가장 편하고 손쉬운 방식으로 아이들을 길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이들에게 어떤 외적 동기나 외적 보상을 쥐여주는 것보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의지, 즉 내적 동기를 끌어내 주어야 한다. 사람은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며 학생들을 파블로프의 개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내적 만족감, 행복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동하고 공동체주의와 획일적 집단주의를 혼동하고 있다. 남들과 똑같은 선택을 하면 일 처리가 훨씬 수월하다.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 돌발변수가 적고 공동책임을 질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 반면 나만 다른 방식을 선택하면 그 책임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일을 망칠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지우려 끊임없이 고민하고 일을 완벽히 처리해야 한다. 또한 ‘남들은 다 저렇게 하는데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왜 저 사람만 유난을 떨지?’라는 말을 듣거나 불편한 시선도 감내해야 한다.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일에 문제를 제기하면 꼭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당신만 따져요?’라는 말을 듣는다. 아마도 이 말 만큼 사람을 무섭고 외롭게 만드는 말은 없을 것이다. 꼭 나만 별나고 조직에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게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처럼 될까 봐 무섭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남들과 다른 방법을 선택하려고 할 때 두려움으로 주저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고 자유로운 사람들의 선택과 결정과 책임에 의해서 성숙해진다. 다양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견 속에 현재의 모순이 드러나고 갈등의 과정을 거쳐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한다. 타인과 조직의 시선 때문에 누구도 가보지 않는 길을 가보지 않는다면 어떠한 변화도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이 시를 다시 읽으며 우리들의 모든 순간순간, 모든 일상에서, 자유와 행복이 깃들기를 바란다. 정치, 경제, 언론의 민주주의와 함께 일상의 민주주의가 활짝 꽃피기를 바란다.    


-----------------------------------   

     자유

                   폴 엘뤼아르     


 나의 학습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상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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