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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Oct 03. 2023

‘여우난골족’의 즐거움과 ‘낡은 집’의 슬픔

- 백석 ‘여우난골족’,  이용악 ‘낡은 집’

   ‘여우난골족’의 즐거움과 ‘낡은 집’의 슬픔

          - 백석 ‘여우난골족’, 이용악 ‘낡은 집’         

 

   학생들에게 “시 좋아하니?”라고 질문을 하면 그럴 리가 있겠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서점에서 종일 시를 읽고 좋은 시집을 발견하면 설레는 마음으로 시집을 사거나 인터넷으로 주문해 놓고 퇴근 시간만을 기다린다고 하면 아이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본다. 시를 읽으며 울거나 웃은 경험이 있냐고 물어보면 동의하기 어렵다는 듯 황당해한다. 군침 도는 야식인 피자와 치킨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거나 게임기나 신발이 일찍 도착하기를 바라는 10대에게 책이라니 그저 나의 허황한 욕심일 것이다.

  교과서 수업을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하면 시를 친근하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오지선다에서 정답을 찾아내야 하는 시험에 익숙한 아이들, 성적과 경쟁 교육에 내몰린 아이들에게 시는 그저 시험 범위의 하나일 뿐이다. 국어 교사가 돼서 그렇게 아이들에게 시와 문학을 내동댕이치고 싶지는 않았다.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시가 얼마나 재미있고 감동을 주는지 삶에 얼마나 유용한지 아이들이 느꼈으면 했다.      


  그래서 새 학기에 처음 만나는 학생들과 반드시 하는 수업이 있다. 다양한 상황에 부닥친 인간의 심리와 정서를 다룬 시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일이다. 시를 읽어주고 제목을 맞추게 하거나 질문을 던지며 시와 친해지고 시에 흥미와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집에 있는 시집 중에서 10권을 엄선하여 종이책을 직접 보여준다.  직장에 다니며 가장 행복한 이유 중 하나가 명품은 관심 없는데, 돈 걱정 없이 책을 맘껏 살 수 있어서라고 얘기하면 아이들은 또 신기해한다. 시집을 산 연도와 날짜, 장소를 책 맨 첫 장에 기록한다고 하면 시집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10편의 시를 선정하여 하나씩 읽어주며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먼저 자유롭게 말하도록 한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를 유추해본다. 10편을 다 읽고 난 후 시(문학)가 무엇을 다룬 지 질문을 던져본다. 또한 시가 어떤 점에서 재미와 감동을 주는지, 시의 형식적 요소에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보게 한다.


   백석 시인의 시 ‘여우난골족’과 이용악 시인의 시 ‘낡은 집’은 읽어주며 퀴즈를 낸다. ‘여우난골족’은 대가족들이 오랜만에 설에 만나 보내는 흥겨운 하루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백석 시의 특징은 시인의 고향인 함경도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한다. 낯선 사투리 때문에 내용 이해가 조금 어렵긴 하지만 낯선 단어들의 나열 중에 재미있는 말들이 많다. 학생들은 웃음을 터트리고 재밌어한다.      

1. 명절날 여우난골 큰집에 모인 가족 수는 몇 명일까?

2. 과부이고 해변에서 사는 친척은 누구일까?

3. 가족들이 먹은 떡 종류는 무엇일까?

4. 명절날 먹은 음식 종류는(떡을 제외하고) 무엇일까?

5. 밥을 먹고 아이들이 놀았던 곳은 어디일까?

6. 아이들이 밖에서 무엇을 하고 놀았나?

7. 방에서 어른들은 주로 무엇을 하지?

8. 아이들은 방에서 무엇을 하고 놀았나?

9. 다음 날 아침에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국은 무슨 국일까?


   학생들은 퀴즈를 맞히기 위해 초집중하며 서로 맞히겠다고 손을 든다. 명절날 대가족이 모이다 보니 등장하는 인물 수가 많고 긴 수식어를 이용해 인물들의 특징을 재미있게 묘사하여 웃음이 절로 나게 한다. 명절날 모여 하는 일과도 생생하게 그렸다. 아이들은 모여서 먹고 놀고 또 놀고 잠들 때까지 논다. 어른들은 이야기꽃을 피운다.

  물론 요즘 아이들은 명절에 사촌들과 모여도 각자 게임만 하느라 이렇게 놀아본 경험이 없다고 말한다. 과거 아이들의 경험을 부러워하며 이런 놀이를 해 보고 싶다고 한다. 어른들이 명절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 시를 읽어 주며 이런 놀이를 해 본다면 즐겁고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다. 더불어 퀴즈도 내보고.

  시를 낭송할 때 일부러 속도를 내서 빠르게 읽으면 “선생님 래퍼 하셔도 되겠어요. 무슨 랩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웃는다. 시에서 느껴지는 리듬감, 운율의 형성은 반복 때문에 이루어진다. 비슷한 부분을 반복적으로 나열하여 리듬감을 일으키는 것이 음악하고 비슷하다고 설명하면 쉽게 이해한다.

   퀴즈가 끝나고 문학의 개념과 본질에 대하여 살펴본다. “문학(시, 소설)이 뭘까? 문학이 무엇을 다루니? 다시 말하면 문학의 개념(정의)이 뭘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이 시에는 설명절에 모인 친척들이 음식을 나누고 재미있게 놀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명절이라는 소재로 우리들의 삶이 눈 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전달된다. 문학은 인간의 삶 즉 희로애락을 보여준다. 명절날의 풍경을 통해 인간의 삶의 즐거움과 행복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백석 시인과 함께 같은 시기 활동했던 이용악 시인의 시 ‘낡은 집’을 들려준다. 이용악과 백석은 1930년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이다. 둘 다 월북작가여서 국내에서 출판이 금지되었다가 1987년 민주화를 거친 이후 1988년 해금되었다. 20대에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으로 시집을 사서 소중하게 집으로 가져 왔던 기억이 난다.

  시의 내용에 집중하며 듣도록 이번에도 퀴즈를 같이 내준다. 내용이 조금 어렵기도 해서 단어 풀이도 같이해 준다.      

1. 나의 동무는 몇째인가?

2. 나의 동무는 어디서 태어났는가?

3. 나의 동무의 가정환경과 성격은?

4. 나의 동무의 아지트는 어디인가?

5. 나의 동무는 몇 살 때 사라졌는가?

6. 나의 동무가 간 곳은 어디일까?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과 이용악의 시 ‘낡은 집’의 내용과 분위기는 매우 다르다. ‘여우난골족’을 들으면서 신나고 재밌게 퀴즈를 맞히던 모습과 달리 조용하다 못해 시무룩해지는 분위기이다. 일제의 가혹한 수탈로 정든 고향을 떠나 이국땅을 떠돌아야 했던 털보네 가족의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삶을 서정적으로 드러낸다. 바로 인간의 감정 중에 슬픔을 다룬다.

  문학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다양한 처지와 상황들 그리고 슬픔, 기쁨, 불행, 행복, 사랑, 이별, 고통, 절망, 희망 등 다양한 감정들을 보여준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를 살아보지 못했지만 시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한다. 시공간을 넘어 다른 이의 삶의 모습을 상상하며 다양한 감정들에 공감하는 법을 배운다. 이 시를 읽으며 우리가 무관심과 차별의 시선으로 보던 이주민, 외국인 노동자의 삶도 상상하고 이해해 볼 수 있다.

  이처럼 문학은 인간의 다양한 삶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다. 문학을 읽으며 재미를 느끼고 감동하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이것이 문학이 지닌 가치이며 우리 인간들이 끊임없이 문학을 창작하고 문학을 읽는 이유이고 문학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 수업이 끝나고 난 후 학생들은 다양한 반응들을 보여주었다.

  어떤 반에서는 "선생님, 시 읽어 주세요’라는 말을 종종 하기도 한다. 교과 진도에 쫓겨 "도서관에서 시집 빌려 읽으렴" 하고 말하면 "혼자 읽으면 재미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여학생이 남학생을 가리키며 “선생님, 얘 주말에 시집 다섯 권 샀대요!”라고 말해서 놀란 일도 있다. “정말? 무슨 시집 샀니?”라고 물었다. 남학생은 쑥쓰러운 듯 “수업 듣고 시가 궁금해서 더 읽어보고 싶었어요. 국어시간에 시읽기1,2,3권, 백석 시집과 이용악 시집 샀어요”라고 대답한다. 국어 교사로서 학생이 시 수업을 듣고 용돈으로 시집을 사고 시를 통해 시인을 만나는 일만큼 뿌듯하고 기분 좋은 순간은 없다.

  어떤 해에는 담임반 어머님과 상담을 하는데, 아들이 국어 수업을 듣고와서는 "엄마 시가 뭔지 알아? 시는 비유와 상징이야."라며 잘난척을 하며 신나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는 말씀을 전한다. 문학을 좋아했던 어머님과 달리 시와 소설책을 읽으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듣지 않던 아들이 시에 대해서 얘기하니 신기하다고.

  학생들이 국어 수업을 통해 시와 문학을 진짜로 만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이 학생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수입이 많든 적든지 시집 한 권 사보는 어른으로 성장하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아이들에게 시를 읽어주며 아름답고 풍성한 하루를 보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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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난골족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 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넛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고무 고무의 딸 이녀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고무 고무의 딸 승동이 작은 승동이

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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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집

                이용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 물려 줄

은동곳* 산호 관자*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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