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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Jan 01. 2024

어제는 옥토끼와 안드로메다로
오늘은 새해니까 헬로방방

키즈카페의 주 고객은 사실 아이가 아니라 엄마다.

2024년 1월 1일 용의 해가 밝았다. 용처럼 멋있는 기상으로 하늘 높이 승천하는 새해가 되길 소망했다. 

지난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무려 4일 동안 아이를 집에서 품고 있으려니 새해는 환히 밝았는데 눈 밑은 어두컴컴해진 1980년도 같았다. 금요일은 더 블랙벨트 챔피언으로 달려갔고 토요일은 타요 키즈 카페로 갔다. 

일요일은 강화도 옥토끼 우주센터로 가서 종일 우주를 공상했다. 당일 여행으로 김포에서 제일 만만한 지역이 강화도였다. 강화도는 자연환경도 좋고 아이들을 위한 놀거리가 많았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문수산에 시골집을 얻어놓고 강화대교만 지나면 강화도를 만날 수 있는 시골집의 입지를 육아에도 적극 활용하였다. 

종종 일부러 아이의 어린이집을 결석하고 강화도에 있는 행복센터 키즈카페나 신정체육관 물놀이터를 자주 애용했다. 이런 시설들은 대체로 외부인의 입장에서도 합리적이라고 느껴지는 가격이었는데 강화군민의 경우 50% 감면 혜택이 주어지고 무료입장도 가능한 경우도 많았다. 남편의 직장만 가깝다면 강화군민으로 살면서 강화도에서 육아와 치병을 하는 것도 이상적인 것 같았다. 


주말에는 강화도로 진입하는 차량들로 정체가 심했다. 강화도에 진입하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썰매도 탈 겸 전시관도 관람할 겸 옥토끼 우주센터로 갔다. 아이와 나는 우주인이 되어 전시장을 관람하였다. 

우주인들이 사용하는 변기에도 앉아보고 우주 엘리베이터를 타고 캄캄한 내부에서 반짝이는 은하계 별들을 바라보았다. 동화 속에 나오던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는 그 달토끼가 옥토끼로 진화된 것 같았다. 

아이는 기차를 타고 우주 도시도 한 바퀴 돌고 왔다. 3층의 카페 문을 열고 나오니 야외의 썰매장으로 연결되었다. 썰매장에 가서 8번 정도 오르고 내리며 썰매를 타더니 힘들었는지 아이는 썰매는 그만 타겠다고 했다. 


썰매장 앞에는 풍선 터트리기 장사를 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3천 원을 내면 다트 5개로 풍선을 터트릴 수 있는 5회의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 아이는 2번은 맞히고 3번은 실패하여 가장 낮은 층에 있는 저렴한 장난감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우리 아이는 드래건 시계를 골랐는데 집게 부분을 누르면 드래건이 인쇄된 동그란 시계가 부메랑처럼 튕겨나가는 시계였다. 아이는 그것을 사기 위해서 썰매장에 온 것 같았다. 

아이와 전망대에 올라가 탁 트인 강화도 불은면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공룡의 숲을 산책하며 티라노 사우르스와 스테고 사우르스 등등의 수많은 공룡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전시관으로 돌아왔다. 내 인생에 만약에 우리 아이가 없었다면 옥토끼 우주센터 또한 결코 오지 않을 곳이었다. 


나는 요즘 계속 이런 곳에만 오면 미래가 밝지 못하다는 생각만 든다. 주말이라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로 인산인해였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한국에서 옥토끼도 흔적도 없이 달나라로 곧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옥토끼의 생존에는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환경이 더 전망이 밝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인들이 공중에 둥실둥실 떠서 밥을 먹는 영상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저렇게 공중에 둥둥 떠서 사는 인생은 어떤 기분일까?' 중력에 막강한 영향력을 받고 살아가는 지구인들의 입장에서는 별나라 이야기 같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우주라는 시공간에서 실제로 날마다 일어나는 무중력의 현실이었다. 인간의 상상력과 모험, 도전에는 정말이지 한계라고는 없어 보였다. 우주여행에 관련된 3D 영화를 관람하고 옥토끼 우주센터를 나와서 근처에 짜장면 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썰매장 풍선 터트리기에서 뽑은 드래건 시계를 잃어버렸다고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엉엉 울었다. 고음의 울음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자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이럴 때 나는 NO KIDS ZONE으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다. 아이가 이렇게 고성으로 울고 불고 생떼를 부리면 기가 쑥 빨린다. 다행히도 남편이 차 조수석에 떨어져 있던 드래건 시계를 찾았다. 우리 아이는 그 시계를 손목에 차고 나서야 차에서 잠이 들었다. 2023년의 마지막 날을 아이와 함께 옥토끼 우주센터에서 달나라에도 갔다가 별나라에도 갔다 왔더니 몇 광년이 흘러간 것처럼 늙어버린 느낌이었다.              


새해 첫날 아침부터 방방 뛰어대는 아이를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서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나는 아이를 데리고 헬로방방 키즈카페로 왔다. 이렇게 키즈카페라는 공간이 있음에 감사한 새해 첫날이다. 나는 경치가 좋은 통창 앞에 자리를 잡았다. 보호자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차 쿠폰으로 분홍빛 히비스커스 차 한잔에 몸을 녹이고 노트북을 켰다. 주말에는 거의 키즈카페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많다 보니 정기권을 끊어서 사용하는 편이 경제적이다. 1월생인 우리 아들의 곧 돌아올 생일을 맞이하여 생일 선물은 헬로방방 키즈카페 정기권을 끊어주기로 했다. 몇 번 가지고 놀다가 금방 질려버리는 장난감 자동차보다 키즈카페 정기권이 아이와 엄마를 위해서 더 실속 있는 선물인 것 같다. 


아이는 키즈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점퍼는 바닥에 던져놓고 낚시존으로 가서 물고기들을 낚았다. 물고기 10마리를 낚아오면 비타민과 캐러멜을 준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문어에 올라타고 내려왔다가 타잔처럼 밧줄도 타고 볼풀장에 풍덩 빠지며 신나게 놀았다. 우리 아이는 자동차를 타고 붕붕붕 키즈카페를 동서남북으로 휘젓고 다녔다. 기차가 운행된다는 방송이 나오면 냅다 뛰어서 칙칙폭폭 기차도 탔다. 컨베이어벨트 미끄럼틀에 튜브 썰매를 타고 신나게 쓸려 내려오며 속도를 즐겼다. 집라인을 타고 원숭이처럼 대롱대롱 이쪽에서 저쪽을 순식간에 가로질러갔다. 아이는 마트 점원이 되어 손님인 내게 백 원에 피자 한판을 팔기도 하고 오천 원짜리 프리미엄 타르트를 팔기도 했다. 키즈카페는 아이들을 위한 천국이기 이전에 엄마들을 위한 천국이었다. 육아에 지친 엄마들과 아빠들은 마음을 놓고 이곳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테이블 하나에 자리를 잡고 휴대폰으로 쇼핑을 하거나 넷플릭스를 보았다. 또래 엄마들끼리 모여서 수다로 꽃을 피우며 육아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는 시간이 되어주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키즈카페에서 노는 이 소중한 3시간 동안 손끝에서 불꽃을 튀기며 타다다닥 키보를 쳐대며 글을 써 내려간다. 오늘은 2024년의 첫 해니까 육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첫날의 오후 3시간을 벌기 위해서 키즈카페에 온 것이다. 왁자지껄하게 뛰어노는 아이들 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생생하게 따끈따끈한 새해 첫날 첫 글을 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중간중간 아이가 나를 호출하면 단박에 튀어나간다. 우리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뽀로로 크림 떡볶이를 주문해 달라고 했다. 우리 아이는 입맛을 자극시키는 가공된 맛을 이미 알아버렸다. 키즈 카페에서 3,500원이면 뽀로로 크림 떡볶이를 살 수 있다. 작은 컵 용기에 떡 한 줌이 들어가 있다.


컵 떡볶이가 나와서 키즈카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아이를 찾으러 다녔다. 우리 아이가 맨 끝에 사진 찍기 자판기 앞에 서있었다. 사진 찍기 자판기에 불이 들어와 작동되고 있었다. "너 이놈! 누가 엄마 카드를 말도 없이 함부로 가져가서 쓰라고 했어? 응?" 우리 아이는 내가 노트북 앞에서 글을 쓰는 사이에 옷장에 걸어두었던 내 점퍼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서 카드를 넣고 자판기를 실행시켜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미안해요. 엄마. 엄마가 말하면 안 찍어 주니까 내가 가져가서 했어요." 

나는 뚜껑이 열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순간 자판기에서 불빛이 반짝거리더니 아이가 찍은 사진이 인화되어 나왔다. 매카드볼 캐릭터 옆에 우리 아이가 브이를 하고 찍은 사진이었다. 순간 허탈한 웃음이 배꼽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사진은 또 엄청 귀엽게 찍었네." 단호함을 유지해야 하는데 웃음이 흘러나와서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아이를 테이블로 데리고 왔다. "너 이렇게 네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허락도 없이 함부로 가져가서 사용하는 것은 아주 나쁜 행동이야. 엄마도 아빠도 너에게는 가까운 사람이지만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고 다른 사람의 카드나 물건을 사용할 때는 부탁을 하고 허락을 받은 뒤에 해야 하는 거야. 다음에도 이런 나쁜 행동을 하면 경찰 아저씨가 수갑을 채워서 경찰서로 데려가실 거야. 다음부터는 엄마한테 사진이 찍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고 이런 행동을 하지 않기로 약속해. " 

"알겠어요. 엄마. 미안해요. 안 할게요." 아이가 자랄수록 이런 상황에서 도덕성의 가치에 대해서 어떻게 지도를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았다. 아이가 지나치다고 생각이 들 때는 벌을 세우기도 했다. 아이가 엉엉 울어도 벽을 보고 손을 들고 있으라고 했다. 나는 아이를 야단치고나서 크림 떡볶이를 먹였다. 나의 야단에는 야단이 갖는 어떤 힘이 상실된 것 같았다. 

"음~뽀로로 떡볶이 최고!"

우리 아이가 너무 맛있게 먹길래 나도 몇 개 집어 먹어보았다. 하얀 크림 떡볶이에는 파슬리 가루도 뿌려져 있었다. 짭조름한 조미료의 맛이 혀끝을 감돌았다. "코딱지만큼 들어있어서 맛있네." 감질맛 나는 그 가공의 맛이 어린아이들의 혀를 유혹했다. 


이제 5살이 되는 우리 아들도 이 맛이 맛있다고 표현한다면 앞으로 우리 아이가 성장하면서 5년, 10년 뒤의 어떤 식습관 취향을 가지고 기호를 갖게 될지 안 봐도 뻔했다. 내가 아무리 가정에서 건강식으로 갖은 애를 쓴다고 해도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등에서 너무 손쉽게 가공식품에 노출될것이고 길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암환자들의 통계를 보면 암은 매우 개인적인 병에서 출발한듯 보이지만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가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우리의 자녀들이 그런 가공된 맛과 가공된 마음에 길들여진다면 그 자녀가 머지 않은 미래에 암으로 언젠가 대학병원을 드나드는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자녀가 암선고를 받고 절망과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뼈아프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자신의 아이가 라면, 떡볶이, 햄버거, 피자, 불닭볶음면 같은 가공식품들을 즐겨 먹는다면 미래에 암으로 괴로워할 확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린 시기부터 청소년의 시기를 통틀어 암에 대한 문제의식과 바른 식습관과 마음을 옭아매지 않고 평화와 행복을 배울 수 있도록 공교육에서도 힘써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고민을 가지고 오늘 새해 첫날 글을 끄적거렸다. 

나는 우리 아이가 내가 물려준 심신의 면역체계를 잘 가꿔갈 수 있는 심신의 최고 경영자로 대를 이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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