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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Jan 08. 2024

몸살 감기가지고 엄살은!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제 우리 아이는 결국 새벽 1시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열과 사투하느라 나도 덩달아 밤잠을 설쳤다. 아이의 몸이 뜨끈뜨끈하여 바지랑 팬티도 벗겨주었다. 아이는 베개가 다 젖도록 머리에 땀을 뻘뻘 흘리며 신음했다.

체온계를 아이 귀에 대보니 37.8도였다. 아이에게 부루펜 시럽을 먹이고 나서야 뜨끈하던 몸이 식고 열이 떨어졌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는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까지 평온하게 꿈나라 여행을 잘 마쳤다. 아이가 감기를 앓고 나면 늘 그렇듯이 이번에는 내 몸이 이상했다. 목덜미부터 어깨, 등, 허리, 허벅지가 욱신 욱신한 게 으슬으슬 춥고 목이 칼칼하여 콜록콜록 기침이 나왔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근육통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새벽 2시쯤 깨서는 카디건을 걸쳐 입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글을 쓰는 일은 집중과 몰입을 하기에 가장 좋은 방편이었다. 그동안 나는 저녁 10시 전으로 취침하는 루틴을 지키며 살다 보니 한 번도 새벽에 글을 써 볼 기회가 없었다. 아이가 아픈 바람에 뒤척이다 보니 잠이 깨버렸고 내게도 어느새 감기가 옮아있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근육통으로 잠 못 들어 새벽에 글을 쓰게 된 것이다.글을 쓰다가 결국 새벽 4시가 넘어서 다시 아이 옆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 


오전 8시에 아이가 먼저 일어나 나를 깨웠다. 아이는 밤새 잠을 자며 많이 회복된 듯 보였다. 그런데 나는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영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어제 아이의 상태를 보고 오늘은 가정보육을 하려고 했지만 오늘은 내가 아파서 가정보육이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아프게 되면 이런 식으로 생체리듬이 깨지고 치병 일상의 흐름이 끊기곤 했다. 오늘은 밥을 차릴 기운이 없었다. 오늘 아침은 따뜻한 누룽지를 끓여서 김을 올려 먹기로 했다. 따뜻한 누룽지를 먹으니 인후통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계속 기침이 콜록콜록 나왔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오늘도 역시나 문수산으로 왔다. 몸살 기운이 있는 게 영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나는 평소처럼 배낭에 바나나 한 개와 물병을 챙겨서 산으로 갔다. 몸이 무거워서 발걸음이 평소처럼 힘차게 내디뎌지지 않았다. 그래도 천천히 걸어서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전망대에 앉아서 기지개도 켜보고 스트레칭도 해보았지만 영 개운치가 않았다. 날씨는 춥지 않고 따뜻했는데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갈지 말지 고민이 되었다.

'몸살감기 정도 가지고 엄살이야.' 나는 늘 하던 대로 신발을 배낭에 묶고 양말을 벗었다. 터덜 터덜 차가운 산길을 걸어갔다. 오늘도 나는 그렇게 맨발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산을 다녀왔다. 오늘은 내려오는 길에 예쁜 노루 한 마리를 만났다. 까만 코가 반질반질하고 까만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는 황토빛 노루였다. 노루는 나를 보더니 멈춰서서 한참 눈을 마주치고 바라보았다. 나도 멈춰서서 노루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저 멀리 재빠르게 뛰어가 사라져버렸다. 


시골집에 오자마자 나는 발도 씻지 않고 그대로 쓰러져 누웠다. 밤새 뒤척이고 잠을 설친 데다가 몸살감기로 몸이 으슬으슬 춥고 근육통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오늘은 아이를 일찍 하원시켜서 소아과에 들러서 나도 아이와 함께 진찰을 받기로 했다. 소아과 선생님은 요즘 독감과 코로나 환자들이 많다며 나의 증상이 독감 증상인 것 같다고 하셨다.

소아과에서 아이 약과 내 약을 처방받아서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보니 친정 엄마가 아이 생일이라고 보내준 로켓 킥보드가 택배로 도착해 있었다. 아이는 로켓 킥보드를 얼른 뜯어보자고 야단이었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이불을 덮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자고 싶은 마음이었다. 크고 무거운 킥보드를 뜯어서 꺼내어 간단히 조립하고 나니 멋진 로켓 모양의 킥보드가 되었다. 

8세 이상의 어린이 전용인데 우리 아이는 능숙하게 잘도 탔다. 배터리를 충전하면 로켓처럼 불빛을 뿜어내는 멋진 킥보드였다. 


아이는 집안에서 새로운 로켓 킥보드를 타보며 속도는 어떤지 라이딩 느낌은 어떤지 탐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모서리에 쿵 하고 부딪쳤는데 모서리 플라스틱 걸레받이가 깨지고 말았다. "으이구! 사고뭉치야! 엄마가 조심해서 타라고 했지?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응?하......앞으로는 집에서 킥보드 타지 말어." 나는 결국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 말았다. 아이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킥보드에서 내렸다. 오늘 나의 몸 상태는 아이와 놀아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아이에게 TV를 틀어주고 침대로 가서 누워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얼마 후 아이가 곁으로 와서 내 배 위에 철퍼덕 엎어지며 안겼다. "엄마, 일어나! 나랑 같이 TV 봐. 나 혼자 보면 무서워." 

"하....."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거실 소파로 갔다. 나는 소파에 누워있고 아이는 그 옆에 앉아서 TV를 봤다. 

아이가 TV를 오래 보다 보니 지루해졌는지 내게 장난을 치며 같이 놀자고 졸라댔다. 

"엄마가 오늘은 정말 미안하지만 놀아줄 수가 없어. 몸이 많이 아파. 어제 너한테 감기가 옮아서 오늘은 엄마가 열이 나고 등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기운이 없어. 아빠 올 때까지 혼자 놀아야 해."

아이가 나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일이 없었다. "엄마가 아픈 거 싫어! 엄마 일어나! 으앙!" 아이는 나를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엉엉 울어댔다. "알았어. 그만 울어. 일어나자. 일어나." 나는 다시 일어났다.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늘 나를 일으킨다. 그런 힘이 우리 아이에게 있다. 엄마에겐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일어나서 아이와 함께 놀아줘야 한다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나는 아이와 잠시 학습지 패드를 켜고 놀다가 다시 또 침대로 가서 드러누웠다. 아이는 잠시 혼자 잘 노는가 싶더니 또다시 곁으로 와서는 딸기가 먹고 싶다고 딸기를 씻어달라고 보챘다."조금 있으면 아빠 오실 거니까 아빠한테 해달라고 해. 엄마 기운이 없어. 엄마 아파." 아이는 또다시 서럽게 울며 딸기가 먹고 싶다고 야단이었다. 나는 결국 다시 이불을 걷어버리고 빨간 딸기를 씻어서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는 맛있게 딸기를 먹었다. "목욕시켜야 하는데..... 너네 아빠는 일찍 들어온다더니 왜 이렇게 늦는 거니?" 남편에게 일찍 귀가해달라고 부탁했는데 평소와 똑같이 들어올 모양이었다. 


욕조에 물을 받고 아이를 씻겼다. "엄마도 들어와서 같이 씻어. 왜 안 들어와? 빨리 들어와."

아이는 이번에는 또 나랑 같이 씻고 싶다고 성화였다. 나는 욕조에 아이와 함께 풍덩 들어갔다. 따뜻한 물에 들어가니 뜨끈하니 좋았다. 아이가 내 얼굴에 물총을 쏘아댔다. 아이를 다 씻기고 나오자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왔다. 남편은 꼬마 김밥과 뽀로로 주스, 프링글스를 사가지고 왔다. "일찍 좀 들어오랬더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는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인사보다 핀잔부터 주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사가지고 온 김밥과 간식들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남편에게 아이의 저녁과 보육을 맡기고 나는 침대에 돌아와 누웠다. 이대로 누워서 쉬다가 잠들고 싶었지만 아이는 분명히 아이방에서 자신과 같이 자자고 나를 또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9시 반이 되어서야 아이는 잠이 들었고 오늘의 나의 임무가 끝났다.

먹다 남은 김밥 포장지와 그릇들이 식탁 위에 너저분하게 그대로 있었다. '저것 좀 치우지. 저게 뭐람.' 

나는 식탁 위를 치우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그대로 잘 수도 있었지만 오늘도 글은 쓰고 자야겠다 싶었다. '몸살감기 가지고 엄살은!' 

이제 정말 자야겠다. 오늘 잘 자고 나면 내일은 몸이 좋아질 것 같다. 내일은 아이와 놀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내일은 남편이 아플 수도 있겠다. 아무리 아파도 산에는 갔다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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