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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Dec 18. 2023

우리들의 옥녀탕

꿈만 같은 여름 산의 추억

나는 지난 여름에는 산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여름은 치병을 하기에 아주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일조량이 많아서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고 양말을 벗고 흙과 돌을 밟기에도 부담 없는 날씨이기 때문이다.

또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뿜어져 나오는 계절이기도 하다. 나는 20대 중반에 스키에 입문해서 매년 겨울 시즌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봄,여름,가을을 보내곤 했다. 이런 스포츠를 좋아하는 걸 보면 천성적으로 내게 이런 자연 친화적인 성향이 있었던 것 같다.

 내게 치병은 스키를 타는 느낌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스키는 겨울이라는 계절에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점을 빼고는 치병하고 거의 비슷했다. 나의 치병 일상도 어찌 보면 익스트림 스포츠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라고 처음부터 맨발로 산을 타는 게 익숙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맨발로 산을 타는 일이 극기 훈련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극한의 어떤 절박함에 서보지 않고서는 이런 결심과 실행을 꾸준히 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치병 생활이 익스트림 스포츠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겨울에 스키어들이 시즌방을 구해서 스키를 즐기듯이 나는 이 치유의 기운으로 가득한 여름 산을 즐기기로 했다.

 가을이나 겨울과 같은 계절이라면 산을 타고 내려오는데 2시간 반에서 3시이면 충분했다. 식사는 챙겨온 도시락으로 시골집에서 간단히 해결하거나 풍욕을 하고 쉬곤 했다. 그러나 치유의 계절 봄이 오면 추운 겨울 동안 땅 속에 웅크리고 있던 씨앗이 싹을 틔우듯이 나의 치병 일상도 파릇하게 피어났다. 뜨거운 여름에는 땀을 흘리며 꽃을 피워내야 하는 생명의 임무가 내게도 있었다.

 뜨거운 폭염 속에 윙윙대며 달려드는 모기들을 탓하며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지는 계절이기도 했다.

나는 얼굴에 양파망같은 모기장을 뒤집어쓰고 간단히 산에서 먹을 도시락과 물을 2병씩 챙겨서 날마다 입산을 했다.여름 시즌 동안은 일부러 더 부지런을 떨었다. 아이를 흔들어 깨워서 평소보다 1시간 일찍 등원을 시켰다. 아이에게 아침을 못 먹이고 등원시키는 날이 수두룩했다. 대신에 오전에 어린이집에서 먹을 수 있도록 그래놀라나 주먹밥, 빵 등을 가방에 챙겨 보냈다. 나는 시골집에 9시 반에 도착하여 바로 산으로 입산하였다. 그리고 산을 타고 올라가서 산중 생활을 하며 지내다가 하산을 하면 오후 4시가 되었다.

 나는 때때로 산에서 만난 여자 산악인과 문수산의 골짜기를 들개처럼 쑤시고 다녔다. 처음 보는 버섯이나 산나물들을 만나며 행운을 곳곳에서 발견했다. 지난 여름에 문수산 2번 장대에 올랐다가 이 여자 산악인을 우연히 만났다. 맨발로 올라온 내가 신기했던 것인지 그 산악인은 산을 혼자 타냐고 물으며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건냈다. 산악인은 맥퀸리를 호흡기 없이 찍고 온 산행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산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이야기했다. 나는 산악인처럼 다른 산에 대한 경험은 많지 않지만 매일 문수산을 올라온다고 했더니 반가운 기색을 띄며 나의 휴대폰 번호를 물어보았다. 산악인은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산을 타면 더 재미있을 거라면서 산 친구를 하자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산 친구가 되었다.

 지난 여름, 우리는 함께 문수산을 헤집고 다녔다. 산악인은 각종 산악 전문 장비들을 다 갖추고 있었고 낫과 톱도 들고 다녔다. 어느 때에는 산악인의 가방에서 밧줄이 나오기도 했다.'저분은 스파이더우먼인가?' 산악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일반적인 중년 여성의 느낌은 확실히 아니었다. 산악인 나이는 우리 친정 엄마보다 많았지만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산 친구를 만난 것 같았다. 거침없는 산악인 덕분에 문수산에서 지난 여름은 정말 역동적이었다.

 우리는 우연히 골짜기를 헤집고 다니다가 여자 2명이 들어가기 좋은 크기의 계곡을 발견했다. 이 계곡을 우리들의 ‘옥녀탕’이라고 이름 짓고 우리는 이곳에서 냉수마찰과 목욕을 즐겼다. 비가 내리고 난 다음 날이면 골짜기 계곡은 시원한 물로 가득 차 있었고 더위를 단숨에 날려버리는 데는 냉수마찰만 한 게 없었다. 옛날 선인들은 일부러 차디찬 계곡물에 들어가서 지기를 듬뿍 받았다고 한다.

나도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문수산의 지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문수산은 마냥 철없는 아이처럼 노니는 나를 늘 너그럽고 인자하게 품어주는 것 같았다.

 나는 동네 이장님께 석수 약도를 받아서 산악인과 석수 터를 찾아 나섰다. 산 경험이 많은 산악인은 지리 감각이 밝았다. 눈 밝은 산악인 덕분에 깊은 골짜기에서 약도에 표시된 석수 동굴을 찾았다. 멋진 절벽 아래 동굴이 있었다. 그 어두 컴컴한 동굴 속을 들여다보니 바위에서 석수가 똑똑똑 방울 방울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물병을 받쳐놓고 싸 온 점심 도시락을 까먹고 나면 물이 꽤 많이 차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골짜기를 헤쳐와서 그런 탓인지 물맛이 너무나 청량하고 특별했다.  우리는 한번씩 석수터에 오면 가방에 챙겨 온 물병들을 모두 꺼내서 가득 담아 가곤 했다. 우리는 떨어진 낙엽들을 치우고 청소를 해야 모기들이 덜 달려들 거라고 생각 했다. 갈퀴와 대빗, 자루를 가지고 와서 동굴 앞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청소 했다. 청소에 대한 산악인의 의지는 대단했다. 산악인은 바람에 쓰러져 죽은 나무가 보기 싫다며 톱으로 잘라서 나무 토막들을 정리 했다. 나는 젖은 낙엽을 자루에 끝없이 담았다. 3자루를 담았을 때 더 이상 하면 노동이 될 것 같아서 중단하였다.  그러나 그 산악인은 조금 있으면 자신도 손녀딸을 데리러 가야 해서 시간이 없다며 쉼없이 계속 청소를 하였다. 그런 산악인의 열정은 정말 놀랍고 대단했다. 한번은 산악인이 산악인의 남편을 데리고 왔다. 산악인은 동굴을 올라가는 길에 돌계단을 만드려고 남편을 데려왔다고 했다. 시큰둥한 표정의 남편은 그런 아내의 성미에 지친 건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돌을 낑낑거리며 옮기더니 돌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 덕분에 석수를 뜨러 갈 때 돌을 딛고 편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12월 중순에 지난여름을 회상하며 글을 쓰다 보니 나의 치병기가 꿈처럼 환상적으로 느껴졌다. 막막하고 두렵기만 했던 자연치유의 길에서 이렇게 역동적인 여름을 보냈는지 말이다. 즐겁고 사랑스러운 에피소드와 추억들이 낯선 골짜기마다 형형색으로 피어났으니 말이다. 내년 여름이 오면 다시 이 꿈을 꾸고 싶다. 골짜기마다 피어난 형형색색의 그리운 야생화들을 보러 문수산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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