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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스톤 Dec 18. 2023

암환자를 위한 인생사용설명서

잘 읽어보시면 캄캄한 것 같았던 인생이 환해집니다.

※삶의 밑바닥에 있다는 절망과 고통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암 환자들을 위한 인생 사용 설명서입니다.


1. 나 혼자만 밑바닥에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바다나 산으로 가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힘내라! 할 수 있다! 잘한다!” 3번씩 큰 소리로 외칩니다. 내가 자연치유의 길을 잘 걸어가며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단단하게 생길 때까지 매일 스스로 나를 북돋아 주며 허공에 대고 계속합니다. 

2. 자연치유의 시스템을 구축하여 기본기와 습관을 형성할 시간을 대출하십시오. 

저는 치병도 운동이나 공부처럼 기본기를 익히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치병을 위한 공백기를 꼭 만들어야 합니다.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만약 나의 1년 연봉이 2천이라면 2천을 대출받아서라도 1년의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마감 날짜를 정해놓아야 합니다. 

마감 날짜는 그 1년의 기간 동안 나의 건강성을 일궈 내야 한다는 소명에 불을 지펴서 임무를 해결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성실한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치유가 작동되고 구체화됩니다. 

3. 2번이 준비되었다면 인위적으로라도 자신의 여건에 맞게 2번을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설정해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치병 시스템에서 치병의 가장 큰 재료가 되었던 ‘산’이 무조건 필요한 환경이었습니다.

해발 약 400m 정도 규모의 산을 찾아보았습니다. 산은 해발이 높을수록 흙 산보다는 바위산이 많고 산은 바위가 많을수록 기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문수산 같은 경우는 본가 고촌에서는 자차로 40~45분을 달려가야 했지만 그곳이 가장 근거리에 위치한 좋은 산이었습니다. 맑은 공기와 적당한 해발 고도, 능선을 타는 맛, 산림욕장,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치병하기에 적합한 산으로 여겨졌습니다. 산을 골랐다면 산 주변을 둘러보며 나의 치유 아지트를 고르는 일입니다. 

저는 3살 아이를 키우면서 치병을 해야 했기에 어린이집을 보내고 산으로 출퇴근을 하려던 계획이었습니다. 

산 밑에 있는 마을을 찾아서 적당한 곳에 아지트를 얻었습니다. 작은 시골 주택 1층에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집이었기에 인테리어가 좋거나 황토로 만들어졌거나 산속에 묻혀있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에 임대료가 좋고 작은 텃밭도 있고 산을 타고 와서 샤워를 하거나 쉬고 풍욕 하기에는 충분한 조건이었습니다. 너무 완벽한 아지트를 고르려고 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산을 타는 일입니다. 

이렇게 아지트를 마련해 놓으면 이곳은 나의 치유 성과를 위한 개인 사무실이 되어주는 ‘환경 설정’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널브러지기 좋은 ‘집’이라는 공간과는 또 다른 어떤 날 위한 공간이 생긴 것입니다. 

아지트는 마치 직장과 같은 곳이 되기 때문에 의지박약 한 환우들에게는 이런 환경설정이 정말 중요합니다. 

직장이라는 곳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파도 나가야 하고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출근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습니다. 갖가지 핑계와 나태함이 꾸물거릴 때 이런 환경이 나를 꾸준히 실행하도록 견인해 줍니다. 

4. ‘나는 여자인데 어떻게 혼자 산에 가지?’라는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 나를 가로막을 때에는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자연치유의 길에서 산은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모든 귀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위험의 요소를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도전하고 실행합니다. 그런 꾸준한 실행 속에서 나의 내면의 힘이 생겨나고 마음의 중심이 생겨났습니다. 생각 보다 산을 타는 사람들은 ‘여자’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즉 ‘여자인데 어떻게 혼자 산에 가지?’라는 생각은 망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자인데 왜 산에 혼자 못 가는 거지?’라는 반문이 제게는 오히려 더 합리적인 질문 같았습니다. 저는 ‘여자’라는 성별이 장애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암이라는 폭탄을 보유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은 역설적으로 내게 보디가드 같은 역할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두려움으로 마냥 누군가가 함께해 주기를 기다리거나 찾으며 시간을 지체하고 실행을 미루기에는 밝은 건강성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산을 오르지 않는 것은 암 환우들에게는 손해가 막대합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이 좋습니다. 

‘산을 타지 않으면 암이 신이 나서 활개를 치게 되어 더욱 고통스럽고 힘겹게 죽게 될 수도 있어. 혹여나 내가 나를 구하기 위해서 산을 타다가 객사를 하거나 인간 또는 멧돼지에게 공격을 당하여 죽게 될 확률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산을 타지 않고 암으로 죽게 되는 확률보다는 낮을 거야.’라는 마음가짐입니다. 

수많은 고민과 번뇌가 당신을 괴롭히겠지만 그냥 아무렇지 않게 실행해 버리는 마음이 정말 중요합니다. 

나이키의 JUST DO IT! 을 손등에 쓰고 보면서 산을 그냥 오르세요. 오히려 맨발로 산을 타고 있는 여자를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 더 강합니다. 저는 산에서 자주 마주치는 등산객들 사이에서 특전사 출신이라는 이상한 소문이 나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나약한 이미지의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이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여성성을 기성의 낡아빠진 성 정체성에 끼워 넣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암 환자가 되고 나서 깨달은 한 가지는 나의 안전, 행복과 건강성은 내가 구현하고 가꿔내는 것이지 그 어떤 전문가도 남편도 가족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산을 오를 때 호신용 호루라기와 스틱 정도는 준비해서 다니시면 나쁘지 않습니다. 

5. 암의 본질을 파악하십시오. 

저를 포함한 많은 환우분들께서 CT 또는 MRI로 드러나는 암의 모습에 기겁하고 슬퍼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러나 암의 본질은 줄기세포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암이라는 것이 콩알만 한 사이즈가 되어서야 CT라는 기계를 통해서 비추어 볼 수 있는 것이라는 것도 익히 들어서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암은 CT 상에 보인다고 하여 두려워할 것도 공포에 휩싸일 것도 아니며 CT 상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안심할 일도 아님을 의미합니다. 암 환자는 수없이 많은 경계에 서보며 균형을 찾는 자세를 익혀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생과 사의 경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 공포와 안심의 경계, 치유와 고통의 경계, 행과 불행의 경계, 너와 나의 경계 등등에 대한 인문학적, 철학적 사유가 필요합니다. 암 환우는 암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몰입되어 좋은 음식과 갖가지 이론, 의료 기구들에 관해서만 신경이 집중되어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고찰에 소홀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암 환우는 무엇보다 이 부분에 공을 들여야 내적, 치유적 성장의 속도가 붙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암으로 인하여 느끼는 통증과 고통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마음의 균형을 곧잘 잃어버리고 슬픔과 불안에 압도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암은 나의 심신의 피로가 드러난 몸의 현상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제가 암에 대해 느끼고 정의 내린 결론입니다. 다만 CT를 통하여 암이 어떤 식으로 커지거나 줄어드는지 또는 정체하는지 등등에 대한 성격과 기질, 움직임에 대해서 관찰을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암이 어떤 특성인지 지켜보는 일은 상당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스스로 나의 암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나가며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치유의 길을 걸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암환자가 된 당신은 의사의 다급하고 겁박한 진료 앞에서 신속한 표준치료를 이행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받습니다. 그러나 암의 본질을 파악했다면 태평한 마음으로 강처럼 천천히 돌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편이 더욱 유익합니다.

6. 암 환우는 자연치유의 길을 걸으면서 정기 검진을 받으러 병원을 갈 때 심리적으로 큰 무게감에 짓눌리곤 합니다. 

병원의 분위기도 그렇습니다. 대학 병원을 갈 때는 그냥 동네 앞에 있는 이비인후과나 소아과에 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부러 다 떼어놓고 홀가분하게 혼자서 헐렁한 운동복에 슬리퍼나 크록스를 질질 끌고 아무렇지 않게 갑니다. 코가 막혀서 동네 이비인후과를 갈 때 혼자 가지 보호자와 함께 가지 않듯이 말입니다. 주머니에는 산에서 주워간 알밤을 3개 정도 준비해 갑니다. 대기하는 동안 만지작거리면 산의 힘이 온몸으로 전해집니다. 

7. 매일 아침에 10분이든 20분이든 여유를 무조건 만들어야 합니다. 

다이어리나 노트를 꺼내어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로지 ‘오늘뿐!’이라는 것을 적습니다. 

이 귀중하고 아까운 오늘 중에 만나는 모든 이들과 미소와 친절로 보내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잘 안되기 때문에 다짐을 매일 해야 합니다. 오늘뿐인 오늘 중에 제일 하고 싶은 일을 적습니다. 

그 일을 5분이든 50분이든 오늘 꼭 실행합니다.

8. 암은 제게 다이너마이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암은 다이아몬드였다는 것을 자연치유의 길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암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는 오히려 암을 떳떳하게 보유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다이아몬드가 당신의 삶을 더욱 가치 있고 반짝반짝 빛나게 해 줄 테니까요. 

                                                                                                                                                                                  -  샤론스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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