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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Oct 07. 2024

노숙자들의 잔대가리

연재소설 : 러브 코딩 11화 - 노숙자들의 잔대가리

사무실의 벽시계가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민수는 과제 안내서를 보며 플로차트를 그리고 있다.

민수의 책상에 전화벨이 울리자 민수는 수화기를 집어 든다.

“예, 정보시스템실 이민수입니다.”

“어쭈, 이제 제법 직장인 같은데... 나 누나야.”

“하하, 누나?”

“지금 일하고 있어?”

“응, 일하고 있어.”

“어허, 누나에게 말버릇이 그게 뭐니? 다시 말해봐.”

민수는 재희의 말에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말을 이어간다.

“하하, 예, 일하고 있어요,”

“약속시간이 몇 시라고 그랬지?”

“7시.”

“언제 출발할 거야?” 

“응, 지금 출발할게.”

“늦지 않게 빨리 와.”

“알았어.” 

민수가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재희의 전화를 받아 기분이 좋은 민수는 과감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애인? 오늘 잘해봐.”

중만이 부러운 듯 말한다.

민수는 팀원들보다 먼저 퇴근한다는 미안함에 사무실을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간다.



민수는 음식점에 들어서서 친구를 찾기 위해 식당을 두리번거린다.

식당 한쪽에 선영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그곳으로 다가간다.

대학 친구 대여섯 명이 앉아 있다.

민수를 반갑게 맞이하는 친구들이 한 마디씩 한다.

“잘 있었어?”

“취직했다면서? 축하해.”

“얼굴 좋아졌다.”


자리에 앉는 민수, 건너편 대각선 쪽에 앉아 있는 재희에게 장난스럽게 말을 건넨다.

“오, 누님, 오셨어요?”

“그래, 동생 왔는가, 호호호.”

“민수가 양복 입으니까 사람이 달라 보인다. 정작에 옷 좀 잘 입고 다니지.”

희숙의 말에 민수는 시건방을 떨며 말한다.

“작업복이야, 더운 여름에 넥타이 매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데.”

“너 말이 맞아, 매일 아침 와이셔츠 갈아입는 것도 아주 번거로워.”

민수와 도형의 불만에 선영이 대견하다는 듯 말한다.

“야, 너희들 이제 월급쟁이가 다 됐네.”


철호가 민수에게 소주를 부어주며 말한다.

“너 전산 일을 한다며? 그거 요즘 뜨고 있는 그 EDPS라는 것 아니야?”

“오, 역시 신문 기자 공부하는 사람은 달라.”

옆에 있는 도형이 웃으며 말한다.

“우리도 많이 해, EDPS.”

“너도 해? 너는 영업이라며?”

민수가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술집에서 많이 해, EDPS, 일명 음담패설.”

“그게 무슨 뜻이야?”

듣고 있던 재희가 묻자 도형이 설명한다.

“음담패설의 각 글자 영어 이니셜이 E.D.P.S잖아.”

“아, 그 영어 이니셜? 그런데 원래 영어는 어떻게 돼?”

“Electronic Data Processing System!”

민수가 혓바닥을 굴려가며 말하자 희숙이 발끈하며 말한다.

“야, 욕하지 마. 나는 영어가 다 욕으로 들려!”

“오, 민수가 오늘 영어 욕 좀 되는데...”

도형의 말에 계속되는 민수의 시건방.

“요즘 전산 교육받을 때 주워들은 욕이야.”

“그런 욕은 우리 재희가 잘하지, 요즘 영어 '욕' 학원에 다니잖아.”

선영의 말에 민수는 지지 않는 듯 말을 이어간다.

“나는 주로 욕으로 일을 해, 프로그램 언어가 다 영어 욕으로 되어 있어. ‘무브 삼십투 에이’ (MOVE 30 TO A), 애드 이십투 비 (ADD 20 TO B).”

“너희들 욕쟁이들이구나.”

도형이 재희와 민수를 바라보며 놀리듯이 말한다.

재희가 발끈한다.

“왜 이래? 나는 토플 욕이고, 쟤는 콩글리시 욕이야, 나하고는 수준이 달라.”

그 말에 민수는 같잖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팩 돌리며 헛웃음을 친다.

“허!”

이에 질 수 없다는 듯 재희가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며 콧방귀를 뀐다.

“흥!”

민수와 재희의 모습을 보며 도형이 묻는다.

“너희들은 아직도 그렇게 토닥거리며 싸우냐? 혹시 사귀니?”

그 말에 민수는 눈을 부릅뜨고 말한다.

“저 애가 꼬신다고 꼬셔질 얘야?”

재희도 동시에 소리친다. 

“얘는!”

도형이 웃으며 선영에게 묻는다.

“이것들 뭔가 있긴 있어. 이것들 사귀지?”

“몰라, 이것들이 뭐 하는지.”

“그래도 너는 재희랑 같이 지내니 좀 알 것 아니야?”

“원래 쟤들 저렇게 놀잖아. 뭐 귀엽긴 하지.”

“그래?”

도형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재희와 민수를 쳐다본다.

딴전을 피우는 재희와 민수.


“유학 준비는 잘 되고 있어?”

철호의 물음에 재희가 대답한다.

“토플 성적이 나오면 어플라이 할 예정이야.”

“박사과정이지?”

“응.”

“박사 따는데 몇 년 정도 걸릴 것 같아?”

“3년은 더 걸릴 것 같아.”


민수는 재희의 말을 들으며 심드렁하게 소주를 마신다.

재희는 민수의 그런 모습을 안타까운 듯 바라본다.



토요일 오전, 민수는 어제 받은 과제 안내문을 보고 있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놓인 메모지에 워크플로가 펜으로 그린다.


‘입금액 입력’과 ‘상품 가격 입력’이라는 기호가 그려지고 

각각의 입력 기호에서 흐름선이 아래로 그어지면서 판단 기호로 이어진다.

그 판단 기호에 따라 정상처리와 메시지와 판매불가 메시지를 출력하는 플로차트가 만들어진다. 

민수는 완성된 플로차트를 보며 머릿속으로 프로그램을 코딩한다.


“민수 씨”

플로차트를 보던 민수가 고개를 돌려 중만을 쳐다본다.

“민수 씨, 토요일인데 일찍 퇴근 안 해?”

“과제 때문에 회사에 좀 늦어질 것 같아요.”

“그래? 고생이 많네, 수고해.” 

“예,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중만이 자리를 뜨자 민수는 다시 자리에 앉아 그려 놓은 워크플로에 메모를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다. 

어느덧 사무실에는 민수와 한두 명의 직원만이 남아있다.

플로차트를 보며 코딩 시트지에 글자를 적어 넣는 민수.


사무실의 형광등이 켜져 있다.

현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편히 기댄 채 코딩 시트지를 한 손으로 들고 보다가 책상에 내려놓는다.

현수는 머리 뒤로 손깍지를 끼고 허공을 쳐다보며 재희를 생각한다.

현수가 전화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른다. 

전화 신호 가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진다. 

'뚜~ 뚜우~.'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자 민수는 할 수 없다는 듯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비가 오는 거리. 

민수와 동기 일행은 교육장 건물을 나와서 우산을 들고 길을 걷는다.

오늘도 사무실을 등지고 길거리를 떠돌아야 하는 양복 입은 노숙자들, 그러기에는 날씨가 궂다.

“비가 오는데 우리가 가던 곳으로 가기는 어렵겠지? 햄버거집으로 갈까?”

노숙자 대장 규섭이 언제나처럼 바람을 잡는다.

“점심시간에 사람들 몰려오면 거기서 오래 머물러 있기는 어려워.”

노숙자 No.2 연형이 약간의 우려를 한다.

그 말은 들은 비자발적 노숙자 민수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냥 사무실로 들어갈까?”

“에이씨... 들어가 봤자 할 짓도 없는데 사무실에 왜 들어가?”

찍소리 못하는 민수, 그러나 남준이 나선다.

“과제를 하면 되지. 그러면 밤에 늦게 남아있을 필요도 없잖아.”

“나는 안 들어갈 거야, 너나 들어가.”

꼬장을 부리는 규섭, 과연 노숙자 대장답다.

남준이 슬며시 꼬리를 내리며 말한다.

“나 혼자서 어떻게 사무실에 들어가나. 어디로 갈 거야?”

“글쎄...”

민수가 노숙자들을 위한 비장의 카드를 내민다.

“회사 지하에 있는 쇼핑 플라자로 가면 어떨까?”

“미쳤어? 우리 사무실 사람들 눈에 띌 수도 있잖아?”

규섭이 반발하자 민수가 합리적 이유를 말한다.

“거기에 고급 식당가 사이 으슥한 곳에 벤치가 있는데, 사무실 사람들이 그곳으로 올 것 같지는 않아.”

“말 되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좋은 생각이야.”

No.2 노숙자의 말에 노숙자 대장이 결정을 내린다.

“일단 한번 가보자고.”


우산을 든 일행은 그들의 회사 건물로 침입한다.



일행은 지하 식당가 후미진 곳의 벤치에 가서 앉는다.

“어떻게 이런 깜찍한 장소를 알고 있었어?”

“아~, 에어컨 공기. 시원해서 살 것 같다.”

이구동성으로 감탄하는 동기들을 보며 민수가 뻐기듯 말한다.

“조명도 어둑한 게 잠자기 딱이지?”

“지금까지 지옥을 헤매다가 이제서야 천국에 온 느낌이다.”

“사무실 사람들에게 걸리면 어떡하지?”

규섭의 우려에 연형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쪼잔하기는! 누가 근무 시간에 여기 내려오겠어?”


세련된 옷차림의 여성 둘이 그들 앞을 지나 식당으로 들어간다.  

그것을 본 연형은 민수를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민수는 책상에 앉아 코딩 시트를 보며 과제를 한다.

소라가 민수에게 다가와서 비닐에 담긴 동전 한 꾸러미를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선생님, 여기 커피값.”

“고맙습니다.”

“...”

소라는 아무런 대꾸 없이 자리로 돌아간다.

민수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다시 과제에 몰두한다.

둘 사이의 관계는 이제 회복이 불가능해 보인다.



전산 교육 수업을 마친 일행이 건물 1층 출입문을 통해 나온다.

동기들과 함께 걷는 민수는 화가 잔뜩 난 표정이다.


민수와 동기들이 건물 지하 식당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다.

“프로그램 코딩에서 마침표 점 하나 안 찍었다고 어떻게 50점이나 깎나?”

민수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자 남준이 위로한다. 

“좀 심하긴 했지. 그냥 로직을 제대로 구사했는지를 보면 되는데...”

“NASA에서 프로그램에 점 하나 안 찍어서 인공위성이 우주 미아가 되었다고 하잖아. 그러니 점수가 깎일 만하지.”

눈치 없이 민수의 부아를 채우는 규섭. 

민수는 그런 규섭을 같잖다는 듯 쳐다보며 불만을 나타낸다.

“하, 참...”

“화날 만도 하겠다. 나는 남준이 것 베껴서 냈는데도 80점 받았는데.”

민수를 다독이는 연형.

“강사는 자기가 컴퓨터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치사한 인간 같으니.”


민수의 말에 연형이 불을 지른다.

“전산 하는 사람들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어?”

“컴퓨터라는 기계에 얽매여서 살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지금이라도 그만 둬야 하나 싶다.”

민수의 폭발에 규섭이 달랜다.

“점 하나 못 찍은 것 가지고 별 생각을 다 하네, 참아.”


민수는 씩씩거리며 앉아서 허공을 주시하고 있다.

나머지 세 명의 동기들은 민수의 눈치를 살피며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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