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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Oct 08. 2024

뽀록난 일탈

연재소설 : 러브 코딩 12화 - 뽀록난 일탈

전산 교육 강의실.

화이트보드에 ‘배열’이라는 글자와 함께 많은 내용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강의를 마친 강사가 화이트보드에 적힌 내용을 지우며 말한다.

“이번 주말에 하실 과제는 캘린더를 출력하는 것입니다.”

“...”

수강생들의 무반응에 강사가 웃으며 말한다.

“반응이 없으신 것을 보니 프로그래머로서 이제 적응이 되었나 봅니다?”

“포기한 것입니다.”

연형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수강생들이 일제히 웃는다.

계속 이어지는 강사의 설명.

“캘린더를 출력하는 것은 오늘까지 배운 배열을 이용하여서 코딩하시면 됩니다. 코딩에 필요한 기타 사항은 과제 안내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과제는 이전과 같이 에뮬레이터에서 직접 작업하시고 난 후 소스 코드, 컴파일 리스트 그리고 작업 결과 리스트를 함께 제출해 주세요. 질문 있나요?”

“...”

“저번 주에는 다른 사람 것을 베껴서 낸 사람이 있던데 이번에도 그러면 0점 처리하겠습니다.”

역시 아무 말 없는 수강생. 

강사가 웃으며 마무리한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강사가 강의실에서 나가고 수강생들이 웅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행이 여느 때처럼 식당가 벤치에 할 일 없이 앉아 있다.

“너희는 단말기를 근무 시간 중에 쓸 수 있나?”

규섭의 말에 남준이 대답한다.

“선배들이 잠깐씩 자리를 비울 때마다 단말기를 쓰는 거라 집중이 안 돼, 퇴근 시간 이후에 빈 단말기 찾아서 쓰는 게 더 편하지.”

“이번 과제는 프로그램이 길 것 같은데?”

민수의 말에 연형이 우려하듯 말한다.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더듬더듬 쳐서 언제 끝내려고?”

“그래서 주말에 이런 과제를 내어 주잖아. 회사에서 주말 내내 키보드나 두드리라고.” 

규섭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한다.

“오늘 저녁에 야근할 거지? 저녁 식사 때 서로 좀 알려 주자고.”

남준의 말에 규섭이 민수를 보며 괜히 타박한다.

“저번 때처럼 식사하다가 술 마시자고 바람 잡지 말고.”

“과제 때문에 토요일 일요일 내내 회사에 있을 텐데 금요일 오늘 하루만이라도 편하게 재끼는 게 어때?”

민수의 말에 남준이 웃으며 말한다.

“야, 이 화상아, 오늘 저녁 다른 데 술 약속 없나?”

“하하, 없어, 너희들 오늘 술로 다 뒈졌어.”

민수의 협박에 일행이 웃는다.


책상 자리에 앉아 플로차트를 그리고 있는 민수, 

복잡하게 그려 놓은 플로차트를 보다가 펜으로 크게 X자를 그은 후 그 옆에 다시 그린다.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치던 중만이 민수에게 묻는다.

“잘되고 있어?”

민수는 눈을 들어 중만을 보며 말한다.

“이번 과제도 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라고. 그래야 내가 이 단말기를 민수 씨에게 물려주지. 하하하.”

민수는 중만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다가 플로차트가 그려진 메모지로 다시 눈길을 돌린다.



팀원들이 퇴근한 사무실에 민수는 그려 놓은 플로차트를 보면서 단말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규섭이 민수에게 다가온다.

“벌써 코딩하고 있어?”

“그냥 프로그램 틀만 잡고 있어.”

“이게 저녁 먹을 때 술을 못 먹게 했더니 아주 미쳤구만.”

“뭐 내일도 날이니까. 내일 낮술 어때?”

“너가 프로그램을 다 짜준다면 OK이지.”


규섭은 민수의 책상에 놓인 플로차트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본다.

“오, 이렇게 하면 되겠네. 고마워. 오늘 몇 시에 갈 거야?”

“9시 반?”

“오케이.”

규섭이 그의 자리로 돌아간다.



사무실, 토요일 오전.

민수는 플로차트를 그려 놓은 종이를 보며 뭔가 열심히 적고 있다.

단말기를 보며 일하고 있는 중만에게 강우가 다가온다.

“담배 피우러 같이 나갈까?”

“오케이, 안 그래도 나갈 참이었는데.”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는 중만을 보며 말한다.

“선배님, 단말기 잠깐 사용해도 될까요?”

“내가 짜던 프로그램 업데이트해 놓고 써.”


단말기를 잠시 맡은 민수는 플로차트를 보며 단말기 키보드를 바쁘게 두드린다. 

잠시 후 프린터 쪽으로 가서 출력된 장표 리스트를 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다. 민수는 자리로 돌아와 리스트를 보며 볼펜으로 수정한다.

잠시 후 중만이 돌아온다.

“단말기 다 썼어?”

“예, 다 썼습니다. 코딩해 놓은 것 리스트로 좀 뽑느라고요.”

“토요일인데, 오늘도 늦게까지 작업해야 해?”

“예, 내일도 나와야 할 것 같아요.”

“하하, 고생이 많네.”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한적한 사무실.

단말기 앞에 앉은 민수는 볼펜으로 수정한 리스트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남준이 일하고 있는 민수에게 다가온다.

“잘 되고 있어?”

민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한다.

“헤매고 있지 뭐.”

“너도 코딩 에러 고치고 있네?”

“프로그램을 돌릴 때마다 신텍스(syntax) 에러가 왕창 쏟아지는데. 에러 리스트를 보면서 코딩 수정 중이야.”

심드렁하게 말하는 민수에게 남준이 아쉬운 듯 말한다.

“나는 컴파일 에러가 걸려서 뭐 좀 물어볼까 했는데.”

“벌써 코딩을 다 마쳤어? 빠르네.”

민수는 남준에게 대답하면서도 단말기에 눈을 꽂은 채 코딩을 고치고 있다.

민수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남준은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시간이 흐른다. 창밖에 어둠이 어슴푸레하게 깔려 있다.

규섭이 민수 자리로 다가온다.

“다 되어가?”

“지금 농담해? 에러가 안 잡혀서 미쳐가고 있다.”

“무슨 에러인데?”

“신텍스 에러 다 잡고 나니 이제 컴파일 에러가 속을 썩이네. 매뉴얼을 보면서 고치고 있는데 영어로 된 매뉴얼을 보면서 하려니 쉽지 않다.”

“어차피 내일 나와야 할 건데, 여기서 일단 접고 한잔하러 가자.”

규섭의 제안에 민수는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한다.

“다른 얘들은?”

“너가 한 번 꼬셔봐.”

민수는 7시 반을 넘어서는 시계를 힐끗 보면서 일어난다.

“오케이!”


잠시 후 민수와 동기 일행이 사무실에서 나간다.



멀리 떨어진 자리에 규섭이 보이는 적막한 사무실.

어느덧 일요일의 붉은 저녁 햇살이 창문으로 스며든다.


민수는 지친 표정으로 단말기 화면과 프로그램 리스트를 번갈아 보고 있다.

“뭐가 문제야. 미쳐버리겠네.”

민수는 키보드를 친 후 모니터에 나타난 작업 결과를 쳐다본다.

모니터에 ‘1월’이라는 글자 함께 요일만 나열되어 있다.

민수는 프로그램이 인쇄된 리스트를 골똘히 바라보다가 펜으로 수정한다. 

그리고 수정된 리스트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작업하다가 다시 모니터를 심각하게 바라본다. 

작업이 잘 안 되는지 책상 위의 동전통에서 동전을 꺼내 들고 사무실을 나간다. 


잠시 후 커피를 홀짝거리며 다시 사무실로 들어온 민수는 자리에 앉는다.

지친 표정으로 손으로 턱을 괴고 모니터에 나타난 프로그램 코딩 화면을 키보드로 올리고 내리며 바라보는 민수.

프로그램 코딩을 무심히 바라보던 현수가 모니터에 눈을 가까이 붙인다.

“엇!”

모니터에 나타난 프로그램의 한 부분에 손가락을 짚으며 말한다.

“설마 이것 때문인가?”

민수는 키보드를 급하게 친 후 모니터를 바라보며 기다린다. 

잠시 후 모니터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 현수. 

모니터 화면에 완성된 캘린더가 펼쳐져 있다.



민수와 동기 일행은 교육장 건물에서 빠져나와서 이야기하며 걷는다.


민수와 동기들은 식당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다.

“신텍스 에러나 컴파일 에러는 컴퓨터가 에러 이유를 알려 주지만, 로직 에러는 내가 그 원인을 찾아야 하잖아. 어제 그거 잡느라 뺑뺑이를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몰라. 한 스무 바퀴?”

민수의 말에 남준도 웃으며 말한다.

“뺑뺑이? 말 되네, 나도 어제 열나게 돌았어.”

“그런데 그것이 컴퓨터와 나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나 사이의 문제더라고. 내가 짜놓은 프로그램에서 나의 잘못을 찾는다는 것, 그러니까 내 관념에 대한 부정? 코딩이라는 일이 뭐 그런 것이더라고.”

민수의 말에 연형이 감탄하듯 말한다.

“야, 말 참 멋있게 하네. 프로그램 짜더니 철학자가 다 된 거야?”

“엇...”

민수가 한 곳을 응시하며 말을 멈춘다.

함께 수다를 떨던 동기들은 민수가 보는 눈길로 시선을 옮긴다. 

회사 유니폼을 입은 소라가 또래의 다른 여성과 함께 그들 앞을 지나가다가 그들을 바라본다.

연형이 혼잣말로 나지막하게 외친다.

“아, 엿 됐다!”

소라가 민수를 바라보며 말한다.

“어머, 선생님, 여기서 뭐 하세요?”

민수가 말을 더듬으며 말한다.

“식사하고 쉬고 있어요, 아 참, 식사하려고 쉬고 있어요.”

“좋은 데서 식사하시네요. 그럼 잘 쉬세요.”

웃으면서 말한 소라가 멀어져 간다.

“아, 엿 됐다. 이제 사무실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거 아니야.”

규섭의 말에 남준이 웃으며 말한다.

“어떻게 하지?”

“민수이가 정소라를 구워삶든 싹싹 빌든 정소라 입을 막아야지.”

규섭의 말에 민수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정소라 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은데.”

연형이 민수를 괜히 나무란다.

“그러니 평소에 잘했어야지!”

“이제 노숙 생활 청산하고 사무실로 들어가야 하나?”

남준의 말에 규섭이 말한다.

“이제 와서 사무실로 들어간다면 우리의 과거가 다 뽀록날 텐데….”

“과거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연형이 웃으면서 말하자 남준이 민수를 바라보며 놀리듯이 말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식당에 가서 밥이나 먹고 쉬자고. 밥 먹으려고 쉬지 말고.”

모두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하필 소라에게 약점이 잡힌 민수는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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