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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Oct 04. 2024

신입사원들의 수다

연재소설 : 러버 코딩 10화 - 신입사원들의 수다

모두 퇴근하고 민수 혼자 단말기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치고 있다.

‘툭탁툭탁 툭 탁 툭 탁’

모니터에 ‘ABCDEFG’에 ‘HIJKLMN’까지 늘어난 문구가 반복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민수가 키보드 치다가 전화기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전화버튼을 누른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재희의 목소리.

“여보세요?”

“디스이즈 민수.”

전화한 것이 어색한 민수가 영어로 시건방을 떨어본다.

“그래, 민수야.” 

차분한 재희의 대응에 현수가 둘러대듯 말한다. 

“저녁 먹었어?”

“방금 식사했어, 너는?”

“아직.”

“혹시 저녁 먹자고 전화했니?”

재희의 예리한 촉에 당황한 민수, 딱 잡아뗀다.

“아니야!”

“하하, 모두 퇴근하고 너만 있구나.”

“어떻게 알았어?”

“제일 졸병인 너가 이렇게 편하게 전화할 리가 없잖아.”

민수는 재희에게 아부하듯 감탄하는 투로 말한다.

“오, 예리한데.”

“이번 주 금요일 모임 있는 거 알지?”

그 말에 잠시 멈칫한 민수, 순간적으로 전화한 핑계를 만들어 낸다.

“응, 그것 때문에 전화했어,”

“피, 거짓말.”

“정말이야, 전화하라고 했잖아?”

“내가 그랬나? 종각에 있는 그 집 알지? 얼마 전에 거기서 친구들하고 만났잖아.”

“응, 알아.”

“그 집에서 7시에 보기로 했어.”

“그래 시간에 맞춰서 갈게.”

“그래, 그런데 그 여사원, 요즘은 어때?”

재희가 소라를 언급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민수, 퉁명스럽게 말한다.

“내가 그냥 무시해.”

“그 여사원은 너가 마음에 드는가 봐?”

소라 이름만 들어도 쫄리는 민수, 펄쩍 뛰며 말한다.

“무슨 소리야. 넘겨짚지 마.”

“이 누나의 감이 그래, 잘해 봐.”

민수는 약이 올라 열을 내며 말한다.

“오, 정말 미치겠네. 감을 그렇게 잘 잡는 너가 아직도 내 마음을 몰라?”

“얘가 웃겨, 내가 너 마음을 왜 알아야 하니?”

“하기야 나도 천방지축 같은 너의 마음을 모르니 피장파장이지.”

“천방지축? 너는 참 특이한 말만 골라서 해. 내가 천방지축? 하하하.”

“갈대 같은 마음이라는 말보다는 좋잖아?”

“흥! 이번 금요일에 봐. 내가 전화해 줄게.”

“응, 금요일, 알았어.”

민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기를 바라보며 싱긋이 미소를 짓는다.


민수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친다.

모니터에 'ABCDEFG HIJKLMN'가 반복적으로 나열된다.



수강생들이 강의실에 앉아서 옆 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다.

강의실에 강사가 교재를 들고 들어온다.

수강생들이 자세를 바로 잡아 강사에게 주목한다.

“안녕하세요?”

일제히 대답하는 수강생들.

“안녕하십니까?”

“먼저 여러분의 의견을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거리가 먼 회사에서 오신 분들이 계신 데, 회사에 복귀하면 점심시간을 놓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의 중간에 10분 휴식 없이 두 시간 연속 강의를 해서 수업을 10분이나 20분 일찍 마치려고 하는데 여러분 의견은 어떻습니까?”

수강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좋습니다!”

“예, 그러면 중간에 휴식 없이 수업하겠습니다.”


강사가 OHP에 필름을 올린다.

화이트보드에 '연산 처리'라는 제목과 그 내용들이 펼쳐진다.

강사의 설명하는 모습과 강의를 받는 수강생의 모습으로 시간이 흐른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 시간이 11시 20분이네요. 오늘 과제는 1부터 100까지의 숫자를 프린팅 하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사무실 앞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과제 안내문을 가져가서 참조하시고, 어제 과제를 수행한 코딩 시트는 사무실 앞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세요.”


강사가 나가고 수강생들도 웅성거리며 강의실에서 나간다.



민수 동기 일행이 강의실이 있는 건물 바깥으로 나온다.

“지금 11시 20분인데 어떻게 할래? 사무실에 지금 들어갈 거야, 아니면 다른 데서 시간을 보내고 식당으로 갈까?”

사무실에 들어가기 싫은 규섭이 분위기를 잡는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싫은데... 들어가 봤자 할 일도 없잖아?”

연형이 사무실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이유에 못을 박는다.

“그렇지? 사무실에서 눈치 보며 앉아 있는 것보다는 밖에서 시간 보내는 게 훨씬 낫겠지? 민수이하고, 남준이는 어떻게 할 거야?”

규섭이 남준과 민수에 은근히 압박을 가한다.

“점심 식사를 일찍 하고 사무실에 들어가는 게 좋지 않나? 점심시간이라 어차피 사무실에 사람들이 없을 텐데.”

남준의 합리적인 의견에 민수가 문제점을 지적한다.

“우리가 지금 구내식당에 가서 식사하고 나갈 때쯤에 식사하러 들어오는 우리 사무실 사람들과 마주칠 수 있는 시간인데, 좀 애매하지 않나?”

“그렇지, 수업 마치고 밖에서 땡땡이치는 것이 들통나지. 남준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규섭이 민수의 의견을 이용하며 동기들을 밀어 붙인다.

민수는 그냥 의견만 말했을 뿐인데... 졸지에 규섭 의견에 동조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사무실로 들어가고 싶은 남준, 그러나 동기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 그러면 어디서 시간을 보낼 건데?”

“어디 벤치 같은 데 가서 좀 쉬다 가면 되지.”

규섭이 의견을 제시하자 연형이 확실하게 매듭을 짓는다.

“그래, 움직여 봐.” 

이때부터 그들의 길거리 방황이 시작된다.


건물 뒤의 돌 벤치에 앉아 있는 민수와 그 동기들.

“연수받을 때는 회사에 빨리 출근하고 싶었는데 막상 출근해 보니까 기대했던 것 같지 않다, 벌써 지겨워지려고 해.”

연형의 탄식하듯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남준이 묻는다.

“우리가 사무실에 온 지 며칠 째지?”

“지난주 월요일에 왔으니까 이제 10일밖에 안 되었는데.”

민수가 경과 일 수를 가늠하여 말하자 규섭이 말을 이어간다.

“나는 한 달처럼 길게 느껴진다.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는 거야?”

“아직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군대에서 신병 때가 시간이 제일 안 가는 것처럼.”

민수의 말에 연형이 웃으며 맞장구를 친다.

“군대 신병? 내무반에서 각 잡고 앉아서 아무 짓도 못 하고 고참들 눈치 보는 거? 맞네! 딱 그거네.”

규섭이 불만을 쏟아낸다.

“전산 일을 한다기에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폼 잡고 키보드 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코딩 시트에 글자나 따박따박 적어 넣고 있으니...”

연형이 규섭과 말을 주고받는다.

“적성검사 결과 나온 대로 정보시스템을 선택했는데 적응이 안 돼.”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노숙자처럼 길거리에서 이러고 있잖아.”

“양복 입은 노숙자? 우리 엄마가 알면 기절하겠다.”


일행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다가 구내식당으로 향한다.



민수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단말기 테이블에 앉아 키보드의 자판을 반복적인 리듬으로 두드린다. 

‘탁탁 타다닥 투다닥...’

모니터 화면에 'ABCDEFG HIJKLMNOP'가 일정한 속도로 나열되어진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소라와 민수가 무뚝뚝하게 아침인사를 주고받는다.

여전히 냉랭한 둘 사이.

민수는 도발하듯 키보드를 힘차고 빠르게 두드린다, 

'투다다닥...'

소라는 민수를 무시하듯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으며 자기 자리로 간다.

민수는 소라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보고는 흥미를 잃은 듯 키보드를 천천히 친다. 

'탁 탁 탁...'.



수업을 마친 강사가 OHP를 끄며 말한다.

“주말 동안 하실 수 있는 과제를 내어드리겠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과제입니다.”

“에이~.”

수강생들이 일제히 탄식한다.

“여러분 자판기 아시죠? 자판기에 다양한 가격의 음료수가 있잖습니까? 화폐를 집어넣고 버튼을 선택하면 상품과 거스름돈이 나오게 됩니다. 오늘 과제는 거스름돈을 처리하는 모듈의 코딩 과제입니다. 연산문과 오늘 배운 조건문을 응용하면 코딩할 수 있을 거예요. 질문 있나요?”

“...”

강의실에서 빨리 나가고 싶은 수강생들이 질문을 할 리가 만무하다.

“자세한 사항은 과제 안내문에 적혀 있습니다. 사무실 앞에 비치된 과제 안내문과 코딩 시트 3매씩 가져가세요. 다른 사람 것 베끼면 두 사람 다 0점 처리되는 것 아시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강사가 강의실에서 나가자 수강생들도 웅성거리며 뒤따라 나간다.



민수와 동기들은 건물 뒤의 화단 돌 벤치에 모여 앉아 이야기한다.

연형이 동기들 앞에 서서 불만을 토한다.

“아니, 이런 과제를 내주면서 즐거운 주말 되라는 게 말이 되나? 강사가 돈 것 아니야?”

“내가 보기에 연형이 너는 딱 영업 체질인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남준이 연형이 말을 주고받는다.

“맞아, 나는 책상에 앉아서 꼼꼼하게 뭐 할 성질이 못돼. 컴퓨터라고 하니 뭣모르고 덤벼든 게 잘못이지.”

“그래도 너는 수학과 출신이잖아, 이런 거 잘할 것 같은데.”

연형이 다시 열변을 토한다.

“나는 'MOVE 20 TO A'라는 문장 자체가 이해가 안 돼. 이것이 수학적으로 말이 돼?”

“그냥 정해 놓은 형식인데 그렇게 이해하면 안 되나?”

“이럴 때는 'A EQUAL 20'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20을 A로 옮기고 난리야, 안 그래도 바쁜 세상에.”

“하하, 그럼 너가 그런 프로그램 랭귀지를 만들면 되겠네. 그 프로그램 랭귀지 이름을 A랭귀지라고 하면 어때?”

“나는 A학점 보다 C 학점이 더 친해. C 랭귀지, 어때? 인간적이지 않아?.”

“C 랭귀지? C언어라. 언제 한 번 들어 본 것 같은데...”

남준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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