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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Oct 02. 2024

서러운 신입사원

연재소설 : 러브 코딩 8화 - 서러운 신입사원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이른 아침의 사무실.

사무실에 들어선 민수는 자기 책상 서랍에서 일일마감일지를 꺼내서 단말기 테이블 자리에 앉는다. 

단말기 스위치를 누르고 모니터 화면에 단말기가 로딩되는 것을 지켜보는 민수.

검은 바탕 화면에 녹색 영문이 아래에서 위로 빠르게 흐른다.

잠시 후, ID와 PASSWORD 입력화면이 나타난다. 

민수는 집게손가락으로 단말기 키보드의 자판을 더듬더듬 두드리기 시작한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바뀌면서 간밤에 종료된 일일마감작업 결과가 나타난다.

민수는 화면에 나타난 작업 결과를 보며 일지에 숫자를 적어 넣는다.


잠시 후 젖은 수건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선 소라는 민수를 지나치며 무심하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민수는 모니터에 집중하던 눈길을 소라에게 돌리며 밝게 인사한다.

“어? 안녕하세요?”


아무 대꾸도 없이 싸늘하게 지나가는 소라,

‘아, 중만 사수가 말한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순간 민수는 자신의 과오를 뼈저리게 체감한다.

민수는 소라의 뒷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본 뒤 다시 모니터로 눈길을 돌린다.


소라는 서과장 자리로 가서 젖은 수건으로 책상을 닦기 시작한다.


일일마감작업 점검을 마친 민수는 점검 일지를 덮는다.

모니터에 빈 화면을 띄운 민수는 키보드를 치며 타자 연습을 시작한다. 

타자 치는 것이 익숙지 않아 키보드 버튼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입력하는 민수.

키보드 치는 소리가 천천히 '탁, 탁, 탁'하면서 나고, 단말기 화면에는 'ABCDE...' 알파벳이 나열되며 채워진다. 


먼 자리에서부터 책상을 닦으며 다가온 소라는 중만의 책상을 닦은 후 민수가 앉아 있는 자리 옆에 선다.

민수는 키보드를 치다가 옆에 서 있는 소라를 힐끗 쳐다본다. 그리고 소라가 테이블을 닦을 수 있도록 자리에서 ’공손히‘ 일어난다.

소라는 민수의 단말기 테이블을 닦다가 알파벳으로 가득 채워진 화면을 보고는 '픽' 하고 웃는다.

소라의 무시하는 웃음에도 민수는 아부하듯 따라 웃는다.

참 애절한 민수...

소라는 단말기 테이블 옆의 민수의 책상도 마저 닦은 후 자기 자리로 간다.

“감사합니다.”

민수는 소라에게 성의를 다해 감사를 전한다. 어찌 보면 간사스럽기까지 하다.

“...”

민수는 소라의 싸늘한 반응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키보드를 두드린다.

어쩌다가 신입사원 이민수의 신세가 이렇게 되었는지...

민수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서러움을 속으로 삭인다.


사무실에 들어선 중만은 상의를 벗어 자기 의자에 걸친다.

민수는 일어서며 중만에게 인사한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응, 일찍 나왔네.”


민수는 단말기를 급하게 두드려 log off 한 후 자기 책상 자리로 옮겨 앉는다.

“어제 작업 잘 돌았어?”

민수는 점검을 마친 일일마감일지를 중만에게 건넨다.

“예, 에러는 없습니다.”

“그래?”

중만이 단말기 앞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작업 일지를 펼쳐서 본다.


출근하는 신규가 자기 자리에 상의를 벗어 의자에 걸친다. 

민수가 의자에서 일어나 인사한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예, 주말 잘 지냈어요?”

“예.”

신규는 중만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선배님, 잘 쉬셨어요?”

“어, 그래, 어서 와.”

신규가 의자에 앉으려다 뒤쪽의 소라를 보며 인사한다.

“소라 씨, 주말 잘 쉬었어?”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좋아 보이시네요.”

신규는 소라의 상냥한 인사에 웃으면서 자리에 앉는다.

민수는 신규와 소라가 인사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일섭이 출근하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과시하듯 큰 소리로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사무실 사람들이 무료한 표정으로 TV에서 나오는 조회방송을 보고 있다. 

이윽고 방송 종료 시그널 음악이 나오고 TV가 꺼진다.

민수는 가방을 챙겨 들고 일어나서 중만을 바라본다.

중만은 단말기 모니터를 보다가 민수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저... 교육 다녀오겠습니다.”

“아, 그렇지, 오늘부터 교육이지. 몇 시 시작이야?”

“9시 반에 시작합니다.”

“맞아, 교육 장소가 시청 뒤쪽이라 그랬지?”

“예.”

“그래요, 잘 다녀와.”


민수는 일섭과 신규에게도 인사한 후 사무실을 나선다.



규섭과 연형이 회사 밖에서 건달처럼 기다리고 있다. 

민수와 남준이 회사 회전문을 열고 나와 그들과 합류한다.

규섭은 늦게 나온 그들을 보챈다.

“빨리 안 나오고 뭐 해?”

“언제 나왔어?”

민수가 묻자 규섭이 뻐기듯 말한다.

“조회 방송하기 전에 나왔다.”

“그래? 나도 조회방송 전에 나와야겠다.”


일행은 길을 걸으며 사무실에서 하지 못했던 말들을 내뱉기 시작한다.

“너희는 어때? 할만해?”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아무 일 없이 꼰대들 눈치 보고 있으려니 죽겠다.”

연형의 투정에 규섭은 열을 내며 동조한다.

“내 사수는 시스템 매뉴얼만 던져 주고는 신경도 안 써. 알지도 못하는 시스템 매뉴얼을 보고 있으려니 좀이 쑤셔 죽겠다.”

“출근할 때 보니 민수는 벌써 단말기 앞에서 열심히 일하던데?”

남준의 말에 연형이 웃으며 사실을 밝힌다.

“나도 봤는데, 단말기 화면에 ABCD 알파벳만 열심히 처넣고 있더라고.”

“타자 연습.”

겸연쩍게 말하는 민수를 규섭이 부러운 듯 타박한다.

“대단한 놈이야, 벌써 단말기를 만지다니.”

연형도 부러운 듯 말한다.

“나는 아직 키보드에 손도 못 대어 봤다.”

일행은 재잘거리며 지하도로 내려간다.



교육장의 작은 강의실.

두 줄로 놓인 2인용 테이블에 대략 스무 명의 수강생이 앉아있다.

왼쪽 줄 끄트머리에 규섭과 연형 앉아 있고 그 앞에 남준과 민수가 앉아 있다.

강사가 책자를 들고 들어와서 강의실 앞에 선다.

강의실을 휘둘러 보는 강사.

“이번 교육 차수도 남성 수강생들뿐이군요.” 

웃으라고 말한 강사의 말에 수강생들이 긴장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4주 동안 위탁교육 강의를 맡은 강사 허시우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이 참여하는 이 전산 교육은 구조적 프로그래밍 과정입니다. 총 4주의 과정으로써 이론과 실습과제로 구성됩니다. 프로그램 랭귀지는 코볼을 이용합니다. 혹시 여러분 회사에서 코볼 안 쓰는 회사 있습니까?”

조용한 수강생들, 모두가 코볼을 쓰는 회사에서 왔다. 

“이번 교육은 프로그래밍 이론을 강의하고 여러분이 회사로 돌아가서 과제를 수행하며 실습하게 됩니다. 물론 과제를 제출하면 평가가 이뤄지게 됩니다.”

강사가 제일 앞줄 테이블에 책자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어간다.

“이번 교육과정 강의 책자입니다. 뒤로 넘겨 한 부씩 가지세요.”

앞줄에 앉은 사람이 뒷줄로 책자를 넘긴다.


“교육에 앞서 각자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도록 하죠.”

강사의 말에 제일 앞줄에 앉은 사람부터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한다. 

“JS 중공업 오대수입니다.”

“JS 중공업 김인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앉은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하고 이윽고 남준과 수형에게 이른다.

“선우생명보험 조남준입니다.”

“같은 회사 이민수입니다.”

     ... 

“태성전자 서성찬입니다.”

각자의 소개를 마친다.

“다들 좋은 회사에서 오셨군요. 자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강사는 OHP를 켜고 납작한 종이함에서 OHP 필름을 꺼내 OHP 투시기에 올린다. 

강단 앞에 놓인 화이트보드에 ‘EDPS (Electronic Data Process System)’ 라는 타이틀과 세부 내용이 투시된다.

“여러분이 회사에서 하시는 일은 EDPS를 담당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전자적 자료 처리 시스템이죠. 예전에 종이로 자료를 처리하던 것을 이제는 바이트 단위의 데이터로 업무를 처리하게 되는 일입니다.”

강사의 강의하는 모습과 수강생들의 진지한 모습이 이어지며 시간이 흐른다.


“이와 같은 사무 처리 과정이 전자적 프로세스, 즉 컴퓨터의 논리적인 처리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여러분들이 담당하게 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전산 개념에 관해 설명했는데 질문 있습니까?”

“...”

조용한 수강생들.

“자, 10분간 휴식하고 다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강사가 강의실 밖으로 나간다.


민수는 긴장을 풀 듯 기지개를 켜며 남준에게 묻는다.

“어때? 좀 알아듣겠어?”

“개념에 대해서 말하는 건데, 그냥 그렇구나 하고 듣는 거지.”

“개념 쌈 싸 먹는 소리라서 그런가.., 아, 왜 이리 졸리냐.”

연형은 하품하며 책상에 엎드린다.


잠시 후, 자리로 돌아온 강사는 OHP 필름을 OHP 투시기 위에 올린다. 


강의가 한참 이어진 후, 강의실 앞 화이트보드에 '요점정리'라는 글자와 함께 강의한 내용에 대한 요점이 뜬다. 

“이와 같은 내용은 오늘 배부된 책자에 수록되어 있으니까 그것을 참고해 주시고요. 그 외 질문 사항 있습니까?”

“...”

“자 그럼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오늘은 과제가 없습니다. 내일부터 과제가 나가게 되면 많이 바쁘실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강사가 강의실에서 나가고, 뒤이어 수강생들도 일어나서 나간다.



민수와 동기 일행은 교육장 건물에서 나온다.

“강의실에 어떻게 시커먼 남자들만 있나... 어휴 내 팔자야...”

연형의 한탄에 규섭이 그럴만한 이유를 말해준다.

“이번뿐만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전산직에 여자가 원래 없나 봐.”

“여자도 없는 이런 직종에서 내가 일하게 된다니, 허허허.”

“그래도 우리 사무실에 여사원들 있잖아?”

남준의 말에 연형이 직설적으로 말한다. 

“사무실에서는 여사원은 고참 같아서 여자로 보이지도 않아.”

여사원 소라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민수도 나선다. 

“그래, 맞는 말이지. 여사원들도 우리 같은 신입사원을 우습게 보니...”

“사무실에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야.”

연형의 말에 규섭이 말을 보탠다. 둘은 작당하듯 말을 주고받는다.

“사무 실 뿐이겠어? 밖에 같이 나가서 식사할 때도 불편해.”

“그게 다 신입사원 쫄다구들의 서러움 아니겠어?”

“사무실로 들어가지 말고 우리끼리 식사하러 갈까?”

“굳 아이디어! 사무실 들리지 말고 곧장 식당으로 가자고.”


그렇게 서러운 신입사원들의 이유 없는 반항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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