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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Oct 01. 2024

빗나간 복수

연재소설 : 러브 코딩 7화 - 빗나간 복수

민수는 앉아서 업무 매뉴얼을 보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손목을 비틀어 시계를 본다, 3시 15분.

민수 자리로 다가온 소라가 쪽지를 내민다.

“선생님, 이것 좀 작성해 주세요.”

민수는 쪽지에 적힌 내용을 살펴본 후 미심쩍은 듯 말한다.

“이걸 왜 적어 내야 하죠? 기획팀 OJT 할 때 적어 냈는데.”

“우리 시스템1과 비상 연락망하고 명함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필요해요.”

“여기 취미와 18번 곡,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도 적어 내야 하나요?”

소라는 민수를 장난스럽게 쳐다보며 말한다.

“예, 적어 내셔야 해요.”

민수는 쪽지에 적힌 내용을 의심스럽게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민수 책상 위의 전화기가 울리자 수화기를 집어 드는 민수.

“정보시스템실 신계약팀 이민수입니다.”

상대방의 전화를 듣고 있던 민수가 묻는다.

“전산이 안 된다고요?”

상대방의 말에 민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화면이 안 켜진다고요. 어떻게 화면이 안 켜지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안 되는데요?”

쩔쩔매는 민수의 모습을 바라보던 소라가 민수의 자리로 다가온다.

“저가 전화를 받아 볼까요?”

민수는 수화기를 소라에게 건넨다.

“영업소에서 온 전화인데 화면이 안 켜진대요.”

전화 수화기를 건네받은 소라가 통화를 한다.

“여보세요, 화면이 안 켜진다고요?... 

그러면 모니터 스위치를 켜보세요... 

네 화면 켜지는 것이 모니터예요, 그 모니터 아래쪽 오른쪽에 스위치가 있을 거예요.”

소라가 잠시 기다리다가 통화를 이어간다.

“On으로 되어 있다고요? 그러면 전기를 연결하는 콘센트가 빠졌는지 보세요.”

민수는 통화하는 소라를 바라본다.

“빠졌다고요? 그것을 끼우세요.... 됐어요?... 그럼 됐네요. 수고하세요.”

소라는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민수에게 말한다.

“다 됐어요.”

민수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소라를 쳐다보며 묻는다.

“어떻게 알았어요?”

소라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다 짬밥이죠.”

“짬밥요?”

민수는 의외라는 듯 묻자 소라는 중만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김선배님이 자주 쓰는 말이에요.”

중만은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치면서 소라의 말을 듣고는 싱긋이 웃는다,

소라가 민수에게 묻는다.

“저가 부탁한 것이 다 되셨어요?”

“아직...”

“부탁드릴게요.”

소라가 빚 받으러 온 빚쟁이 마냥 당차게 말하고는 자리로 돌아간다.


“소라가 뭘 부탁했는데?”

중만의 질문에 현수가 대답한다.

“비상 연락망하고 명함에 쓸 거라고 뭘 좀 적어 달래요. 그런데, 취미, 18번 곡, 좋아하는 음식도 적어 내야 하나요?”

“그래? 소라씨가 적으라면 적어야지, 안 그러면 소라에게 찍혀서 회사생활 어려워져. 지금도 소라가 전화 안 받아 줬으면 어떻게 될 뻔했어? 안 그래?”

중만의 말에 민수는 긴가민가하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예...”



매뉴얼을 보고 있는 민수, 전화기가 울린다.

민수는 수화기를 집어 들며 기계적으로 되뇌인다.

“예, 정보시스템실 신계약팀 이민수입니다.”

“오, 노숙한데, 이민수씨!”

재희의 전화가 반가운 민수는 주위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낮춘다.

“으응, 재희구나.”

“왜? 불편해?”

민수는 상체를 책상 쪽으로 웅크리며 말한다.

“아니야. 괜찮아.”

“지금 전화받는 것이 눈치 보이나 보네?”

민수는 주위를 힐끔 보며 말한다.

“아니야.”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으응, 다른 사람들 일하는 데 방해될까 봐.”

“우리 민수 직장인이 다 됐네.”

장난치듯 놀리는 재희에게 민수는 낮은 톤으로 단호하게 말한다.

“자유인!”

“하하하, 웃기지 마. 너, 다음 주에 시간 돼?”

“왜?”

“다음 주에 친구들 모이기로 했어.”

“응, 갈게.”

다짜고짜 대답하는 민수. 

민수의 사정을 재희가 눈치챈다.

“그래, 시간과 장소는 나중에 알려줄게, 전화해.”

“응 알았어.”

“아, 참, 어제 저녁 고마웠어. 전화 이만 끊을게.”


민수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민수는 소라가 준 쪽지에 내용을 적으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제 정리하고 가자고.”

일섭이 팀원들에게 말한다.

중만이 뭔가 열심히 적고 있는 민수를 재촉한다.

“뭐 해? 회식하러 가야지.”

민수는 적고 있던 쪽지에 뭔가를 급하게 더 적어 넣으며 말한다.

“예, 준비되었습니다.”


민수는 적은 쪽지를 들고 소라에게 가서 건넨 후 일행을 뒤쫓아 간다.

소라는 쪽지의 내용을 살펴보고는 급히 나서는 민수의 뒷모습을 째려본다.



일행은 식당의 좌식 식탁이 설치된 룸 안에 앉아 있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소주와 몇 가지 안주가 놓여 있다.

일섭이 소주병을 들어 민수 잔을 채워주며 말한다.

“우리 팀에 온 것을 환영해.”

“감사합니다.”

뒤이어 중만의 잔에도 소주를 채워준다. 

“드디어 중만씨 조수가 생겼네?”

중만이 웃으며 민수에게 묻는다.

“민수씨는 주량이 어떻게 돼?”

“잘은 모르겠는데, 소주 한 병 반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제대로 만났네. 중만씨도 술을 좋아하는데.”

일섭은 신규 잔에도 소주를 채워주며 말한다.

“마감하느라 수고했어.”

신규는 일섭이 들고 있던 소주병을 건네받아 일섭의 소주잔을 채우며 말한다. “수고하셨습니다.”

일섭이 잔을 들며 말한다.

“우리 팀이 다시 네 명이 되니 좋네. 자, 건배.”

모두 잔을 들어 '건배'를 외치며 소주를 마신다.


일섭의 잔은 소주가 그대로 남아 있다.

중만이 소주를 들어 민수와 신규의 잔에 소주를 부어준다.

민수는 중만의 소주병을 받아 중만의 술잔에 소주를 채운다.

일섭은 쟁반에 담긴 삼겹살을 집게로 짚어서 불판 위에 올린다.

그것을 본 중만이 삼겹살이 담긴 쟁반을 신규 앞으로 옮기며 말한다. 

“아유, 대리님, 삼겹살은 아랫것들이 굽게 내 벼 두세요.”

“술도 안 먹는데 삼겹살이나 굽지.”


중만이 민수에게 묻는다.

“전산실 일하는 것 보니 어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지.”

일섭이 민수를 이해한다는 듯 말한다.

“대학에서 포트란 수업은 받았어요. 그때 코딩시트로 프로그램을 짜봤어요.”

“그때 우리도 그랬어, 코딩시트에 프로그램을 적어서 펀칭 작업하는 여사원에게 주면 입력 카드를 만들어줘. 그것을 받아 리더기에 넣고 컴퓨터를 돌렸어.”

“TV에서 보면 각자 자기 컴퓨터로 일을 하던데, 여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중만이 웃으며 말한다.

“민수 씨가 TV를 너무 많이 봤구만, 그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야.”

일섭도 민수의 말에 웃으며 말한다.

“신입사원이 단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세월 참 많이 변했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입사원은 단말기 근처에 얼씬도 못 했는데.”

“88올림픽 세대잖아요.”

중만이 말하자 신규도 나선다.

“나도 단말기 만지는데 한 달 넘게 걸렸어요.”

“민수씨는 일일마감작업 체크를 당장 해야 하니까... 그런데 민수 씨 에뮬레이터 접속 ID는 등록해 줬어?”

중만의 물음에 신규가 움찔한다.

“...”

눈치를 챈 일섭이 웃으며 말한다.

“이런 송사리.”


웃으며 이야기하는 가운데 어느덧 네 병의 소주가 모두 비워져 있다.

중만은 일섭을 향해 말한다.

“2차 가시죠?”

“자기들끼리 가, 나는 술도 못하는데.”

신규도 나서며 말한다.

“아이, 대리님, 오늘 신입사원도 왔는데 2차 함께 가셔야죠?”

“하하, 이런 송사리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행은 생맥줏집에서 생맥주를 한 잔씩 앞에 두고 앉아 있다.

중만이 민수에게 묻는다.

“정소라가 써 달라는 것은 적어 줬어?”

“퇴근 직전에 적어서 줬어요.”

“뭔가 신중하게 적던 것 같던데?”

“좋아하는 음식이나, 좋아하는 음악을 적으라는 것이 좀 그랬습니다.”

“뭐가 그런데?”

“소라씨가 나를 군기 잡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

중만의 말에 민수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좋아하는 음식은 닭똥집, 좋아하는 음악은 ‘넌 내게 반했어’, 취미는 술 마시기, 특기는 술 많이 마시기, 뭐 이렇게 적어 줬어요.”


민수의 예상과 달리 팀원들의 반응이 싸늘하다.

중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일섭을 보며 말한다.

“대리님 어쩌죠, 내일부터 우리 팀에 찬 바람이 불 것 같은데요?”

“이런 송사리, 벌써부터 사고를 쳤구만.”

“내일부터 책상은 우리가 닦아야겠네. 커피 동전 바꾸는 것도 우리가 직접 은행에 가야 되고...”

신규도 중만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걱정이네요.” 


민수는 웃는 표정에서 당황하는 표정으로 바뀐다.

중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내일부터 민수씨나 우리 팀이나 애로사항 꽃피게 생겼네.”

“이러면 어떨까요, 소라에게 민수씨는 우리 팀에서 내놓은 자식이라고. 그래야 우리 팀이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되겠네, 민수씨 내일 아침에 출근하면 우리 팀 옆의 회의 탁자에 떨어져 앉아서 일해요.”

그 말을 들은 민수가 어색하게 웃는다.

중만이 맥주잔을 들면서 외친다.

“기왕 일이 이렇게 된 거, 마시고 죽자!!”


모두 잔을 들어 건배하며 술을 마신다.



현관문 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민수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나오며 민수의 술에 취한 모습을 본다.

“다녀왔습니다.”

혀가 꼬부라진 민수, 어머니는 민수를 근심스럽게 바라보며 말한다.

“술이 떡이 됐네, 떡이 됐어. 저러고도 어떻게 집을 찾아왔나?”

민수는 풀린 눈으로 씩 웃으며 말한다.

“들어가서 잘게요.”


방에 들어온 민수는 넥타이의 매듭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늘린다. 그리고는 넥타이를 목에서 빼내 책상 위로 아무렇게나 휙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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