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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Oct 03. 2024

신경전

연재소설 : 러브 코딩 9화 - 신경전

점심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선 민수와 동기들은 자기 팀으로 돌아간다.


“교육 다녀왔습니다.”

민수가 중만에게 인사한다.

“어때? 교육 받을 만했어?”

“오늘은 전산 개요에 대해서 했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 교육을 한답니다.”

“내일부터 바쁘겠구만.”


자리에 앉은 민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주위의 눈치를 살피다가 가방에서 교육 책자를 꺼내 책상에 올려놓는다.



회사의 벽시계가 7시를 넘어선다. 

단말기 테이블 자리에 앉아 있던 중만이 일어선다.

“자, 내일 보자고.”

“안녕히 가십시오.”


민수는 기다렸다는 듯 단말기 자리로 옮겨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다. 

단말기 모니터에 'ABCDEFG ABCDEFG'가 반복적으로 나열된다.

신규는 퇴근하려 나서다가 민수가 치고 있는 모니터 화면을 보고는 웃으며 말한다.

“수고하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민수는 더듬거리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모니터에 'ABCDEFG ABCDEFG'가 반복적으로 나열되며 시간이 흐른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민수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8시. 

민수는 전화 수화기를 들고 전화기의 버튼을 누른다.

“상호냐? 민수다... 오늘 어때?”

수화기를 들고 있는 민수가 대화를 이어간다.

“오케이, 그럼 내가 그리로 갈게... 그래.” 


민수는 단말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선다.



당구장 입구 앞에 카운터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낮은 탁자가 있고 그 탁자 위에 조그마한 TV가 놓여있다.


몸에 달라붙는 붉은색 꽃무늬 셔츠를 입은 상호는 카운터에 앉아서 TV를 무료하게 보고 있다. 

상호의 옆쪽 벽면에 달린 당구 카운트패널이 '삐리릭' 울린다. 3번 당구대의 숫자가 깜빡거린다.

당구 치던 사람이 소리를 지른다.

“아저씨, 여기 점수 났어요.”

상호는 카운터 위에 있는 장부에 시간을 적어 넣는다.


당구장 문이 열리고 민수는 두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민수의 손에 든 것을 보며 반기는 상호.

“그거 뭐냐?”

“치킨 하고 소주.”

“잘됐네. 안 그래도 적적했는데.”

민수는 들고 온 소주와 치킨을 TV가 놓인 낮은 탁자 위에 올리며 말을 이어간다.

“당구장 끝나고 술 먹으러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잖아.”

“그렇지, 너가 내일 아침 일찍 출근도 해야 하니까.”

상호는 민수가 입은 양복을 쳐다본다.

“오, 양복!”

“작업복이야.”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하는 민수.

상호는 자기가 입고 있는 꽃무늬 셔츠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건 내 작업복!”

“배나 좀 집어넣고 쫄쫄이를 입든가 하지, 동네 깍두기도 아니고...”

민수가 무시하듯 말하자 상호는 자신이 입고 있는 쫄쫄이 티셔츠를 슬쩍 보며 말한다.

“아, 씨발, 멋있잖아!”

“그래 멋있다 쳐.”

민수는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듯 무성의하게 말한다.

그것이 더 섭섭한 상호.

“너가 회사 들어가더니 옷 보는 눈이 많이 낮아졌구나.”

그런 상호를 민수가 달래듯이 말한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지금 그런 옷 입어보지 언제 입어보겠어? 멋있어, 멋있어.”

상호는 기분 좋게 웃으며 묻는다.

“회사는 어때?”

“신입이 어디를 가겠어, 코 찔찔 흘리고, 틈만 나면 졸고. 고참들 눈치 보면서 납작 기며 사는 거지.”

“갈구는 놈은 없어?”

민수는 상호의 소주잔을 채워주며 말한다.

“갈구는 여자는 있어.”

“여자? 고참?”

“아니, 나보다 직급은 낮은데, 몇 년 전에 들어온 여사원 있어.”

“그래? 갈구면 인상 한 번 써서 기를 죽여 버려, 잘하잖아?”

“하하, 이쁜 얘한테 어떻게 그러나?”

상호는 민수의 소주잔을 채우다가 멈추며 민수를 쳐다본다.

“이쁘다고? 그럼 확 꼬셔버려.”

“하나도 제대로 못 꼬셔서 빌빌거리는데, 무슨...”

민수는 웃으며 말을 하다가 정색하며 말을 잇는다.

“이거는 여자 얘기만 나오면 눈빛이 확 바뀌어!”

상호는 민수의 소주잔을 마저 채우며 말한다.

“너 대학 다닐 때 그 여자, 아직도 못 꼬셨지?”

능글능글 웃으며 말하는 상호, 민수는 그 말에 빈정이 상한다.

“어여 술이나 쳐드세요.”

그때 당구를 치던 손님이 카운터를 향해 외친다.

“아저씨, 여기 음료수 좀 주세요.”

상호는 술잔을 든 체 민수에게 말한다.

“어이, 신입.”

상호는 민수를 바라보며 음료수를 갖다주라고 턱짓을 한다.

민수는 못 들은 척하며 소주를 마신다.

상호가 그런 민수를 보챈다.

“어이, 신입!”

소주를 마신 민수는 할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투덜댄다.

“너가 무슨 고참이리고...”

“나머지 당구대에도 음료수 다 돌려.”

민수는 능글거리며 웃는 상호를 쳐다보며 한마디 내뱉는다.

“너가 아직 신입한테 안 맞아 봤지?”


민수는 몸을 돌려 냉장고 쪽으로 걸어간다.

상호는 웃으며 들고 있던 소주를 들이켠다.



이른 아침, 텅 빈 사무실.

단말기 앞에 앉아 있는 민수와 책상을 닦고 있는 미라만 있다.

민수는 일일마감 일지를 덮고는 키보드의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탁 탁 탁’

느리지만 일정한 속도로 키보드 치는 소리.

모니터 화면에 알파벳 ‘ABCDEFG ABCDEFG...’가 반복적으로 나열된다.


소라가 단말기 테이블을 닦기 위해 민수가 앉아 있는 자리 옆에 선다.

민수는 소라가 옆에 서있는 것을 모른 척하며 키보드 치는 것에 열중한다.

“저기...”

민수는 소라가 언제 거기에 서있었냐는 듯 소라를 힐끗 올려본다.

“아... 예.”

민수는 의자에 앉은 채 뒤로 물러난다.

냉랭한 표정의 소라는 민수가 사용하고 있는 단말기 테이블을 다 닦은 후 바로 옆자리로 옮겨간다. 

민수는 의자를 다시 앞으로 당겨 앉아 의기양양하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 '탁탁탁탁, 탁탁탁탁...'.


책상을 다 닦은 소라는 자기 팀 단말기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민수 들으라는 듯 힘차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투다다닥, 타다다닥...'.

민수는 소라의 단말기 두드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는 동전통에서 동전을 꺼내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중만이 사무실로 들어와 단말기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현수를 본다.

“일찍 나왔네?”

“안녕하세요?”

키보드를 급히 쳐서 마무리하고 자기 책상 자리로 옮겨 앉는 민수.

중만은 현수가 비워준 의자에 앉으며 묻는다.

“작업은 잘 끝났지?”

“예. 모두 잘 끝났습니다.”


그때 민수의 동기들이 교육받기 위해 민수의 뒤를 지나간다.

민수는 그들을 보고는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교육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

중만은 민수를 쳐다보며 말한다.


민수는 동기들을 뒤따라 사무실을 나선다.



수강생들이 앉아서 기다리는 강의실에 강사가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모두 오셨죠?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합니다. 이 과정이 쉽지는 않기 때문에 중간에 낙오되는 분들도 생길 것입니다. 그러니 긴장해서 수업에 잘 따라와 주세요.” 


강사는 종이상자에서 OHP 필름을 꺼내어 OHP에 올리고 전원을 켠다.

강의실 앞 화이트보드에 ‘데이터 유형’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내용이 펼쳐진다. 

“컴퓨터가 처리하고 저장하는 데이터 타입은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가장 크게는 문자와 숫자로 나뉘죠. 그리고 연산하기 위한 숫자는 정수형과 실수형 등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강사는 OHP가 투사된 화이트보드에 빨강 수성펜으로 써가며 설명한다.

수강생들이 진지하게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과 함께 시간이 흐른다.


“자 10분 휴식 후에 강의를 이어가겠습니다.”

강사가 강의실에서 나가자 수강생들도 하나둘 일어나서 나간다.

“졸리지 않아?”

규섭이 하품하며 묻자 연형이 능청스럽게 말한다.

“우리가 모셔야 할 컴퓨터 말씀을 배우는데 불경스럽게 졸아서 되겠어?”

“컴퓨터 말씀? 웃기시네, 기계와 대화하기 위한 기계어, machine language아니고?”

“뭐 어쨌든 간에, 어이, 교육생들. 담배나 한 대 굽고 오실까?”

어제 늦게까지 술을 마신 민수가 말한다.

“나는 졸려서 눈이나 좀 붙여야겠다.”


연형이 앞장서서 나가자 규섭도 뒤따라 나간다.

민수는 책상에 팔베개하고 엎드린다.


잠시 후 강사와 수강생들이 강의실로 들어온다. 

남준은 엎드려 있는 민수의 어깨를 두드리자 민수는 반쯤 감긴 눈을 하고 몸을 세운다.


강사의 강의하는 모습과 함께 시간이 흐른다.


“오늘 강의 듣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난 다음 실습이 없으면 허전하시겠죠? 실습과제를 내어드리겠습니다.”

강사의 말에 일제히 낮은 목소리로 탄식하는 수강생들.

“에이~”

강사는 들고 온 인쇄물과 코딩 시트를 책상 제일 앞자리 수강생에게 준다. 

수강생들은 인쇄물과 코딩 시트를 뒤로 전달한다.

“이번 과제는 각자의 영문명과 출석번호를 인쇄물에 적힌 포맷에 맞혀서 OUTPUT으로 결과를 나오게 하는 과제입니다. 나누어 준 코딩 시트에 적어서 내일 제출하세요. 질문 있습니까?”

수강생들은 침묵으로 불만을 나타낸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내일 뵙겠습니다.”

강사가 강의실에서 나가자 수강생들이 웅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민수는 과제 안내문을 보며 연필로 코딩 시트에 프로그램 코드를 작성한다. 그리고는 코딩 시트의 한 부분을 지우개로 지우고 연필로 다시 적는다.

중만은 모니터를 보며 일하다가 민수의 책상 위에 놓인 코딩 시트를 힐끗 쳐다본다.

“실습과제?”

“예, 간단한 것입니다.”


중만은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민수는 자기 자리에서 중만의 키보드 치는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본다.

눈은 모니터에 고정한 채 손가락이 키보드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중만의 모습.


민수는 중만처럼 눈을 전방을 주시한 채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흉내를 낸다. 그런 모습으로 전방을 주시하던 민수의 시선이 앞쪽에 앉아 있는 소라의 시선과 부딪힌다. 

민수는 무안한 듯 황급히 눈을 내리깔고는 책상 두드리던 손으로 얼른 코딩 시트를 집어 들고서 보는 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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