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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Oct 17. 2024

도토리 키재기

연재소설 : 러브 코딩 19화 - 도토리 키재기

프로그램 리스트를 보고 있는 민수, 책상 위의 전화가 울리자 수화기를 든다.

“정보시스템실 신계약팀 이민수입니다.”

민수는 수화기 너머 상대방의 말을 들으며 통화를 이어간다.

“예, 신계약 상품별 수입보험료 현황 데이터 리포팅 말이죠.”

숙취가 완전히 가신 듯한 민수는 여유를 부리며 대답한다.

“아, 그거요, 다 끝나가요.”

그러나 상대방의 말을 듣던 민수의 톤이 바뀐다.

“출력 항목을 하나 더 추가하자고요? 아, 되지 않는데….”

상대방이 애절한 부탁을 들은 듯 민수도 몸을 낮춘다.

“아니요, 오히려 저를 좀 봐주세요.”

이제 부탁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사정하는 민수.

“안 되겠는데요, 저가 다른 데이터 리포팅도 밀려 있어서요.”

급기야 신입사원 민수는 이제 상대를 피한다.

“아니요, 안 올라오셔도 되는데….”

민수는 끝말을 흐리며 수화기를 내려놓고서 다시 프로그램 리스트에 집중한다.


잠시 후 현업사원 조영숙이 신계약팀으로 기어코 올라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영숙이 중만에게 인사한다.

“응, 영숙씨 왔어요?”

“예.”

그리고 일섭에게 호들갑스럽게 인사하는 영숙.

“어머, 대리님 안녕하세요?”

프로그램 리스트를 보고 있던 일섭이 영숙의 여우 같은 인사에 반색한다.

“어, 영숙씨, 웬일이야?”

“데이터 리포팅 때문에 왔어요.”

일섭이 데이터 리포팅이라는 말에 일순 무관심한 듯한 태도로 바뀐다.

“어, 그래. 일 잘 봐.”

영숙은 섭섭한 듯 일섭을 바라보다가 드디어 만만해 보이는 신입사원 민수를 향해 포문을 연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영숙 올라온 것이 불편한 민수는 건성으로 인사를 한다. 이어지는 영숙의 호들갑.

“어머, 어디 아프세요? 창백해 보이시네요.”

민수는 영숙의 물음에 우물쭈물한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일하는 중만이 웃으며 말한다.

“우리 민수씨 많이 아파, 술병, 하하하.”

영숙이 중만을 보며 나무라듯이 말한다.

“어머, 그럴 수 있죠.”

중만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다시 호탕하게 웃는다.


만만한 신입사원 현수에게 당당하게 말을 꺼내는 영숙.

“우리 부서에서 부탁한 데이터 리포팅 있잖아요.”

민수는 책상 위의 프로그램 리스트에 눈을 꽂고 무관심한 듯 대답한다.

“거의 다 끝나가고 있어요.”

“아, 그러세요, 그런데 그 데이터 리포팅에 항목 하나만 추가해 주실 수 없어요?”

애원하는 영숙에게 민수는 단호하게 말한다.

“전화로 말했듯이 데이터 구성을 다 끝냈고, 이제 인쇄하는 프로그램 짜고 있어요. 다시 작업할 시간이 없어요.”

“저가 데이터 리포팅 의뢰서 작성할 때 깜빡하고 빼먹었단 말이어요.”

영숙의 말투에 간절함이 묻어있다. 그래도 민수는 버틴다.

“다른 부서 데이터 리포팅 의뢰 건도 많이 밀려 있어서 이 작업을 다시 할 시간이 없어요.”

“이거 중요한 거란 말이어요, 이것 안 들어가면 이번 데이터 리포팅의 의미가 없어서 그래요.”

민수는 영숙의 말에 엮이지 않으려는 듯 리스트에 눈을 꽂은 채 냉정하게 말한다.

“지금 일이 밀려 있어서 그럴 시간이 없어요.”

민수와 말이 통하지 않는 영숙, 일섭을 바라보며 애원하듯 도움을 청한다.

“어머, 대리님, 좀 도와주세요.”

그러나 민수의 입장을 두둔해야 하는 일섭은 못 들은 척 계속 문서만 바라본다.

영숙은 안 되겠는지 다시 민수를 향해 애잔한 눈빛을 하며 말한다.

“그럼, 저가 가지고 온 것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돼요? 정말 간단한 것인데.”

영숙이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 민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곤란한 듯이 말한다.

“그냥 한번 보기만 할게요.”

민수는 할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 탁자로 간다. 조영숙도 민수의 뒤를 따른다.


민수와 영숙이 회의 탁자에 마주 보며 앉는다.

“저번에 자료산출 정말 고마웠어요. 그렇게 단 한 번 만에 깔끔하게 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민수는 영숙의 간교한 말투에 안 넘어가겠다는 듯 냉정하게 말한다.

“하여튼 지금은 안 돼요.”

“저번에 하던 것처럼 하시면, 이번에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요, 좀 도와주세요.”

영숙은 가지고 온 문서를 내민다.

“안 되는데...”

민수는 마지못한 듯 '납입방법'이 추가된 문서를 살펴본다.


문서를 살펴보는 민수의 머릿속에서 영화의 CG 장면처럼 플로차트가 그려지며 변경해야 할 작업의 난이도를 빠르게 체크한다.


네 번째 플로차트, '납입방법‘ 합산 출력 코딩 가능? -> ‘OK!’

세 번째 플로차트, 데이터에 ‘납입방법’ 코드가 추가 가능? -> ‘OK!’

두 번째 플로차트, 데이터를 합치는 것에서 ‘납입방법’ 코드 생성 가능? -> ‘OK!’

여기까지 문제없다고 속으로 판단하는 민수.

첫 번째 소스 데이터를 구성하는 프로그램에서 ‘납입방법’ 추출 가능? -> ‘?’

민수는 소스 데이터에 ‘납입방법’ 항목의 존재 여부가 궁금하다. 그것만 있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되는데….


문서를 보는 일섭과 모니터를 바라보는 중만, 사실 이들은 민수와 영숙의 대화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대화를 엿듣던 중만이 낮은 목소리로 일섭에게 말한다.

“잘하면 민수가 조영숙에게 넘어가겠는데요?”

일섭도 낮은 목소리로 안타깝다는 듯 말한다.

“저 정도면 반은 넘어갔지. 어휴 저 송사리…”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민수에게 끝까지 안 붙여요.”

중만의 말에 일섭도 호응한다.

“저 여우가 앞으로 민수에게 안 꿀리겠다는 거지.”

그 말에 중만이 큭큭거리며 웃는다.


머릿속으로 프로그램 코딩을 가늠하던 민수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잠시만요.” 

민수는 자기 책상으로 간다.


중만이 큭큭거리며 웃다가 자리로 다가오는 민수를 바라보며 능청스럽게 묻는다.

“잘 되고 있어?”

“프로그램 코드를 보고 난 후 말해 주려고요.” 

민수는 책상 위의 프로그램 리스트 뭉치를 들고 원형 탁자로 다시 돌아간다.


민수는 한 뭉치의 프로그램 리스트를 들고 회의 탁자에 돌아와서 그중 한 부를 골라내서 펼친다. 그리고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리스트를 살펴본다.

데이터 소스를 구성하는 첫 번째 프로그램에 ‘납입방법’을 뜻하는 'MOP' 코드가 보인다. 민수는 마음속으로 ‘OK’를 외친다.

‘납입방법’을 추가하여 변경하는데 채 20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 민수는 생각한다.


영숙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민수를 바라보며 묻는다.

“어때요? 해주실 수 있으시죠?”

민수는 곤란한 표정을 과도하게 지으며 말한다.

“글쎄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꼭 좀 부탁드릴게요. 네?”

애원하는 영숙에게 민수가 사무적으로 대답한다.

“어떻게 될 줄 모르니 기대는 하지 마세요.”

둘은 회의 탁자 자리에서 일어서서 신계약팀 자리로 간다.


영숙이 자리에 앉는 민수에게 말한다.

“그럼 꼭 좀 부탁드릴게요.”

“예.”

민수는 무의식적으로 ‘예’라고 대답하고 만다. 그러면서 속으로 ‘아차’ 한다.

영숙은 자기를 도와주지 않았던 일섭을 향해 토라진 듯한 톤으로 말한다.

“대리님, 내려갈게요. 흥.”

“우리 민수씨에게 잘 보여, 앞으로 모든 데이터 리포팅은 민수씨가 하게 될 거니까.”

능글거리는 일섭의 말에 영숙은 불만이 있는 듯 느리고 긴 톤으로 대답한다.

“네예~”

그러고는 음성을 바꾸어 중만에게 깍듯이 인사한다.

“김 선생님, 수고하세요.”

영숙의 인사에 중만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일이 잘되었어?”

“예.”

영숙은 웃으며 당당하게 사무실에서 나간다.

민수가 중만에게 변명하듯 말한다.

“이번 데이터 리포팅에 납입방법 항목을 넣어서 해주기로 했어요.”

“잘했어, 그런데 어제 받았던 처갓집 데이터 리포팅 하는 데는 지장 없겠어?”

중만의 말에 민수가 어색하게 웃는다.



중만은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민수는 마지막 부분인 인쇄 프로그램 코딩 진행 상황을 메모한다.


납입방법별 누적 컬럼 생성 

        ↓

상품별 누적 건수 칼럼 생성 (OK) 

        ↓

설계사 영업연차별 누적 칼럼 생성 

        ↓

지역별 누적 컴럼 생성


이제 나머지 세 부분의 코딩은 첫 번째 부분의 코드를 카피하여 진행하면 쉽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민수. 그때 중만의 목소리가 들린다.

“몸은 좀 어때?”

민수가 생각에서 깨어나며 대답한다.

“이제 정말 살 것 같습니다.”

“말짱해 보이네. 민수씨가 단말기 쓰려면 써.”

중만이 단말기 자리에서 일어난다.

“감사합니다.” 

민수는 단말기 테이블에 앉아서 프로그램 리스트를 보며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다.

모니터 화면 모니터 화면에 프로그램 코딩이 전개된다.


민수가 키보드를 치며 일하는 모습 뒤로 사람들이 퇴근한다.

“민수씨 수고해.”
 중만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양복 상의를 입으며 민수에게 말한다.

“내일 뵙겠습니다.”

중만에게 인사한 민수는 이내 모니터로 눈길을 돌린다.


키보드를 치던 민수는 프로그램 리스트에 적어놓은 메모를 바라본다.

메모에 코딩 진행상태가 표시되어 있다. 세 개의 작업 진행 사항이 ‘OK’로 표시되어 있고 이제 하나만 남아있다.

민수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 화면에 코드가 채워져 간다.


리스트 생성 코딩을 마무리한 민수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최종적으로 프로그램을 점검한다. 그리고 키보드를 '탁' 친다.

프로그램 코드에 따라 컴퓨터는 리스트 구성 작업을 진행된다.


리스트가 구성되는 모습이 민수의 머릿속에서 형상화되어 전개된다.

지역 코드 - 설계사 연차 - 보험코드 - 납입방법 - 보험료 순으로 이루어진 리스트 형상이 빠르게 펼쳐진다.

동일한 납입방법 코드가 흐르다가 납입방법 코드가 바뀌면 그 납입방법에 대한 건수와 보험료 합계액의 칼럼이 생성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보험코드, 설계사 연차, 지역 코드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처리된다.


민수는 모니터를 보면서 리스트 구성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10분은 더 걸릴 것 같다. 사무실의 벽시계가 9시 10분을 가리킨다.

적막함을 느끼는 민수, 전화기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다가 수화기를 들고 전화 버튼을 누른다.

‘뚜 뚜’하면서 전화 신호 가는 소리에 맞추어 민수의 심장이 벌렁거린다.

“여보세요?”

재희의 차분하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가 들리자 순간 민수는 허둥댄다.

“나, 나, 민수야.”

“아직 퇴근하지 않았니?”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저앉히며 말하는 민수.

“프로그램 짜느라 매일 늦어.”

“너가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 이제 정말 프로그래머 같다.”

“아직 어리바리한걸.”

“어쭈, 이제 겸손하기까지? 회사에 다니더니 사람이 달라졌네. 직장인 같아.”

“그렇게 보여?”

민수는 쓸쓸히 웃으며 말한다.

“하기야 너가 지금 제일 바쁠 때 아니니? 신입사원 때가 제일 힘들다고 하잖아.”

“일보다 술이 더 힘든 것 같아. 오늘도 숙취 때문에 죽다가 살았어.”

“그렇지! 회사 일로 기죽을 너가 아니지. 괜히 걱정했네.”

“너가 내 걱정을 다 해주고… 고마워.”

“어머, 애 좀 봐, 내가 무슨 말을 못 해.”

이왕 이렇게 된 거, 민수는 과감하게 재희에게 들이댄다.

“내일 시간 돼?”

“왜?”

“좀 만날까 싶어서.”

“너랑 단둘이서, 하하하,”

재희가 한동안 웃은 후 단호하게 말한다.

“안 돼!”

반항하듯 말하는 민수.

“왜 안 돼?”

“흥! 우리가 무슨 애인 사이도 아니고, 단둘이서 본다는 게 어색하지 않겠니?”

“그런가…? 그럼 양진구하고 같이 볼까?”

“그래? 그렇다면야 뭐….”

“응, 약속 잡아서 연락할게.”

“응, 알았어.”

민수는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결심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양진구 이놈을 잡아서 재희에게 데려가기로….


전화기를 내려놓은 민수는 키보드를 치며 모니터를 바라본다. 작업이 종료되어 있다.

키보드 치는 소리와 함께 데이터 리포팅 작업 결과가 나타난다.

누적을 나타내는 칼럼의 항목 위치가 조금씩 밀려 있다. 레이아웃 조정이 필요하다.

민수는 화면에 나타난 작업 결과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본 후 다시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다.

적막한 사무실 풍경과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시간이 지나고 남준과 연형이 민수에게 다가온다.

“퇴근 안 할래? 너만 남았는데.”

민수는 10시 45분을 가리키는 벽시계를 힐끗 본다.

“벌써 이렇게 됐나? 아, 조금만 더하면 되는데…”

“그럼, 먼저 갈까?”

연형의 말에 민수는 아쉬운 듯 자리에서 일어선다.

“내일 아침에 와서 해야겠다.”

민수는 단말기를 끄고 남준과 함께 사무실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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