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슨 언어로 꿈을 꾸는가?
아프리카 세네갈의 어느 골목, 한 아이가 울면서 “엄마”를 부른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프랑스어다.
아이의 어머니는 월로프어(세네갈, 감비아, 모리타니 일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부족어)로 대답한다.
말은 통하지만, 마음의 언어는 다르다.
식민주의가 남긴 또 다른 상처, 그것은 '말의 상처'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정체성이고, 기억이고, 문화다.
그런데 그 소중한 것을 ‘외부의 힘’에 의해 바꿔야만 했던 대륙이 있다.
바로 아프리카다.
프랑스어를 말하는 말리, 영어를 쓰는 나이지리아
아프리카의 지도를 펼치면, 언어가 국경을 따라 갈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이지리아와 가나는 영어를, 말리와 세네갈은 프랑스어를, 앙골라는 포르투갈어를 쓴다.
그 언어는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공문서에서, 회의장에서, 그리고 꿈에서도 식민 언어가 사용되었다.
“식민지는 끝났지만, 식민 언어는 여전히 살아 있다.”— 어느 세네갈 작가의 말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초등교육부터 대학까지 공식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다.
아이들은 자국의 언어로 글을 배우지 못하고, 식민 언어로 사고해야 한다.
이로 인해 전통언어는 ‘집에서 쓰는 사적인 언어’가 되고, 공식 언어는 ‘성공과 출세의 언어’가 되었다.
또한 언어는 계층을 가르는 도구가 되었다.
식민 언어에 능숙한 사람들은 정치, 경제, 외교 영역에서 기회를 얻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변두리로 밀려난다.
이는 식민주의가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닌, 오늘날 불평등 구조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이라는 것은 사고의 틀을 바꾼다.
영어로 꿈꾸는 아이와 어머니의 말로 꿈꾸는 아이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한 청년은 말했다.
“나는 프랑스어로 논문을 쓰지만, 월로프어로는 사랑을 고백해요.”
언어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감정의 공간이다.
그런데도 많은 아프리카 청년들은 자신이 태어난 땅의 언어보다 ‘식민지 언어’에 더 익숙하다.
이에 더해, 식민 언어는 문화의 지형도까지 바꾸어 놓았다.
TV, 뉴스, 문학, 행정은 식민 언어로 이루어지고, 전통 언어는 점점 사라져 간다.
이로 인해 많은 청년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뿌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혼란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케냐에서는 스와힐리어(동아프리카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현지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르완다는 프랑스어 대신 영어와 르완다어 중심으로 전환했다.
일부 국가는 초등학교에서 모국어 수업을 시작했고, 토착어로 된 뉴스와 문학도 늘고 있다.
언어를 되찾는 일은 곧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언어를 되찾는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되묻는 일이다.”
나이지리아의 어떤 방송국은 매주 전통 언어로만 뉴스를 송출하고,
가나의 학교에서는 토착어 시 낭송 대회가 열린다.
젊은 세대가 SNS를 통해 자국 언어로 랩을 하고, 시를 쓰고, 짧은 드라마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움직임은 언어가 죽지 않았음을, 여전히 살아 있고 다시 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식민주의는 몸에 상처를 냈고, 마음에 상흔을 남겼다.
그중 가장 깊은 것은, 언어의 상처다.
그러나 언어는 다시 자란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잠시 멈춰있을 뿐이다.
오늘날 아프리카는 다시 말하고 있다. 자기 언어로. 자기 목소리로.
우리는 이제 묻는다.
“당신은 무슨 언어로 사랑하고, 고백하고, 꿈을 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