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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가 만든 아프리카의 이미지

by 강행구

아프리카는 언제부터 ‘타자’가 되었는가?”

우리는 아프리카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막, 내전, 기아, 부족, 원조…

이 단어들은 오랜 시간 반복되며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된 아프리카의 이미지이다.

하지만 이 이미지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단지 사실일까, 아니면 누군가 만들어낸 시선일까?


이번 글에서는 아프리카를 정의해 온 서구의 시선과 그 배경,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이어졌는지를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야만’과 ‘문명’의 이분법: 누가 아프리카를 미개하다고 말했는가

유럽이 아프리카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중세 말기부터였다.

이 시기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세계 밖에 있는 모든 대륙과 문화를

'문명화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상 중 하나가 바로 아프리카였다.


19세기 제국주의가 본격화되며 유럽은 아프리카를 ‘문명화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공동체 중심의 의사결정, 전통 종교, 다처제 등 아프리카의 문화와 제도는 ‘이상한 것’,

나아가 ‘야만’으로 낙인찍혔다. 이는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백한 전략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계몽해야 한다.”
이 슬로건은 총칼보다 더 날카로운 무기였다.
아프리카를 ‘가르쳐야 할’ 대상, ‘도와야 할’ 대륙으로 설정한 유럽은

스스로를 ‘문명의 중심’에 있으며, 월등히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지식이 식민지가 되다: 유럽의 학문이 만든 이미지

문제는 이런 이미지가 단지 대중의 상상 속에서만 작동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철학, 지리학, 민족지학, 인류학, 문학 등 유럽의 학문적 영역은 아프리카를

‘진화의 초기 단계에 머문 사회’로 규정하며 왜곡된 정보를 체계화했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아프리카를 “세계사의 외부”라고 표현했다.

그는 아프리카에는 역사도, 발전도, 의미 있는 사건도 없다고 단언했다.

이후 수많은 유럽 학자들이 아프리카를 ‘원시적이고 정체된 사회’로 규정하며,

이 대륙을 문명의 지평선 밖으로 밀어냈다.


유럽인들의 탐험기, 선교 보고서, 교과서, 심지어는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는 늘 낯설고, 위험하며, 후진적인 곳으로 묘사되었다.


이것이 바로 ‘식민 지식(colonial knowledge)’이다.

유럽이 생산한 이 왜곡된 지식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조차 반복적으로 주입되었고,

그들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지워진 문명, 말하지 못한 역사

그러나 과연 아프리카는 문명이 없었을까?

우리는 고대 이집트만 아프리카의 유산이라 여기지만,

실제로 나일강 유역의 여러 문명은 수천 년 전부터 도시와 법, 문자, 교역을 발달시켰다.

사하라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무역망과 말리의 팀북투는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로,

유럽보다 앞선 도서관과 학자 집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의 시선은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 아니, 의도적으로 지웠다.

왜냐하면, 아프리카가 ‘이미 문명화된 곳’이라는 사실은

유럽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명분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근과 전쟁의 대륙’이라는 이미지의 연속

식민주의가 끝난 후에도, 서구 미디어는 아프리카를

‘기근’, ‘내전’, ‘쿠데타’의 대륙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물론 이런 문제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원인에는 식민시대의 경계 획정, 강제적 지배 방식,

외부 개입이 크게 작용했다는 사실은 좀처럼 조명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아프리카를 ‘도와줘야 할’ 대륙으로 바라본다.

ODA(공적개발원조)나 원조를 통해 접근하며, 그들의 주체성과 역사, 다양성은 쉽게 간과되었다.




아프리카는 이제 말할 권리가 있다

다행히 이제는 이러한 서구 중심주의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아프리카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구가 아프리카를 타자화하는 방식의 논리를 비판했고, 아프리카의 지식인들은 자신의 언어, 문화, 역사에 기반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예를 들어, 카메룬 출신의 철학자 아킬레 음벰베(Achille Mbembe),

나이지리아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Wole Soyinka),

케냐의 작가 응구기와 티옹오(Ngũgĩ wa Thiong’o) 이들 모두는

아프리카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스스로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이제 더 이상 외부에서 바라보는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말하고 설명하며,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가 되고 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아프리카는 왜 가난한가?”가 아니라,
“우리는 왜 아프리카를 그렇게 보게 되었는가?”라고 말이다.


서구가 만든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지만,

그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진짜 아프리카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적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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