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군사 쿠데타는 뉴스가 아니다.
놀랍지도 않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아프리카 정치를 상징하는 단어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
그들이 총칼을 들고 권력을 빼앗는 진짜 이유를.
말리, 부르키나파소, 기니, 니제르. 최근 몇 년 사이, 이들 국가에서 군사 쿠데타가 연이어 발생했다.
겉으로는 안보 불안과 테러 위협, 부정부패에 대한 반발이라는 명분이 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쿠데타는 단지 군대의 반란이 아니라, 체제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시민들에게 민주주의는 약속은 했지만 지키지 못한 제도였다.
투표는 있었지만, 선택지는 없었고, 당선자는 있었지만, 책임은 없었다.
식민지 시절, 아프리카에 주둔한 군대는 외적을 막는 방패가 아니었다.
그들은 국민을 지키기보다 국민을 감시했고, 보호보다 억압이 임무였다.
식민 종주국인 서구열강을 위해 세금을 징수하고, 강제노동을 시키고, 반란을 진압했다.
그렇게 군은 시민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지배를 위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이 군대가 독립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왜 군이 정치에 개입하려 하는지에 대한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답이다.
1960년대, 아프리카는 독립을 맞이했고, 헌법과 선거, 의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행정 경험은 부족했고, 국민 정체성은 분열되어 있었다.
부정부패, 권력 독점, 경제 실패가 이어지자 사람들은 실망했고,
그 틈을 타 군은 스스로를 ‘구원자’로 내세우며 권력을 차지했다.
특히 독립전쟁을 주도했던 군대는 자신들의 투쟁 경험을 정당화하며 정권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결정적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군사 정권을 지원했고,
아프리카의 정치적 자율성은 후퇴했다.
우간다의 '이디 아민'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수많은 인권 탄압을 자행했다.
반면 가나의 제리 롤링스는 처음에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지만,
나중에는 헌법을 복원하고 선거를 통해 민간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두 인물은 쿠데타라는 같은 출발선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이것은 아프리카의 군사 정권이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냉전이 끝나고, 국제사회는 아프리카에 민주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원조의 조건으로 정치 개혁과 인권 보장을 요구했고,
이에 일부 국가는 다당제를 도입하고 언론의 자유를 허용했다.
동시에 아프리카 내부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아프리카연합(AU), ECOWAS(서부아프리카경제공동체) 등 지역 기구들은
쿠데타에 명확히 반대했고, 비헌정적 정권에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군복 입은 대통령들을 보고 있다.
왜일까?
민주주의는 법이 아니라 삶이다
아프리카의 쿠데타는 단지 군부의 야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뿌리는 식민 지배의 유산, 열약한 제도, 불신에 찬 시민사회,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제도에 대한 반복된 실망이 얽혀 있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조합, 학생운동, 인권단체 등 시민사회의 저항은 멈추지 않았다.
언제나 민주주의의 불씨는 남아 있었고, 변화는 그 불씨에서 시작되었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헌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감시하고, 질문하고, 참여하는 ‘살아 있는 과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