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라는 단어 앞에는 유독 수식어가 많다.
빈곤의 대륙, 분쟁의 땅, 개발도상국의 집합소.
그러나 내가 그곳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아프리카는 그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물론, 분쟁은 있었다.
그러나 분쟁만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을 반쯤 말하는 것과 같다.
르완다, 1994년. 단 100일 만에 100만 명 이상이 학살되었다.
이 끔찍한 내전은 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고, 르완다는 ‘학살의 나라’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 르완다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치유와 재건을 이룬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마을에 살며, 함께 농사를 짓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들은 용서했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서구가 해결하지 못한 ‘화해의 모델’을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냈다.
이 변화의 핵심은 ‘가차차(Gacaca)’였다. 공동체 전통에 뿌리를 둔 이 재판 제도는,
가해자에게는 참회의 기회를, 피해자에게는 진실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처벌이 아닌 진심 어린 사과, 형벌이 아닌 공동체 복귀.
이러한 방식은 서구식 사법 정의가 간과한 공동체 치유의 본질을 되살렸다.
서아프리카 가나 북부의 한 마을.
여기서는 마을에 갈등이 생기면 경찰을 부르지 않는다.
대신 장로들이 모인다. '장로 회의'는 이 지역 공동체에서 가장 오래된 갈등 조정 방식이다.
장로들은 먼저 묻지 않고, 먼저 말하지 않는다.
대신 갈등 당사자들이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경청한다.
울분과 억울함, 분노가 다 흘러나올 때까지 듣는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이제, 네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닌, 우리가 해야 할 말을 하겠다."
그들은 누구의 잘잘못을 가르는 대신, 관계를 회복하는 데 집중한다.
다툼은 멈추게 하고, 공동체는 다시 어깨를 맞댄다.
이것이 바로, 법보다 지혜가 먼저인 아프리카의 방식이다.
우간다 북부. 이곳의 일부 부족 사회에서는 범죄가 발생했을 때 형벌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마토 오푼(Mato Oput)’이라는 전통적 화해 의식이다.
살인 같은 중죄도 이 의식을 통해 해결된다.
가해자 가족과 피해자 가족이 마주 앉는다.
오랫동안 말없이 마주 앉아 있다가, 상징적인 전통 술을 함께 마신다.
그 술은 쓴맛이 강하다. 과거의 상처처럼.
그러나 함께 마심으로써, ‘이 고통을 함께 기억하고 함께 짊어지자’는 암묵적 약속이 생긴다.
이후 가해자는 사죄하고, 피해자는 용서한다.
더 이상 감옥은 필요 없다.
공동체가 받아들이면, 죄는 더 이상 개인의 짐이 아니라 모두가 나누는 기억이 된다.
남아프리카 줄루족 마을에서는 가족 간의 갈등조차 음악으로 풀어낸다.
분노가 폭력으로 번지기 전에, 그들은 원형으로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고백이고 고통이고, 화해다.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노래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고요히 받아들인다.
노래는 마치 물처럼 마음속 분노를 흘려보내고,
감정은 음표 사이에 천천히 녹아들며 갈등은 조금씩 사라진다.
싸우기 전에 노래하고, 화를 내기 전에 침묵을 공유하는 문화.
그것이 이들의 방식이다.
코트디부아르 북부의 작은 마을.
한때 반군과 정부군이 대치하며 불안의 상징이었던 이 지역은,
지금은 마을 주민 스스로가 질서를 세우고 분쟁을 예방하는 공동체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매주 열리는 마을 회의에서는 족장, 여성 대표, 청년 대표가 함께 모여
토지 분쟁, 가족 문제, 청소년 문제 등을 논의한다.
이 회의의 결정은 법적 효력을 갖지 않지만,
공동체 모두가 이를 존중하며 갈등을 피하고 평화를 유지한다.
분쟁의 중심이었던 마을에서 오히려 평화가 꽃피고 있다는 사실은
‘서구식 국가’가 아닌 ‘아프리카식 공동체 질서’의 저력을 보여준다.
“내가 있기 위해선 우리가 있어야 한다.” 우분투(Ubuntu)라는 아프리카 철학은
인간관계의 본질을 꿰뚫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가 끝난 뒤,
진실화해위원회가 열린 배경에도 이 철학이 깔려 있었다.
용서는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었다. 처벌보다 더 힘든 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길을 선택했다. 공동체를 다시 세우기 위해.
이 정신은 지금도 아프리카 전역에서 살아 있다.
학교 교육, 청년 프로그램, 지역 프로젝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분투는 실천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분쟁의 대륙’이 아닌 ‘평화의 지혜를 간직한 대륙’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이유다.
아프리카는 그 안에서 늘 평화를 지켜온 고유의 방식을 갖고 있었다.
분노를 풀어내는 방식, 관계를 회복하는 방식, 공동체를 지속시켜 온 오랜 지혜.
아프리카는 무력한 대륙이 아니다.
스스로를 치유할 줄 아는 대륙이며,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공존의 방식’을 간직한 곳이다.
우리는 지금, 아프리카를 다시 배워야 한다.
분쟁의 대륙이 아닌, 평화의 지혜를 품은 대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