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이미 미래를 코딩하고 있다
“질문 있으신 분 계신가요?”
제가 아프리카 관련 강연을 마치자, 한 청중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아프리카에서 디지털 혁신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아직 전기나 인터넷도 부족하다고 들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갖는 의문이죠.
하지만 그 질문 속에는 우리가 아프리카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숨어 있습니다.
2025년 현재 아프리카 인구의 60% 이상이 25세 이하입니다.
UN은 2100년까지 아프리카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그만큼 아프리카 청년은 단순한 '미래 세대'가 아니라 현재의 주체이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동력입니다.
"한창 도약할 준비가 된 대륙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아프리카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바로 청년들이 있습니다."
이 질문은 가장 흔하게 접하는 오해 중 하나입니다.
"기술을 도입하려면 인프라부터 깔아야 하지 않나요?"라는 의문 말이죠.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오히려 기존의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 기회가 되곤 합니다.
왜냐하면 낡은 구조를 걷어내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바로 적용해버릴 수 있는, 말 그대로 '직진할 수 있는' 환경인 셈이죠.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흔히 ‘리프 프로깅(Leapfrogging)’, 즉 ‘도약’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디지털 도약’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케냐, 르완다, 그리고 나이지리아를 들 수 있습니다.
먼저 케냐의 엠페사(M-Pesa)는 이제 전 세계가 주목하는 모바일 송금 시스템입니다.
은행 계좌가 없어도 휴대전화만 있으면 누구나 돈을 송금하고, 물건을 사고, 공과금을 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농촌 지역에서도 거의 모든 가정이 이 시스템을 사용할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케냐는 ‘은행 없는 금융 혁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르완다의 사례도 인상적입니다.
산악 지형이 많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의료 물자를 제때 공급하기 어려운 이 나라에서는,
미국 스타트업인 Zipline과 손을 잡고 세계 최초의 드론 기반 의약품 물류망을 구축했습니다.
지금은 응급 상황 시 드론이 혈액을 싣고 날아가 병원에 떨어뜨려 주는 모습이
르완다의 일상 풍경이 되었습니다.
혈액 폐기율도 크게 줄었고, 생명을 살리는 시간도 단축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이지리아의 플러터웨이브(Flutterwave)는 ‘메이드 인 아프리카’라는 꼬리표를 달고도
세계적인 핀테크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대표 사례입니다.
이 플랫폼은 수많은 중소상공인들이 디지털 결제 시스템에 접근하도록 도왔고,
국경을 넘어 다양한 통화와 결제를 연결하는 기술로 아프리카 내 상거래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프리카에서는 낙후된 인프라가 오히려 기술 혁신의 발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존 시스템이 없기에, 새로운 시스템으로 한 번에 도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도약의 중심에는 ‘청년’과 ‘디지털’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인프라가 없었기에, 우리는 바로 모바일로 뛰어올랐습니다.” – 르완다 청년 창업자의 말
우리는 종종 아프리카 청년들을 ‘도움이 필요한 수혜자’로만 봅니다.
하지만 실제 그들은 디지털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세네갈 청년 디자이너는 인스타그램 하나로 독립 브랜드를 창업하고,
에티오피아의 대학생이 만든 모바일 앱은 지역 병원의 진료 예약 시스템으로 채택되고,
가나의 청년 농부들은 드론을 활용한 스마트 농업으로 수출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역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고, 해결을 디지털로 시도하고 있으며,
그리고 글로벌 시장까지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여기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ICT 기술과 디지털 교육 인프라,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 경험,
K-콘텐츠와 문화적 유대
이러한 자산을 바탕으로 우리는 아프리카 청년들과 수직적 지원이 아닌 수평적 파트너십을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한국 정부와 민간에서 추진 중인
디지털 ODA, 청년 교류, 창업 인큐베이팅 사업은
이러한 연결을 실현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청중의 마지막 질문이 인상 깊었습니다.
“결국 한국과 아프리카가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요?”
제 답은 단순했습니다.
“청년과 디지털, 이 두 키워드로 연결된 파트너십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게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오늘도 나이지리아의 한 청년이 노트북 앞에서 앱을 만들고,
르완다의 한 여성이 드론으로 의약품을 배송하며,
세네갈의 청년이 한국어를 배우며 K-콘텐츠를 활용한 창업을 준비합니다.
아프리카는 기다리는 대륙이 아닙니다.
이미 움직이고 있고,
디지털로 말하고 있는 대륙입니다.
이제, 우리가 함께 대화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