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사람들, 그리고 남은 과제
협상의 끝, 그러나 시작된 긴장
베냉 연안 피랍 사건은 두 달 가까이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해적들은 몸값을 높이려 시간을 끌었고, 선박회사는 인내심을 시험받으며 협상가의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작은 변화에도 모두가 긴장했고, 매일이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소식이 전해졌다.
몸값 협상이 최종 타결되었다는 보고였다. 순간, 긴장이 조금 풀리며 가슴 깊숙이 안도감이 번졌다.
하지만 진짜 고비는 지금부터였다.
몸값 전달과 인질 인수 과정이 남아 있었고, 그 길은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니제르 삼각주로 향한 신병 인수팀
나는 경찰 영사에게 단호히 지시했다.
“즉시 니제르 삼각주로 출발하세요. 석방될 우리 국민들이 안전하게 머무를 숙소를 확보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이동 경로와 경호도 철저히 준비하세요.”
그는 메모를 하며 침착하게 답했다.
“그 지역은 특히 위험합니다. 반군 세력과 무장단체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차량 경로를 면밀히 점검하고, 우회로도 반드시 확보하겠습니다.”
밤이 되자 신병 인수팀은 해적들이 지정한 장소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1차 접선에서 나타난 현지 안내인의 지시에 따라 작은 선착장으로 옮겨갔고,
다시 보트를 타고 복잡한 수로를 오랫동안 달렸다. 니제르 삼각주는 끝없는 미로 같았다.
해적들은 언제나 은신처로 가는 길을 마치 자기 집 안방처럼 꿰뚫고 있었다.
포타코트에서 대기 중이던 출장팀은 무사 귀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마침내 전화벨이 울렸다.
“우리 국민들이 무사히 인계되었습니다. 건강은 조금 지쳐 보이지만 큰 이상은 없습니다!”
순간, 오랫동안 억눌렸던 긴장이 눈 녹듯 사라졌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라고스에서의 재회
다음 날 이른 아침, 경찰 영사는 우리 국민과 함께 라고스로 향했다.
나는 공항에서 직접 그들을 맞이했다. 오랜 억류 생활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분명히 자유를 향해 있었다.
일부는 피부 질환과 영양 부족을 호소했으나,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조촐한 환영 만찬을 준비했다.
삼겹살과 김치, 된장찌개까지 정성스레 마련된 한식이 식탁 위에 올랐다.
오랜만에 고향의 음식을 맛본 선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이렇게 다시 삼겹살을 먹을 수 있다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들의 미소 속에서 억류 생활의 고통이 잠시나마 희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합동 조사와 ‘딥블루 프로젝트’
귀환 절차를 서두르기 위해서는 나이지리아 정부의 합동 조사를 거쳐야 했다.
선원들은 피랍 순간, 은신처 환경, 해적들의 말투와 행동까지 상세히 진술했다.
이들의 증언은 해적 조직의 구조와 지역사회와의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합동조사팀장은 진지하게 말했다.
“해적 문제는 우리 정부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입니다.
‘딥블루 프로젝트’를 통해 해적 퇴치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약 2억 달러를 투자했고, 최근에는 C4I 종합상황실을 설치해 더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는 덧붙였다.
“해적 조직은 단순히 나이지리아인만 있는 게 아닙니다.
가나, 카메룬, 심지어 백인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직 무장단체 출신, 실직 어부, 전직 선원들이 모여
거대한 신디케이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해적 문제가 단순한 범죄가 아닌
복잡한 사회·경제적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절감했다.
빈곤, 청년 실업, 부정부패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한, 해적의 근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귀환, 그리고 남겨진 과제
며칠 뒤, 나이지리아 연방정부로부터 출국 승인이 떨어졌다.
나는 공항에서 다시 한번 선원들과 작별을 나눴다. 그들의 얼굴에는 안도와 피로,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기대가 교차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를 때, 나는 긴 숨을 내쉬었다.
“끝났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 사건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기니만 해적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우리의 국민과 선박은 앞으로도 이 바다를 항해해야 한다.
외교와 협력, 그리고 국제사회의 지속적 관심 없이는 또 다른 피랍 사건이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은 내게 세 가지 교훈을 남겼다.
첫째, 해적은 더 이상 단순한 범죄 집단이 아니라 조직화된 ‘비즈니스 세력’이라는 점.
둘째, 인질 협상은 치열한 심리전이자, 작은 실수 하나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고도의 외교 행위라는 점.
셋째, 결국 근본 문제는 바다 위가 아닌 육지의 빈곤과 부패에서 비롯된다는 점이었다.
우리 선원들이 무사히 귀환하는 모습을 보며 지난 수개월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남은 무거운 질문이 있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