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기니만, 새로운 해적의 심장부
소말리아 해역이 한때 해적의 대명사였다면, 지금의 해적 지형은 기니만이 주도하고 있다.
국제 연합 해군의 순찰 강화로 아덴만과 소말리아 인근의 위협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그만큼 위험의 중심이 서아프리카로 기울었다.
우리 정부가 청해부대를 보내 소말리아 해적을 억제했던 경험은 있었지만, 기니만의 해적은 성격이 달랐다. 더 조직적이고, 더 치밀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보트는 더 빨랐다.
니제르 삼각주. 지도 위로만 보면 울창한 맹그로브와 수로가 이어진 평범한 델타이지만, 해적들에게는 ‘은신과 기습’에 최적화된 미로다.
이들은 고속 보트에 중화기를 실어 연안을 벗어나 원양으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혔다.
세계 곳곳의 선원 납치 사건 배후에 나이지리아를 거점으로 한 해적 조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운업계의 항로 지도에는 보이지 않는 붉은 금이 그어졌다.
우리 국민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위험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중국 어선에서 선장으로 일하던 우리 국민이 기니만 해역에서 피랍되어 중국 측의 주도로 협상이 한 창 진행되고 있던 어느 날 새벽, 공관의 전화가 울렸다. 짧고 명확한 보고였다.
“기니만 해역, 우리 국적 어선 피랍 발생.” 또 피랍이라니.
하지만 빠르게 머릿속이 즉시 실무 목록으로 전환됐다.
연락망, 동선, 협력기관… 하나씩 꺼내 검토하면서 곧바로 나이지리아 해군과 접촉했다.
다행히 평소 유대가 견고했다.
새벽에도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우리는 같은 그림을 빠르게 공유할 수 있었다.
“해군 준장과 연락이 됐나요? 신속히 상황을 공유하고 지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경찰 영사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미 연락했고, 해군도 현재 상황을 파악 중이며 지원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해군만으로는 부족했다. 고속 보트의 기동성은 군의 감시망을 가볍게 가르고, 도주 국면에서 인질의 안전은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기니만 해역의 해양 안전을 총괄하는 해양행정안전청장을 직접 찾아갔다.
우리가 아직 움직일 수 있을 때, 서로의 시계를 맞춰야 했다.
“청장님, 현재 상황이 매우 급박합니다. 나이지리아 당국의 수색 범위를 넓히고 가능한 모든 자원을 투입해 해적들의 움직임을 빠르게 파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구조 작전이 시작되면 우리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주십시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지만 무게 있는 답을 건넸다.
“알겠습니다. 수색 범위를 즉시 확대하고, 작전 개시 전 공관에 사전 통보를 드리겠습니다. 신중하게 진행하겠습니다.”
사건의 성격은 명확했다.
이번 베냉 연안 피랍은 우리 국적 선박이었기에 선박회사가 몸값 협상을 주도해야 했다.
공관은 협상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전면 지원에 나섰고, 협상 종료 즉시 니제르 삼각주로 이동해 인수·호송을 준비했다.
그 사이 물밑에서는 숫자와 심리의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정보기관과 나이지리아 해군은 두 사건 모두 니제르 삼각주를 근거지로 한 해적들의 소행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들의 방식은 단순했다. 최초엔 수백만 달러를 요구하고, 협상 과정에서 수십만 달러, 때로는 수만 달러로 낮춰간다. 몸값은 하나의 ‘가격’이고, 인질 협상은 그 ‘시장’의 언어로 작동했다.
유엔 보고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기니만 선원 납치로 지불된 몸값은 약 400만 달러에 달했고, 해적 활동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1억 9천만 달러 규모였다. 범죄가 아니라 ‘비즈니스’라는 그들의 자기 인식은, 이 냉랭한 숫자에서 증명되었다.
중국 선박회사는 신속한 귀환과 조업 재개를 위해 높은 금액을 기꺼이 감수하려 했다.
반면 우리 선박회사는 협상 전문가의 조언 아래 ‘안전 최우선과 과도한 시그널 회피’라는 원칙을 세웠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너무 높은 몸값은 우리 선원들이 다음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정선을 좇되, 장기화가 선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무리한 요구에는 단호히 선을 그었고, 필요할 때는 의도적으로 연락을 끊어 긴장감을 조성했다.
해적들은 조급해졌다. 해적 행위에도 인건비, 연료비, 그리고 고속정이나 총기류 등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비용이 늘어날수록 손익분기점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의 목표는 최단 시간 내 현금화였다.
니제르 델타의 해적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 하나는 연안형이다. 어선·소형 선박을 빠르게 노리고 사라진다.
다른 하나는 원양형이다. 상선, 어선, 원유 운반선 같은 대형 선박을 정조준한다.
원양형은 공격팀–감시팀–협상팀이 역할별로 분업화된 작은 회사처럼 움직였다.
리더는 첩보원처럼 정보를 긁어모아 목표를 고르고, 공격팀은 이중 사다리와 고속 보트로 갑판을 점령한다. 감시팀은 인질을 본거지에서 관리하고, 협상팀은 가격을 올릴 수 있는 모든 심리전을 동원한다.
몸값 지급 후 분배 방식은 더 노골적이었다. 리더가 가장 큰 몫을 챙기고, 역할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이전 사건에서 피랍되어 억류되어 있는 동안 한 선장이 감시팀의 젊은 청년으로부터 들었다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몸값이 지급되면, 저는 약 50달러를 받습니다.” 거대한 범죄의 톱니바퀴 속 개별 인력의 ‘단가’가 그들의 운영 철학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2편 – 〈해적들의 은신처에서〉, 그들의 치밀한 은신처와 생존의 기록은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