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울타리 너머의 공포와 아이의 첫 생일
드디어 관저에 도착했다.
하지만 불길한 기운이 몰려왔다. 늘 두 명이 함께 지키던 경비석에는 한 명뿐이었다.
“왜 혼자 있습니까? 다른 경비원은 어디 갔죠?”
“가족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며 집으로 갔습니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 속에 두려움이 묻어났다. 나는 즉시 상황을 직감했다.
폭동 소식에 겁을 먹고 도망친 것이 분명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리를 비워선 안 됩니다.” 나는 단호히 못을 박았다.
현금을 그의 손에 쥐여주며, 끝까지 남아 달라 부탁했다.
‘지금 이 순간, 돈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다.’ 이미 무너진 경계선 하나를 메우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관저 안은 썰렁했다. 주방 직원과 청소부들은 모두 달아나고, 출장 중인 대사 대신 부인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불안에 떨며 내게 물었다.
“부영사님, 군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던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쿠데타로 번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집 대신 관저로 왔습니다.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함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눈빛에 스치는 안도의 기색.
그러나 그마저도 곧 ‘어린 예지의 첫돌이 다가오는데…’라는 말로 이어지며 다시 흔들렸다.
나는 집 안을 샅샅이 점검했다. 낮고 단순한 울타리, 외부 시선이 훤히 드러나는 창문…
그 모든 것이 취약했다. 커튼을 겹겹이 치고, 현관문·뒷문·응접실 유리문까지 모조리 잠갔다.
하지만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총성은 모든 대비책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멀리서 들리는 총성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꺼내진 듯 철렁 내려앉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불안은 증폭됐다.
나는 홀로 1층 거실에 앉아, 만약의 사태를 머릿속에 수십 번 그려봤다.
강도들이 들이닥치면 싸울 것인가, 아니면 현금을 건네고 시간을 벌 것인가.
답은 없었다. 단지 하나, ‘가족과 대사 부인의 안전만은 반드시 지킨다.’
아침이 되어 경비실로 가니, 경비원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가 밤새 자리를 지켜준 덕분에 우리가 무사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나 곧 더 절박한 문제가 터졌다. 딸아이의 분유와 기저귀가 모두 바닥난 것이다.
그 순간 떠오른 이름—프랑수아. 평소 너무나 성실했던 가사도우미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여러 번 전화벨이 울리고, 수화기를 막 내려놓으려는 순간,
프랑수아가 전화를 받았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프랑수아, 집에 있었구나?”
“네, 어제 퇴근을 못 했습니다.”
그제야 내가 퇴근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홀로 집에 남아 있었던 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급박했던 어제의 상황을 설명하며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사정을 들은 그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지금 당장 가지고 가겠습니다.”
나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안전이 걱정돼, ‘위험하면 오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몇 시간 뒤, 배낭을 멘 프랑수아의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내게 비치는 그의 걸음은 마치 위험을 뚫고 돌아온 용사처럼 당당하고 결연해 보였다.
마침내 그가 관저에 도착하자, 나는 그를 반갑게 포옹했다.
“정말 고마워, 프랑수아. 네가 우리를 살렸어.”
그는 담담히 대답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다음 날에는 주방 보조원 마마두가 석호(바다와 이어진 큰 호수)를 건너 도착했다.
나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마마두, 어떻게 출근했어?”
그는 대중교통이 끊겨 배를 타고 석호를 건넌 뒤 다시 걸어서 왔다고 했다.
마마두는 출근길에 시내 쪽에서 총소리를 들었다며 불안해했다.
나는 현재 경비원이 한 명밖에 없다는 상황을 설명하고, 오늘 밤 관저에 함께 머물자고 제안했다.
마마두는 잠시 망설이더니, “오늘 밤은 제가 남아서 함께 하겠습니다”
그의 결단에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듯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총성에 귀 기울이며, 번갈아가며 창밖을 지켜봤다.
어제와 달리, 옆에 든든한 동료가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한결 덜했다.
마마두는 가족 이야기부터 고향의 풍경, 그리고 이곳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까지 들려주었다.
간단한 한국말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나누는 작은 농담과 웃음은 그 자체로 방패였다.
사흘째 되는 날, 아이의 첫돌.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 아내는 미역국을 끓여 조촐한 생일상을 차렸다.
대사 부인은 예지를 보며 속삭였다.
“힘든 시기에 태어나 더 특별한 아이가 될 거예요.”
그 순간, 나는 폭동의 그림자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음을 느꼈다.
젊은 군인들이 일으킨 무장 폭동은 대통령의 무관심 속에 더 큰 불길로 번졌고, 결국 쿠데타로 이어졌다.
마침내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인 구에이 장군이 TV에 등장해 쿠데타 성공을 선언했다.
군인들에게 병영 복귀를 명령하면서, 거리의 총성은 잦아들었다.
길거리에 다시 사람들이 나오고, 경찰도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본 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 정문을 여는 순간,
지난 1년간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 집’의 포근함과 안락함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2박 3일, 죽음의 공포 속에서 보낸 시간.
낮은 울타리, 울부짖는 총성, 불안한 눈빛 속에서 우리는 ‘평범한 일상’의 가치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삶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고 감내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