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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의 밤, 그리고 기적의 첫돌(상)

첫돌을 앞둔 날, 아비장의 총성과 슈퍼마켓

by 강행구

1999년 12월 22일, 아비장은 평소처럼 뜨거운 태양 아래 분주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고,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과일을 실은 리어카가 길가를 천천히 굴러가고, 아이들은 맨발로 뛰놀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하루, 그러나 내겐 남달랐다. 며칠 뒤면 딸아이의 첫돌이었다.

“오늘은 케이크도 보고, 선물도 골라야겠지?”
아내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응, 그리고 잔치 때 쓸 음식도 조금 준비해 두자고.

우리 첫 아이의 첫 생일이니만큼 작아도 정성껏 하고 싶어.”

작은 계획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잊지 못할 의미 있는 날을 위한 준비였다.


갑작스런 총성과 쿠데타의 서막

집을 나와 큰 도로에 접어드는 순간, 군복을 입고 무장한 사람들이 탄 차량이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질주하며 하늘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혹시 무장 강도를 추격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별일 아닐 거라고 여기며 우리가 자주 가는 슈퍼마켓으로 계속 차를 몰았다.


군인들의 눈빛

슈퍼마켓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군인들이 총구를 들이밀고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방아쇠가 당겨질 듯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외교관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한국 외교관입니다. 곧 아이의 생일이라… 잠시 장만 보고 나오겠습니다. 금방 끝낼 겁니다.”

순간, 짧지만 무겁게 가라앉은 정적. 나와 아내의 호흡마저 멎은 듯했다.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는 신호가 떨어졌다. 간신히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폭풍 전야의 마트

마트 안의 풍경은 일상이 아니었다.

몇몇의 사람들만이 진열대 앞에서 말없이 물건을 쓸어 담고 있었으며,

계산대 줄에는 숨죽인 긴장만이 감돌았다.
조그마한 소리 하나에도 모두가 움찔했다.

그때, 대사관 현지 직원 피에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군인 일부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대통령궁과 방송국 근처에서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피에르의 목소리는 떨렸고, 내 등골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대통령궁과 방송국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면,

이는 단순한 폭동이 아닌 쿠데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코트디부아르처럼 한 번도 쿠데타가 일어난 적이 없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평화롭고 번영한 나라에서 쿠데타라니. 도저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슈퍼마켓에서 마주친 무장 군인들이 쿠데타 세력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관저로 향하다

내 옆에는 아내와 이제 막 한 살이 된 아이가 있었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하는 생각이 스치며,

불과 일년 년 전 병원에서 무장 강도들과 마주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내의 두려움 가득한 눈빛이 내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저 멀리서 총성과 폭발음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이 상황을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이 순간에, 나는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기 위해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가까운 대사 관저로 몸을 피할 것인지 고민했다.

나는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차를 집 대신 관저로 돌렸다.

관저는 슈퍼마켓에서 차로 5분 거리였지만, 중간에 위험한 방송국을 지나야 했다.

도로에는 어느새 차량 통행이 거의 끊기고, 적막만이 감돌았다.

방송국 근처로 다가갈수록 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된 모습이 보였다.

날카로운 눈빛과 굳은 표정으로 우리를 주시하는 것 같았다.

불과 5분도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집을 나설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아내와 아이의 안전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나는 가속 페달을 본능적으로 더 깊이 밟았다.

두려움과 긴장감이 밀려들었고, 떨리는 손으로 핸들을 꽉 잡은 채 오직 앞만 바라보며 달렸다.

관저로 향하는 길이 마치 생사의 경계를 넘는 듯했다.

총성이 뒤엉킨 아비장의 밤은 마치 낯선 영화 세트장 같았다.

그러나 이건 영화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생명이 달린 현실이었다.


� 이어지는 하편에서: “관저에서의 2박 3일, 그리고 첫돌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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