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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헬 지역, 왜 테러의
온상이 되었는가

by 강행구

끝없는 사막, 그리고 분노의 불씨


아프리카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띠, 바로 사헬(Sahel)이다.

북쪽으로는 사하라 사막, 남쪽으로는 사바나가 맞닿는 이 공간은,

눈부시게 넓은 하늘과 끝없는 모래 언덕이 펼쳐져 있지만, 동시에 피와 눈물의 역사가 얽힌 땅이다.

오늘날 사헬은 전 세계 언론에서 ‘테러의 온상’이라 불리지만, 단순히 무장단체의 폭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식민지 시절부터 누적된 역사적 상처, 기후 변화로 인한 생존 위기,

그리고 국제사회의 무관심이 겹겹이 쌓여 있다.


역사적 뿌리: 분할과 경계의 저주


사헬을 오늘날 불안정의 늪으로 빠뜨린 근본 원인은 식민지 시대의 인위적 국경이다.

프랑스와 영국은 사헬을 분할하면서, 유목민 부족과 농경민 부족,

서로 다른 종교·언어 공동체를 억지로 하나의 국가 안에 묶었다.

말리·니제르·부르키나파소·차드… 국경선은 자로 그은 듯 곧지만, 사람들의 삶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랜 전통의 교역로와 유목 경로는 단절되었고, 식민지 행정은 일부 부족만을 특혜로 대우하며

다른 공동체를 소외시켰다.

이 불균형은 독립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소외된 집단의 분노는 곧 무장 투쟁의 불씨로 변했다.


사헬지역.jpg


기후 위기: 사막이 밀려온다


사헬의 또 다른 비극은 기후 변화다.

평균 기온은 지구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상승했고, 사하라는 해마다 남쪽으로 조금씩 내려오고 있다.

목축민들에게는 방목지가 사라지고, 농경민들에게는 수확이 줄어든다.

우물을 차지하기 위해, 가축을 위한 초지를 놓고 부족 간 충돌이 잦아졌다.

굶주림은 절망을 낳고, 절망은 무장단체의 가장 쉬운 먹잇감이 된다.

어린이와 청년들이 생존을 위해 총을 잡는 이유가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이 비극은 더 가슴 아프다.


종교와 이념: 외부 세력의 침투


사헬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연결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알카에다, IS 등 극단주의 세력은 사헬의 절망 위에 ‘성전(지하드)’이라는 이름을 씌웠다.

이들은 마을 단위의 불만을 이용해 지역 주민을 끌어들이고,

납치·약탈로 무기를 확보하며 세력을 확장해 왔다.

국제사회의 테러와의 전쟁은 이들을 뿌리 뽑지 못했고, 오히려 군사 개입은 현지 주민의 불신만 키웠다.

“외세가 우리의 땅을 지배하려 한다”는 프레임은 극단주의 세력에게 최고의 선전 도구가 되었다.


국제사회의 무력감과 실패


프랑스는 2013년 ‘세르발 작전’을 시작으로 대규모 군사 개입을 감행했지만, 사헬은 결코 안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프랑스군 주둔에 대한 반발과 반서방 정서가 확산되면서,

말리·부르키나파소·니제르 등에서는 잇따라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청년들은 “민주주의가 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냉소를 입에 올린다.

최근에는 러시아까지 사헬지역에 개입하며, 사헬은 신(新) 냉전의 전장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의 이야기: 눈빛 속의 공포


내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어느 사헬 출신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하루 종일 배가 고프면, 누가 빵을 주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알라의 이름을 외치든, 총을 들게 하든, 그것보다 먼저 빵이 필요합니다.”
그의 눈빛 속에는 이념이나 정치가 아니라, 생존의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이 말은 내가 외교관으로 일하며 수많은 보고서와 분석을 읽은 것보다 더 깊게 마음을 울렸다.

사헬의 문제는 단순한 테러가 아니라, 굶주림과 절망이라는 인간의 문제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사헬은 여전히 거울이다


사헬의 위기는 더 이상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 위기, 불평등, 청년 실업, 외부 세력의 개입…

이 모든 것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재현되고 있다.

사헬은 ‘테러의 온상’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한 세계의 그늘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손을 내밀 것인가. 그것이 사헬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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