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키라의 여행
짧은 기간 동안
몇 번의 심장 멈춤과 움직임을 경험했는지,
유키코의 얼굴은 더 이상
어떤 것에도 동요되지 않을 것 같았다.
시간과 날짜의 흐름을
기억할 겨를이 없다.
아키라는 직사각형 모양의
하얀 이불 위에서 점점 더
몸이 작아지고 있었다.
부풀었던 배는 납작한 모양으로
침대에 눌어붙었다.
발가락,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코하네의 벌건 눈동자는
그곳에 고정되어 있다.
아키라는 가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마치 그가 갈 곳의 누군가를
마주한 것처럼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코하네는 허공을 맴돌고 있는
눈동자를 떠나지 못하도록
꼭, 잡고만 싶었다.
“할아버지, 아키라. 아키라 할아버지.”
코하네의 목소리는 다급했고 떨렸다.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키라는 눈을 감아 버렸다.
초조한 마음을 잡고
다시 그가 눈을 뜨기만 바랐다.
코하네는 숨소리에 날아갈까,
천천히 입을 벌리고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고 뱉는다.
눈을 마주하길
애타게 기다려 보지만
아침의 밝음은 밤의 어둠을
이기지 못하고 빠르게 스며든다.
유키코는 마치 세상을 돌아다니며
순례한 사람처럼
얼굴에 평화가 깃들어 있다.
그녀는 아키라가
극도로 불안한 상태가 왔을 때도
코하네를 부르지 않았다.
내심 아키라가
완전히 눈을 감고 나면 그때,
코하네를 부를 생각이었다.
앞서 보낸 죽음이
너무 많은 그녀였기 때문이다.
코하네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유키코의 배려를 알고 있었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들은 죽음이란 단어를
준비하고 또 준비했을 것이다.
유키코는 작별 인사를
준비하라는 의사 말에
병원과 집, 이라는 두 장소를 놓고
고민해야 할 때, 혼자 결정하지 않았다.
늘 코하네의 말에 경청했고
서로 의견을 물어가며 선택했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은
하루에 몇 번씩 있는 일이었지만
기절을 반복한 아키라를
두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오랜 집에서의 요양 끝에
어쩔 수 없이 그는 다시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사는 몇 번의 진찰도 하지 않고
결정을 내릴 것 같은 표정으로 대했다.
그 모습만 보아도 안타깝다는
의사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유키코는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어쩌면 수화기 속 유키코가
코하네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기 전부터 그녀 또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키라는 츠키노에게 가려는 것이다.
아키라의 얼굴은 볼수록
점점 더 평안이 가득한
표정으로 변하고 있었다.
코하네는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을 느꼈다.
죽음을 몰랐던 그때의
시절과는 다른 고통이었다.
미련한 욕심을 부려서라도
고향으로 모시고 싶었다.
걱정을 억누르며 의사에게 말해 보지만
어차피 가망 없는 사람 취급을 하며
배려하는 척 위선을 떨었다.
환자를 포기한 의사들이
쓰는 단어는 늘 한결같다.
“환자에게 무리가 가지만 원하신다면.”
애매모호한 말로
늘 결정은 보호자에게 미루며
피해 보지 않으려는 대사만 골라서 말했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보다,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사람의
겁대가리는 모든 것에 있어서
용감해지기 마련이다.
결국 거리가 먼 그곳까지는
갈 수 없었지만,
담배 냄새가 찌들어 있는
낡은 구둣방으로는 돌아올 수 있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가
코하네를 알아봐 주길,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아키라의 호흡은 아주 느리고
또 느리게만 흘러갔다.
평소 말수가 적었던 아키라처럼,
그의 죽음도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느린 호흡은 멈춤을 시도하며
산 자에게서 그를 갈라놓으려 애를 썼다.
한 번의 억, 소리도 내지 않고
눈도 뜨지 않은 채,
아키라는 그대로 츠키노에게 가 버렸다.
코하네는 아주 좁은 돌덩어리를
밟고 서 있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발을 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코하네는 발을 헛디뎠으면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억지로 눈물을 씹어 삼켰다.
무언가 계속 중얼거렸지만,
그 누구도 마호도,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코하네는 아키라의 죽음을
인정하려 하지만 목소리 한 번 내주지 않고
가버린 할아버지를 인정할 수가 없다.
“코하네, 널 절대 혼자 두지 않을 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야.”
아키라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의 손은 아직 따뜻하다.
코하네는 아키라의 손을
놓을 수가 없다.
다시 코하네의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았다.
평안한 얼굴을 한 유키코가
코하네의 어깨를 잡았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호는 눈을 감은 아키라가 아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지옥에 떨어져 있는 눈을 한
코하네만을 응시할 뿐이다.
하즈키 또한 조용히 티 나지 않게
뒤로 물러서서 코하네를 지켜보았다.
타다요시의 죽음이 얼마나 성급했고
성인이 되고 처음 겪는 죽음 앞에서
하즈키는 얼마나 겁쟁이였는지 알 수 있었다.
타다요시에 대한 죽음 보다 더
혼자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걱정하느라
아버지를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키라의 손이 식어갈 때까지,
죽음이 완전히 그를 떠날 때까지
그의 손을 잡은 코하네가
이 순간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참 용감하고 따뜻해 보였다.
하즈키는 죽음에 선 코하네를 보고
다시 한번 그녀에 대한 절실함을 확인했다.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던 코하네가
고개를 들어 보일 때까지
유키코는 기다렸다.
코하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키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유키코는 말하지 않았지만,
코하네에게 이제 됐다, 고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단호한 유키코의 표정에도
절망이 가득 쌓여 있었다.
코하네는 유키코의 절망을 눈치챈 순간
누군가 섬세하게 심장을
도려내고 있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너무 아파 표정 없던 코하네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으억, 하는 소리가 나온다.
마호가 재빨리 다가왔다.
“코하네?”
코하네는 오히려 마호의 손을
토닥거리며 안심시킨다.
먼발치에서 하즈키는 고개를 젓더니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코하네는 절망 속에서
안간힘을 쓰는 유키코를 보곤
세게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코하네는 그제야 따뜻한
아키라의 손을 천천히 놓아주었다.
코하네는 마지막까지 표현하지 못한
아키라의 정신은 선명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키라의 이름이 새겨진 손수건을
꼭 쥐고 있었던 건 그의 의지였을 것이다.
코하네는 손수건을
아키라의 거뭇하고 쭈글 한 팔목에
돌돌 감아 매듭을 지었다.
아직도 맥박이 툭, 툭 뛰며
숨을 쉬고 있다고 말할 것만 같았다.
아키라의 손등에
얼굴을 갖다 대며 다시 중얼거렸다.
코하네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단호하게 아키라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터벅터벅 걸었다.
코하네가 일어서자마자
낯선 사람들은 흰 장갑을 낀 채
유키코와 아키라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아키라의 방문을 굳게 닫았다.
그 후, 코하네는 아주 오랜 시간을
2층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또한 그 누구도 코하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말을 건네지도 못했다.
마호도 하즈키도 물론 나오코까지.
해가 또 저물었고
구둣방 문에는 슬픈 글자가 새겨진
등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키라는 꼭 생전에
츠키노 가족들만 알고 살았던 사람 같다.
구둣방을 들른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이 전부였고,
그들마저 잘 알지 못했거나
그저 예의를 갖추러 오는 사람들이거나
그들은 아키라를 알지만
아키라는 그들을 모를 사람들이 뻔했다.
간혹 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새어 나오는 말들은
듣기 거북할 정도의 소문을 소곤거렸다.
사람들과 왕래를 잘하지 않거나
말을 잘하지 않는 사람은
꼭, 그들 사이에서 또렷하게
티 나게 마련이다. 그
들의 소문 중, 악 소리도 나지 않을 만큼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있었다.
아키라는 코하네를 어디선가 데려왔고,
사회에서 허락하지 않은 짓을 그가 했다,
는 이야기는 많은 세월이 흘러서도
코하네의 귓가에 맴돌았던 이야기다.
워낙 코하네는 남들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망정이다.
오히려 마호가 화를 내거나
그녀 몰래 그들에게
주먹을 보이면서 협박하거나,
분노를 홀로 삼키곤 했다.
그들은 조문을 온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이야기들을 소곤거렸다.
마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들른 사람처럼 말이다.
유키코는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곳에서 소곤거리는
사람 소리가 들리니
그게 나쁜 말이라 해도 좋다며,
아키라가 외롭지 않을 거라며
스스로 달래고 있었다.
이때다, 싶었던 쇼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꺄르륵거리며 좁은 공간에서
뛰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호는 쇼에게 부추기기라도 하는 듯,
웃음을 보이며 엄지손가락까지 척, 하고
올리는 모습이다.
그들의 소곤거림은
쇼의 웃음소리로 덮어
이젠 티도 나지 않는다.
쇼는 반복적으로 한 방향만을
고수하고 뛰어갔다, 뛰어온다.
관 속의 아키라는 꼭,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 고 말할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는 점점
엄숙하게 바뀌어 갔고 밤새는 동안에
치장한 아키라의 얼굴은 아주 평온해 보였다.
코하네는 물 한 잔 먹지 않은 모습으로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내려왔다.
나오코가 쇼를 안아 올리며
밖으로 데려가며 코하네를 돌아보았다.
깊은 밤이 될수록
새하얀 코하네의 얼굴도
이젠 검게 보이는 것 같다.
발소리도 나지 않는 순간에
사람들은 코하네를 보자
다시 소곤거리고 싶은 모양새다.
입으로는 위로하며 눈짓으로는
의심하려 기웃거렸다.
밖으로 나온 나오코는
쇼의 두 어깨를 잡으며 강하게 말했다.
“쇼, 엄마가 뭐라고 했지?
오늘을 코하네가 슬픔에 빠진 날이라고 했지?”
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뛰어다녀도 되는 걸까?”
나오코는 아주 합리적으로 흥분하지 않은 채
쇼를 설득하고 있다, 고 생각하며
내심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맞게 답이라도 하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뛰지 않을게.”
너무 쉽게 수긍하는 쇼가
조금 의심스럽지만,
지금이야말로 완벽한 시간이다.
나오코는 어색하게 쇼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아들.”
갑자기 쇼가 목소리를 높이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엇, 저기 봐.”
거인처럼 쭉 뻗은 다리와 목, 팔은 꼭,
아스팔트 바닥에 닿을 듯, 말듯 한 길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쇼가 나오코를 뿌리치고
거인에게 달려가 바닥에 주저앉아
그를 올려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쇼는 참,
겁이 없는 아이다.
하늘에 닿아 있는
노란 머리칼이 고개를 숙이며
쇼에게 인사한다.
“안녕?”
쇼는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나오코는 낯선 이방인을 보고
놀랐는지 쇼를 다시 안아 올렸다.
노아는 나오코에게 가볍게 눈인사하며
아키라의 구둣방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 잠시 서서 잊을 뻔한
문의 길이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숙이며 들어간다.
바닥에 놓인 소금 더미를 보니
유키코의 슬픔이
가슴에 닿는 기분이었다.
아키라의 구둣방에 들어서자마자
뿌연 연기와 향내가 가득하다.
익숙한 듯, 고개를 숙이며
빠르게 유키코를 찾았다.
유키코는 그를 보자마자 참았던 감정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오려 했다.
“아, 노아.”
유키코의 코끝은 붉어지고
목울대는 소리 없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으억거렸다.
노아는 먼저 부서진 향을
한 줌 쥐어 아키라에게 예의를 표했다.
코하네가 유키코의 손을 잡았다.
유키코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코하네 또한 참았던 감정에
코끝이 붉어졌다.
노아는 몇 년 전 보았던 그 모습처럼
손끝을 이마와 가슴과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어깨로 움직이며
두 손을 모으며 기도했다.
아주 오랫동안
눈을 감고 서 있는 모습이다.
노아의 노랗고 갈색빛이 섞인
수염이 흰색과 함께 어우러져
더욱 경이롭게 보였다.
마침내 노아는 차분하게
유키코 앞에 다가갔다.
유키코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오른쪽 다리가 저절로 접히더니
주저앉지 않으려 코하네의 손을
지지하며 힘을 주었다.
노아는 유키코를 한껏 끌어안았다.
노아는 아주 조용히 끊임없이
한 단어만 중얼거렸다.
내내 강한 모습을 보인 유키코는
흩날리는 벚꽃처럼 무너져 내렸다.
“I’m sorry, I’m so sorry… sorry.”
몇 없는 사람들은 다시
조용히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코하네의 사람들도
눈이 동그래지며 소곤거렸다.
코하네는 슬픔이 아닌 기쁨에
눈물을 마구마구 쏟아내고 싶었다.
마치 아키라가 보낸 선물이
도착한 것 같이 기뻤다.
유키코와 노아는 주로
편지로 소식을 전했고 일주일 전 그날
노아에게 전화했다고 한다.
물론 갑작스러운 전화에
노아는 무슨 일이 있냐는 둥,
꼬치꼬치 물었지만,
유키코는 목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유키코는 막상 노아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비타민 캡슐을 통째로 삼킨 것처럼
힘이 솟았다고 했다.
굳이 아키라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에 대해
우울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모든 게 해결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짧은 대화로 전화를 끊었고,
다시 노아의 목소리를 지금
이곳에서 듣게 된 것이다.
유키코는 노아가 어떻게 지금
구둣방에 있는 건지,
자기의 손을 꼭 잡은 사람이
노아가 맞는지, 도통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작은 장례식이 끝난 후, 노아가 말했다.
설명하는 내내 노아의 눈은
천사처럼 반짝거린다.
미국으로 전화가 걸려 온 지 사흘 후,
낮잠을 잘 청하지 않는 노아는 깜박,
잠이 들었다고 한다.
눈을 뜨고 일어났을 땐
아주 오랫동안 잠을 자고
일어난 줄 알았지만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 순간 노아의 꿈속에서
아키라가 자신을 깨우더니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노아를 채근하는 것처럼 말했다고 한다.
노아는 잠에서 깬 순간,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고
본능적으로 비행기를 타야 한다, 는 생각뿐,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며
그 말만 계속 되풀이했다.
코하네는 노아의 말을 곱씹었다.
노아의 말을 비추어 볼 때,
아키라는 병원에서부터 호흡기에 의지했고
어쩌면 그때도 멀리
떠났던 순간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하네는 노아가 깊게 믿고 의지하는
그 신이라는 존재에 호기심이
가기 시작했다.
기도한다며 손을 이상한 모양으로
가리키는 행동도, 아멘, 이라고
말하는 단어를 들을 때에도 몰랐던
신앙이라는 것이 가슴속에서
퍼져 나오는 것과
노아가 기도 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또한 노아가 아키라는
천국에 갔을 거라며
코하네의 어깨를 두드려줄 땐,
어떤 의심도 없이
아키라는 천국에 있다고 생각했다.
노아가 구둣방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아키라의 장례식은
어둡지 않았고 오로지 빛만 가득했다.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건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다.
눈치 없는 사람들은
잔치 상이라도 되는 듯,
음식을 빠르게 해치웠다.
잘 알지 못했던
이웃에 불과한 사람들은
아키라의 이름을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며
인연을 애써 칭하곤 한다.
그들은 새벽을 맞이하며
하나둘,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틀 사이 코하네는
시간이 선물한 망각에 대해
놀라워하는 중이었다.
자신 또한 아직 따뜻했던
아키라의 손을 잡고 있을 때의
격한 감정이
누그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눈을 감고 쉬려는 찰나,
코하네는 잠이 들어 버렸다.
노아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조용히 나풀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잠이 들었던 게 분명하다.
늦은 걸음을 한 겐토는
미안함을 행동으로 표현하며
쇼를 맡은 나오코 대신
허드렛일을 도왔다.
유키코는 코하네에게 그들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놀라워하며 내내 감사해했다.
수북이 쌓인 재떨이를 잡은
겐토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유키코가 말했다.
“겐토 씨, 이리 줘요, 내가 할게요.”
겐토는 조용히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요.”
유키코는 애써 미안함을 표현하며
재떨이를 잡았다.
“좀 쉬어요.”
겐토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하며 미소 지었다.
2층에서 코하네가
수척한 얼굴을 하고 내려왔다.
그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을 번쩍거리며
뜨고 있던 마호가
담배를 질겅거리며 코하네를 보았다.
마호는 한 번도 숨을 쉬지 않았던
사람처럼 파도 같이
큰 숨을 들이마시고 뱉는다.
코하네는 재단으로 걸음을 옮기며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서 있는 중이다.
코하네의 시야에 들어오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유키코가 남은 음식을 담아
아무 말 없이 코하네에게 내밀었다.
유키코의 눈빛은 말하지 않아도
먹지 않으면 혼낼 줄 알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코하네가 짧게 한숨을 쉰다.
“흠, 네 먹어요 먹을게요”
거리를 두고 코하네를
바라보고 있던 하즈키는
그녀의 숨소리에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즈키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세포들이 반응하며
조금씩 자극을 주고 있는 느낌에
죄책감이 들었다.
오므린 코하네의 입술은
하즈키의 시선을 피하게 만든다.
하즈키가 작게 중얼거린다.
“하… 젠장.”
작은 크기에 주먹밥은
코하네의 입속에 들어가기가
버거운 모양이다.
한입 베어 물고 오랫동안
씹기 시작했다.
인기척도 없이 마호가
따뜻한 차를 가져와
그녀의 옆을 차지했다.
입안에 오랫동안 머물던
쌀 알갱이가 마호가 가져온
차 한 모금에 사르르
녹아들며 넘어갔다.
코하네는 남은 주먹밥을
입안에 넣으며 마호를 보며 미소 지었다.
유키코도 마호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친절한 마호.”
마호가 내내 질겅거리던
담배가 귀에 꽂혀 있었다.
그때 문틈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와
집 안에 냉기가 머무른다.
그들 모두 동시에
바람이 들어온 쪽을 바라보았다.
코하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유키코에게 말했다.
“날씨가 안 좋아지면…”
유키코가 고개를 저었다.
“으응, 걱정 마.”
노아는 걱정하는 그녀들을 보며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코하네는 열심히 기도하는
노아를 보니 다시 마음이 놓였다.
유키코가 하얀 천으로
막아 놓은 재단을
꼼꼼히 보고 다시 또 확인했다.
아키라는 생전에 남들 다하는
유언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났다.
아키라는 정신이 바른걸음을
걸었을 때부터
고향을 두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내가 죽으면 이곳에 있을 게야.”
유키코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서운할 법도 했지만,
농담인 듯 진담처럼
대답하곤 했다.
“그럼 나도 없는데, 어디로 가시겠어요?”
그때만 해도 아키라는 건강했고,
유키코는 하루라도 빨리
노아와 함께 할 생각이었으니
가능했던 말일 것이다.
마호가 가져온 차는
식지도 않고 끝 모금까지 따뜻하다.
코하네가 속삭이듯 말했다.
“유키코, 첫 차로 다녀올게요.”
“으응?”
유키코의 표정은 그렇게 빨리?
라고 말하고 있었다.
“마호도 함께 가는 거지?”
있는지 없는지 알지도 못할 정도로
조용하던 하즈키가
불쑥 튀어나와 그들을 바라보았다.
코하네는 잊고 있었던
얼굴을 확인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네, 그렇겠죠.”
입안에 모아 둔 말을
뱉으려던 찰나, 마호가
코하네가 보지 않게 하즈키에게
멈추라며 손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마호의 행동 또한 코하네처럼 단호했다.
다시 서늘한 바람이 타고 들어온다.
바닥에 얼음을 깔아 놓은 것처럼
냉기가 머물렀다.
집을 뒤로하고 늘 그곳을
제 집인 양, 머물렀던 아키라.
코하네는 차마 유키코에게
그곳에 함께 가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미안해요 유키.”
“또야? 오 제발 코하네…”
노아가 수없이 많은
작은 구슬들과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얕게 나오는 아멘,
이란 소리에 자꾸
귀 기울이는 코하네다.
유키코가 애원하듯 말했다.
“미안할 사람은 아키라지,
아마 저 속에서 얼른 데려가지 못하겠느냐,
라고 호통을 치고 계실 거야.”
아키라 특유의 억양을
유키코는 흉내를 잘도 낸다.
낭떠러지를 두고 뒤꿈치를 치켜세우고
있는 듯한 코하네는 키득거렸다.
다시 또 아멘, 이라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이 상황에서 키득거리는
소리를 내고 웃는 코하네가
마호는 불안할 정도로 걱정이 된다.
유키코가 노아에게
귓속말을 하자 그는
유키코의 손을 꼭 잡았다.
유키코가 말했다.
“다들 눈 좀 붙여요, 영 불편하겠지만.”
노아의 한 손은 유키코에게
한 손은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를
꼭 쥐고 있었다.
그들은 까만 어둠 속으로
문을 열고 나섰다.
어둠도 그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늘 위 별들이
더욱 가까이 더욱 밝은 빛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창으로 보이는 노아의 십자가가
빛에 반사되어 코하네의
눈에 꽂혔다.
코하네는 노아를 따라 해 본다.
“아… 멘.”
코하네는 조용히
아키라 의자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았다.
마호도 따라 의자에 앉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눈을 감을 생각이다.
코하네의 호흡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또 하나의 움직임,
하즈키가 코하네에게 다가간다.
애써 모른 척해야 할 때이다.
마호는 조금 더 고개를
코하네의 반대 방향으로 돌려 버렸다.
마치 올빼미가 된 것처럼 최대한.
코하네는 눈을 뜨지 않았다.
하즈키가 손잡이에 걸쳐 앉아
코하네의 얼굴을 천천히 감싸
자기의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코하네는 눈을 뜨지 않고도
하즈키인 것을 알았을까.
차가운 얼음 위에
몇 시간을 앉아 있었던 것처럼
코하네는 차디차다.
하즈키의 온기로
그녀를 더욱 끌어안았다.
하즈키는 다시 자신을 조여 오는
세포들이 원망스러웠다.
코하네가 중얼거린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