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

1. 엉겅퀴(アザミ嬢の ララバイ)

by 금봉



파랗고 높은 하늘을 보니

본격적인 여름을 달릴

자세가 되어있는 모양이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숨을 들이마시기 수월하지만,

뜨거움을 싣고 오는 바람이

사라지고 난 후엔

끈적하게 녹은 설탕이

머물고 간 것처럼 찝찝한 기분이다.


구둣방 앞 그늘에 의자를 갖다 놓은

유키코의 세심함이 돋보였다.

집 안에 머물지 않는

아키라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병을 감내하는 동안

꽤 답답할 거란 생각에

늘 마음이 편치 않았던 참이다.


구둣방 앞 의자는

아키라가 머무는 시간이

가장 긴 곳이 되었다.

까맣게 그을린 아키라의 얼굴이

건강한 척,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척은

그래도 꽤 보기 좋았다.


더위에 취약한 아키라는

늘 구슬 같은 땀이 범벅이 되어

눈과 입속, 콧속으로

그것들이 판을 펼쳐 놓아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어느새 홀쭉하게 변한

그의 몸은 땀, 한 방울 흘리기도

버거워 보였다.


출처, 조금씩 천천히 안녕



의자에 기대어 있는 그는

눈을 감고 지팡이를 온 힘을 다해

힘껏 꽉 쥐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잔뜩 들어간 아귀힘은

자신이 잃고, 또는 잊고 있는 것들을

애써 잡으려는 것 같아

코끝이 찡, 하고 시려온다.


나무를 통째로 깎아 놓은 것 같은

상자 모양의 의자는

어린아이의 엉덩이 크기로도

모자랄 것처럼 보인다.

코하네는 오른쪽 엉덩이를 들었다,

왼쪽 엉덩이를 들었다,

여유를 부리며 잘도 앉는다.


아키라가 놀라지 않게

발을 질질 끄는 소리를 내며

무릎을 쭈그린 채 다가가

까맣게 그을린 그의 손을 잡았다.

아키라는 눈동자를 살짝,

더 보여줄 뿐 놀라지 않는다.

코하네의 마음이 나타난 상상일 수 있지만

분명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아키라의 뿌연 눈동자는

꼭 눈물이 맺힌 것처럼 아련하다.


“할아버지.”


아키라는 고개도 한번

숙이지 않고 미동도 없다.


“할아버지?

음 할아버지는 아키라,

나는 코하네.”


코하네는 고개를 위로 쭉 빼더니

그의 얼굴을 더욱 가까이 올려 본다.


“아키라, 코하네, 나고야.”


흙길 위에 까마귀가

빠르게 앉다 날아간다.


“앗, 저건 까마귀

까악 까악, 까마귀.”


아키라는 코하네와 눈을 맞추고

웃으며 말했다.


“귀찮게 좀 하지 말 거라.”


오랜만에 듣는 건강했던

아키라의 곧은 목소리다.


“귀찮아요? 큿, 들어갈까요?”


지팡이를 잡은 그의 손을

다시 꼭 잡았다.

코하네는 일으켜 보려 하지만

아키라는 완강하게 힘을 주고 있었다.


“들어가요, 할아버지.”


코하네는 아키라의 곧은 목소리에

욕심을 내며 그를 더욱

귀찮게 하며 욕심을 부렸다.

그가 고집을 부리자

코하네는 이내 포기하고

다시 나무 의자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키라는 손을 풀며

다시 지팡이를 세게 쥐었다.


“할아버지,”


그녀는 끊임없이

아키라의 곁에서 종알거리는 참새가 된다.

바람이 새로 돋아난 새싹을 스치니

바르르 반짝거린다.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요.”


아키라가 고개를 움찔거렸다.


“할아버지도 좋아하실 거예요.”


아키라가 코하네가 앉아 있는

곳을 향해 눈을 내렸지만,

그녀는 알아채지 못한다.


“대체 뭐가 그리 좋으냐,

라고 물으실 거죠?
음, 국수를 정말 맛있게 먹어요

후루룩,
면을 한가득 입으로 가져가 놓곤,
화난 것처럼 입을 앙다물고

우적우적 씹어 먹거든요 힛.”


여전히 아키라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반짝이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마네키 네코처럼 길게 웃는다.




공원의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

여전히 여름 햇살과 잘 어울렸다.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고도

그들의 휴식처가 된다.

누가 봐도 마나츠는

결혼식을 앞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다.

느티나무처럼 늘

하즈키의 휴식처가 되어 준

하즈키에 대한 마나츠의 사랑과

고마움에 짧은 탄식이 나왔다.


“아…”


마나츠는 하즈키의 목소리,

얼굴, 손짓, 눈짓, 발소리만 들어도

어떤 도움 없이도

그를 잘 읽어 내려가곤 했다.

그게 정말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땐

이미 그들은 어긋났고

되돌릴 수도 없는

하나의 옛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느티나무 밑, 마주 보고 있는 의자, 와 그들,

해가 쨍쨍 비추는 또 하나의 의자.


지금도 마나츠는 양산을 쓴 채

하즈키를 배려하려

해를 받아들이며 앉아 있다.

예전과 다르게

그녀의 옆자리를 선택하지 않을

그를 위한 배려일 것이다.


‘아름다운 마나츠,

당신의 모습을 이토록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하즈키는 가슴속에

커다란 돌덩이가 일렁이는 것처럼, 아팠다.

그리고 그녀의 옆자리가

자신이 아니라서 더욱 기뻤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아주 오랫동안 닳아 없어질 정도로

마나츠를 바라보았다.

레이스로 된 살이 훤히 보이는 장갑,

목까지 올라오는 레이스 블라우스,

그녀의 복숭아 향기가

바람을 타고 곁에 머무르는 것 같다.


그는 어서 바람에 날아가,

내게 머물지 말라며 재촉했다.


오랜 시간을 지체할수록

욕심이 생겨난다.

다시 한번 속물 같은 자신을

다그치며 원망했다.

마나츠가 양산을 들어 올리며 빠끔,

욕심이 밴 하즈키의 얼굴을 발견한다.

마주친 눈을 피할 길 없이

하즈키가 다가왔다.


“마나츠.”


“언제 아는 척, 할 셈이었어?”


하즈키가 고개를 숙이며 눈을 떨구었다.

마나츠는 양산을 떨어뜨리며

벌떡 일어나 오랫동안 그를 끌어안았다.

늘 허리를 감싸던 그의 손은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

펼쳐진 채 떨어진 양산이 멋쩍다.


“그늘에 앉자.”


그 답지 않은 선택에

마나츠의 마음이 들떴다.


“응.”


그들은 의자의 가장자리

두 곳을 차지했다.


“축하해, 마나츠.”


마나츠가 하즈키의

머리칼을 흐트러 놓는다.


“어색하긴.”


“그랬나?”


그녀가 방그레 웃었다.


“하즈키, 당신 얼굴 굉장히 밝아,

아주 좋은데?”


“그래?”


“얼마 만에 보는 환한 얼굴이야?”


“당신을 봤으니까.”


그녀가 눈을 흘긴다.


“쳇.”


“이츠키와 만났어.”


“응, 알고 있어.”


“날 보자마자 마나츠는

행복한 여자가 될 거라고,

으름장을 놓더라.”


마나츠의 얼굴이

새 신부임을 티 내며 발개졌다.


“표현이 좀, 서툰 사람이야.”


하즈키가 이슬이 맺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녹차를 내밀었다.


“앗, 이거 마셔.”


“괜찮아, 당신 마셔.”


출처,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하즈키는 정말

복숭아 씨를 삼킨 것처럼

목울대가 유난히 튀어나온 모습이다.

마나츠는 그 모습조차도

몹쓸 연민의 감정이 흔들거렸다.


“자신 있지?”


마나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즈키는 자꾸 수다쟁이가 된다.


“그나저나 요리는 골치 좀 썩겠는데?

이츠키 요리가 워낙 대단해야지.”


“내 음식에 불평을 쏟아 낸다면

다신 음식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
그 말에 평생 내가 해주는

음식만 먹겠데.”


말하는 내내

그녀의 입가는 미소 짓고 있었다.


“하하, 당신답군”


레이스로 된 블라우스 사이로

그녀의 분홍빛 살이 비추었다.

애써 태연한 척 떨지만

머릿속은 엉망진창,

혼란스러움이 가득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나쁜 놈이 확실한 것 같다.


“하즈키, 언제 돌아가?”


그는 마나츠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응, 내일.”


“당신이 싫어하는 질문 하나,

해도 될까?”


“물론.”


“앞으로 계획은?”


마나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답지 않게 대답이 빠르다.


“장황해.”


“큿, 좋아.”


“나도 정상적으로 한 번

살아볼까, 하는데?”


“뭐야? 참 나쁘다?

내가 사라지니까 욕심이 난 거야?”


“에이, 마나츠.”


“다시 보니, 당신 얼굴, 말이야

흠, 상상하지 못할 계획들이 숨어 있는걸?”


하즈키가 녹차를 단숨에 들이켠다.


“응.”


먼 곳을 응시하는

마나츠의 옆모습이 아름답다.


“아, 하즈키 그 계획 궁금하긴 해,

알 것 같거든
한데 그 속에 우리가 있을 리 없으니까,
내 계획에 당신이 없듯이 말이야?

그냥 모른 척할 거야.”


하즈키가 잠시 허공으로 눈을 돌렸다.

마나츠는 자신이

그의 곁에 머물며 잡아 놓았던

시간이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당신, 얼굴이 달라진 게,

그거였구나?”


하즈키의 눈이 다시 바닥으로 머문다.

마나츠가 말했다.


“당신도, 축하해.”


“모르는 것 없는 마나츠.”


마나츠가 눈을 찡긋하지만

그를 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마나츠는 그가 마주치기만 한

마네키 네코를 만질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것을 짐작했고,

마네키 네코를 먼저

그곳에서 발견했을 때,

머뭇거렸던 이츠키와의 결혼을 결심했다.


‘만났구나, 애초의 일’


하즈키가 일어나 느티나무에 기댄다.

습한 공기에도 끄떡없는

시원함과 청량감이 가득했다.

저절로 눈이 사르르 감긴다.

마나츠도 따라 그 옆에 기대지만

그와의 거리는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나무에 달라붙은 그들의 손바닥,

닿을 듯, 닿지 않는 그들의 손가락은

서로를 기억하듯,

가까워질 때마다

스치듯 손가락 끝이 간질거렸다.


“잘 살아, 마나츠.”


“잘 살아, 하즈키.”


하즈키가 머뭇거리다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먼 길로 돌아, 오게 해서 미안.”


마나츠는 그의 한 마디에

참았던 눈물이 폭풍처럼

쏟아져 내렸다.

마나츠는 눈물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건, 내 선택이었어 고집스러운.”


“미안, 정말 미안해.”


그녀도 따라 한다.


“나도 미안.”


저 멀리 푸른 잔디 위에

얼굴이 포동포동한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하즈키의 카디건을

무릎 위에 다소곳이 올려놓고

사랑하는 그를 보고 재잘거렸다.

마나츠의 무릎을 지키던

그의 카디건이 바람에 둥둥

떠, 날아갔다.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넓게 울려 퍼졌고 바람을 탄,

카디건을 그는 낚아챌 생각 없이

미소로 보내며 인사한다.


‘나의 그림, 나의 첫 로맨스, 안녕.’





미네코가 잠이 든 깊은 밤,

그녀의 밤을 깨울까,

계단을 숨죽이며 올라선다.

잠에서 깨기 시작하면

다시 잠들기가 버거운 그녀다.

쇠로 된 계단은

나이 든 그녀처럼

삐걱거리는 날카로운 소리를 지른다.

신발 밑이 닿을 때마다

어깨를 바싹 올린 채

최대한 발을 조용히 놓아도 소용이 없다.

어렵게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방문을 닫으며

예전의 습관처럼 달칵, 잠가버렸다.


“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 싫지는 않다.

미네코가 집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기를 느낄 수 없다.

집 안을 둥둥 떠다니던

미네코의 향수 냄새도

코를 킁킁거리며

집중해야 미세하게 맡을 수가 있다.


늘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지독한 향수 냄새에

추운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 놓고

잠이 들었던 그때가 생각난다.

낯설었던 향수 냄새를

킁킁거리며 찾게 된 지금,

빠르게 흘러버린 세월이 거짓말 같다.


정리되지 않은 다다미에서

먼지와 곰팡이가 섞인 누린내가

코를 찔렀고,

눅눅함은 말할 나위 없이 더했다.


하즈키는 미간을 찌푸리며

커튼을 걷어 내고 창문을 열었다.

한 여름밤의 바람은 마치

히터를 켜 놓은 것처럼

미지근하지만

집 안 공기보다는 신선했다.


낯선 것 중, 안타깝게도

미네코의 요리 솜씨 또한

예전 같지 않다.

간혹 머리카락도 발견되기도,

또는 아주 짜거나,

아주 싱겁거나, 중간은 없다.

움푹 파인 눈은

오랫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것을 말해준다.


목둘레가 길게 늘어진

타다요시의 티셔츠를 입은 미네코,

하즈키는 돌 같은 음식을 씹으며

그녀를 살폈다.

그녀의 입은 뭔가

오물거리는 것 같았으나,

조금 남긴 밥의 양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된장국만 계속 호로록,

거리기만 할 뿐이다.


간혹 된장국의 미역이

입안으로 들어오기라도 하면

후웃, 하는 소리를 내며

그릇 안에 도로 뱉다,

또다시 된장국을 호로록, 거렸다.

그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들의 연속이다.

지저분함을 느낄 사이 없이

놀라는데 정신이 없다.


미네코의 젓가락은 아예

사용하지 않은 채 깨끗하기만 했다.

하즈키는 뭔가 말을 해야 해,라고

머릿속으로 계속 되풀이하고 있지만

그의 말을 들어줄 여유조차

그녀에겐 보이지 않았다.

하즈키의 밥그릇은

쌀 한 톨 남지 않았고,

국물 한 방울 남지 않았다.

그가 먼저 젓가락을 놓고 일어선다.


“잘, 먹었습니다.”


“응, 그래.”


미네코는 습관처럼 일어나

차를 준비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아주 느리고 행동과 같다.


“차를 준비할 거야.”


하즈키는 망설이다,

생전 하지 않던 말을 늘어놓는다.

그가 생각해도 왜 그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는지 의문이다.


“제가 할게요.”


미네코가 뒤를 돌아

시간이 멈춘 듯,

그를 넋을 놓고 보았다.

그녀의 눈은 조금 놀란 눈치다.


“아니, 아니다

이것마저 못하면 되겠니?”


하즈키는 미네코의 말뜻이 궁금했다.

그녀가 세월을 빠르게

먹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는 듯했다.


나오코가 새로 장만해 준,

아니 엄밀히 말하면

겐토가 새로 장만해 준 소파는

미네코에게 잘 어울릴 만한 색이다.

붉은 계열의 갈색 소파는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질

가격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소파를 갖고 싶어 했던 마나츠가

금전적인 이유 또는

좁은 방이라는 이유로

소파를 포기하고 침대를 선택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는

마나츠에게 너무 해준 게 없다.


이럴 땐 겐토의 재력이

단단히 부럽기도 하다.

그는 씁쓸한 소파에 앉으려 하다,

미네코의 열린 방문 틈 사이로

익숙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신기할 정도로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듯해 보였다.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고개만 쑥 빼고

요리조리 움직일 뿐이다.


타다요시가 선물해 준

도자기 다기 세트는

새것처럼 윤기가 흘렀다.

미네코는 차를 마시는 것만큼

돈을 아끼지 않았다.

아주 비싼 녹차부터

저렴한 것까지,

지역별로 종류도 다양하게 사들였다.


물론, 타다요시가

살아 있을 땐

정말 구하기 힘든 차도

헤프게 마실 수 있었다.

한쪽 손은 찻잔을 들고

한쪽 손은 잔 받침을 들고

붉은 매니큐어와 향수를 뿜으며

입꼬리를 올리던 미네코.


얼룩얼룩, 툭툭 불어난 핏줄,

미세하게 손을 떨며

하즈키의 잔에 차를 따라낸다.


“고맙습니다.”


“마셔봐, 아주 귀한 차야.”


“네.”


그는 자꾸만 그녀의 늘어진

티셔츠가 눈에 거슬린다.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이건 타다요시가 준 선물이야,
도무지 손이 가질 않아서

마실 엄두도 내지 못했지
네 덕에 이제 사용해 보는구나.”


미네코가 말할 때마다

식후, 태운 담배의 여운, 이

쓸쓸한 냄새를 풍겼다.


“이걸 마시면 꼭,

그 사람이 내 앞에서 후루룩, 하고

마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미네코는 여전히

남편을 잊지 못한

불쌍한 미망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그녀는 타다요시와 함께

갔어야 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푹 꺼진 눈 밑이

그녀를 더욱 안타깝게 보이게 만들었다.


끝 여름,

뜨거운 차를 여러 번 후루룩,

입이 놀라 귀 뒤로 땀이 흘렀다.


“아, 잊을 뻔했구나.”


미네코가 서랍을 뒤지더니,

마나츠가 전해준 통장을 내밀었다.


“자, 이것.”


하즈키는 한숨을 내쉰다.


“하… 이건 제가...”


미네코는 그의 말을 끊으며

들을 생각 없다는

표정을 단호하게 보여준다.


“너에게 나란 사람을

걱정하게 만드는 거,
그것 하나로도 난 죄책감을 느껴,

한데 내가 이것을?
아니지 아니야 편하게 살고 싶다

하즈키… 날 편하게 해 주렴.”


미네코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기적인 사람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겠지만 하즈키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진심은 하즈키에게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굳이 말로 표현했다 해도

하즈키는 어색함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오히려 그녀의 말에 마음이 편해졌다.


“그, 늘어진 티셔츠처럼 말이죠?”


내내 심각한 얼굴을 하던

미네코의 얼굴에 마치 꽃이 핀 것처럼

화사한 웃음이 스며들었다.


“아, 이건, 하하, 재밌는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지.”


하즈키는 왜 굳이

그 옷을 입고 있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녀의 말에 그도 따라 웃었다.

타다요시가 죽은 후,

처음으로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웃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귀와 심장이

웃음소리에 간질거렸다.


“전…”


하즈키가 말을 잇기 전에

미네코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즈키 가져가거라

일부러 날 힘들게 하려는 속셈이

아니라면 말이야.”


그녀는 정말 단호했다.

아예 하즈키의 겉옷 주머니 속에

깊숙하게 집어넣는 그녀다.


“타다요시는,

내 걱정을 아주 많이 했다,
하즈키 네 걱정보다는

덜 했겠지만 말이야.”


어쩌다 눈이 마주쳤을 때의

서늘하거나 표독스럽기까지 한

예전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가끔 보여주는 미소는

인정스럽기까지 했다.


“그가 내게 남기고 간 것들이

너무 많아, 처음엔 어떻게 살아갈까란

두려움 때문에 너무 욕심을 부렸지,
시간이 지날수록

있는 것들에 만족하고 사는 게

잘 사는 거야라고,
이제 조금 알 것 같은데 말이야…
사람들은 말하지,

살아봐야 안다고…

세상은 잔인해
살아야만 알게 되는 것 것 투성이지,
어떻게 어린 나이에

더 살아보지 않고 알 수가 있겠어
내겐 방법이 없었지,

그래서 늘 실수했고 상처를 줬어,
그렇게 멍청하게 살다가

눈 한번 깜박하니,
이제 다 늙고 나니, 알게 되는 거야…
그렇게 더 살아보고 싶어도

세상은 시간을 주지 않겠지…
이미 늙어 버렸으니 말이야,
그러니 생이란 어쩌면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야
참, 잔인한 벌이지.”


하즈키는 그녀의 단어를

하나라도 잊을까,

머릿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그 어떤 말로도 대답할 수 있는 말은 없다.

그는 가슴으로 느끼고

입으로는 탄식만 내뿜는다.


“솔직히, 외롭고 외롭지,
새까만 밤이 되면

내 방에만 불이 켜져 있는 게

너무 외로워
그래서 때론 아예 내 방 불도

다 끄곤, 어둠에 어둠으로 맞서지,
그러고 나면 좀

덜 외로운 것 같거든,
왜냐하면 모두가 다 그렇게

똑같이 잠이 든 밤일 테니까 말이야

그렇게 모두가 똑같이

늙어 버렸을 테니까 말이야.”


한참 후, 하즈키가 말했다.


“쇼가 보고 싶으시죠?”


미네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그 애가 그 앤지

알아보지 못할까, 그게 고민이야,
아이들은 기다려 주지 않거든?”


미네코의 입이 쓰디쓴

물약을 마신 것처럼 구겨진다.

하즈키는 겐토가 부탁한

쇼의 사진첩을 가방에서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미네코는 또 무엇일까, 싶어

인상부터 찌푸렸다.

그녀가 푸념을 늘어놓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사진첩이에요,

겐토가 부탁했어요.”


미네코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사진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손으로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천사가 다 있을까…”


그가 가방을 주섬주섬 정리하면서

천천히 일어섰다.


“저… 전화는 꼭, 받으세요

가끔 할게요.”


“그래, 그러자.”


“기차 시간이 다 됐어요,

일어날게요.”


“건강이 최고야.”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네코의 쇠약해진 몸을 홅더니

할 말은 또 목 안에서만

웅얼거리고 한숨만 새어 나왔다.


“다음에 올 땐

네 방에 새 벽지와

다다미가 깔려 있을 거야.”


미네코는 다시 들르라는 말을

꼭 이유를 붙여 돌려서 한다.

하즈키는 이상하게 그녀를

웃게 해주고 싶었다.


“네, 기대할게요.”


예상대로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늦겠다, 난 따라 나가진 않을 거야.”


“네, 가 보겠습니다.”


“그래.”


미네코는 대답만 할 뿐

일어나지도, 그의 뒷모습도 보지 않았다.

별일 없었다는 듯,

텔레비전을 켜고

집이 떠나가듯 소리를 키웠다.


하즈키는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꾸벅, 하고 고개를 숙인다.

고맙게도 그가 나가며

닫는 문소리가 텔레비전 속에 묻혔다.


하즈키가 걸어 나오는 등 뒤로

텔레비전 속사람들의

목소리가 요란을 떨었다.

마치 외롭고 외롭다고

그녀가 외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홀로 남은 그녀가

오늘따라 한없이 애처롭다.


그는 조금 더 걸음을 걸어

오랫동안 집을 바라보았다.


마나츠의 말처럼

비뚤어진 타다요시의 집,

넓고 모순덩어리 집이

미네코를 단숨에

삼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난다.


자신도 모르게 다시 문을 쾅, 하고

열더니 텔레비전 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전화… 꼭 받으세요.”


미네코는 정말 놀란 눈을 하고 앉은 채

그를 쳐다보며 입을 헤, 하고 벌린 뒤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즈키는 자기 모습이

쑥스러워 빠른 속도로 다시 사라졌다.

이번엔 미네코가

넓은 창을 열어 그를 배웅한다.

햇살이 만들어 낸 그림자가

삐뚤어진 집 모서리를 가렸다.

그때야 비로소

바로 선 미네코의 집이 보였다.





그는 발을 터덜거리며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

손목시계를 흘끗 보더니,

무겁기만 한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햇살은

쨍, 하고 그의 눈을 가렸다.

머릿속에서 흘러내린 땀에

셔츠의 맨 위 단추를 풀어헤쳤다.

약속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하악, 하악, 학학.”


왠지 모를 불안감에

그녀와 약속한 금시계탑

주변을 탐색했다.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약속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었지만,

하즈키는 불안했다.

눈동자는 아주 빠르게 굴러갔다.


깜박이는 눈동자 위로 땀방울이

눈물처럼 뚝, 뚝 떨어진다.

하즈키의 우울한 표정이

금세 밝아지는 중이다.


“찾았다.”


그녀는 그때와 같이

몸을 숙이고 상점 안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모습처럼,

영락없는 고등 시절 모습과 같았다.

하즈키는 그녀가 자신을 봐줄 때까지

기다릴 참이다.

한순간도 그는

그녀를 눈에서 놓지 않았다.


쉬지 않고 달려온 애씀을

모른 척하려는 듯,

꽤 오래 그를 혼자 두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금시계를 보다,

하즈키를 발견했다.

이어폰을 끼고 있던 그녀가

이어폰을 목에 걸며 걸어온다.


‘반짝거림’


그녀의 민소매 흰색 원피스가

나풀거리며 다가왔다.

지금 세상은 하얗게 더 하얗게

그녀만 보이는 세상이다.

하즈키의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며

말을 듣지 않을 요량이다.

이미 웃음을 보여준

그녀를 본 순간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머릿속은 그녀의 원피스처럼 새하얘졌다.


그녀가 하즈키의

심장 앞에서 멈춘다.

그를 올려 보며 방긋, 웃으며

눈을 달처럼 구부리며 미소 지었다.

하즈키는 그 순간도

그녀가 날아갈까,

빠르게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하즈키의 품속에 안긴

그녀의 모습은 존재감 없이

허공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감쪽같이 그녀가 숨어들었다.

그녀에게서 방금 베어 낸

풀 냄새가 풍겼다.

하즈키의 젖은 셔츠가

그녀의 볼에 닿는다.

그의 얼굴을 보자

흘러내린 땀방울을 보고 말했다.


“무슨, 일, 이에요?”


하즈키는 여전히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당황할 법한 그의 행동에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느릿느릿하다.


“봐 봐요.”


그녀가 팔목에 감긴

손수건을 풀어

그의 이마를 닦아냈다.

그녀는 다시 또 방긋거리며 말한다.


“세수할래요?”


느릿느릿, 엉뚱한 그녀의 말에

그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요.”


하즈키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도 낚아채며

감쪽같이 숨겼다.

목에 걸린 이어폰 한쪽이

원피스 끝자락에 매달려

대롱거렸다.

아스팔트 바닥으로

알 수 없는 노래가 스며들고 있었다.


‘작은 새를 만난 건, 세 번째.’


처음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심장 또한 그와 같았다.

웃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기다란 눈,

광대가 툭 불거져 나온,

마른 장작 하나,

민 달팽이가 집을 찾아

헤매는 것 같은 모습,

하즈키의 눈에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녀를 끌어안았을 땐,

전혀 당황한 기색 없는

그녀의 괴상함이

그를 더욱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신칸센에 오르자마자

커다란 가방 안에서

책을 꺼내 읽더니,

그녀는 이내 잠이 들었다.


친숙함에 가슴 떨리다가,

이내 겉도는 냉랭함에

하즈키는 혼란스럽다.

어쩌다 마주친 그녀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갑거나,

대화하기 힘들 정도로

다른 생각에 묻혀 있다.


이럴 때마다

마호가 왜 그녀를 눈에서

떼지 않고 바라보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즈키는 일부러

그녀와 마주 앉아

그녀의 모습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보는 중이다.

보통 여자들과 너무 다른 코하네.


전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잠든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입술 사이는 약간 벌어져 있었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눈을 감은 모습이다.


머리카락은 그새

듬성듬성 자라 일정하지 않았다.

만약 마나츠라면,

하즈키의 어깨에 기댔거나

아예 잠들지 못하고

재잘거렸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그녀의 모습에

더욱 기분 좋은 긴장감이

손끝으로 퍼져 나간다.


그녀가 읽던 책

겉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글씨체다.

하지만 읽을 수 없는 언어다.

얼마나 손을 탔으면

종이로 덧대 놓은 것까지

닳고 닳았다.

작은 체구에 들 수 없을 법한

큰 가방, 하즈키는 그 가방 속이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갑자기 그녀의 몸이 화들짝,

놀라더니 두 다리가

순간 좌우로 움직였다.


“으엇.”


그녀보다 더 놀란 하즈키지만

아닌 척, 웃었다.


“잘, 잤어요?”


잠이 깬 그녀의 눈은

다시 냉랭함으로 돌아와 있었다.

옅은 미소만 보일 뿐

말없이 자기 손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로 중얼거리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하즈키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손, 이리 줘 봐요,

내가 해줄게요.”


하즈키는 괜찮냐는 말 대신

쥐가 난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다시 어색해진 분위기를 만들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요.”


그녀에게 지금

대화가 필요한 순간이 아니란 것을

눈치채고 그도 함께 침묵을 지켰다.

창밖을 응시하다 말고

그녀가 하즈키를 바라보며

다시 옅은 미소를 내비쳤다.

그 미소 하나에

그는 전율을 느끼며

말도 안 되는 고마움에 감격했다.


심장이 튀어나올 뻔한 순간이다.

그녀와 있는 시간 동안

몇 번의 심장 사고는 계속된다.


그녀는 하즈키가 내내

궁금해하던 덩치 만 한

가방 안에서 물병과 음료수,

종이컵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능숙하게 그것들을

종이컵 안에 하나로 섞어

그에게 내밀었다.


“상큼한 맛이 없어

아쉽지만 나쁘지 않아요.”


하즈키는 마침

목이 마르던 찰나였다.

쿵쾅거리는 심장 탓인지

받아 든 컵에서

약간의 내용물이 손등을 타고 내려갔다.

그녀에게 풍기는 그 풀 냄새다.


“엇.”


“미안해요.”


그녀가 빠르게 흰 손수건을 건넸지만,

그는 도저히 그녀의

하얀 손수건으로

손을 닦을 수가 없다.

그녀가 보지 않는 틈을 타

그의 청바지에 쓱, 하고 문질렀다.


“향이 좋아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창문 너머의 세계로 빠진다.

하즈키는 그녀의 입속을 차지한

종이컵 속 내용물이 부러웠다.

하즈키는 그녀의 고개를

자신만을 바라보게 만들고 싶었다.

하즈키가 말했다.


“맛있어요, 음, 진 토닉?”


눈썹을 추켜올리며

눈을 동그랗게 말아 쥔 그녀는

마치 맞추었다며

칭찬이라도 해주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딱 두 번 만에 진 토닉을 들이켰다.

그는 그녀의 미세하게

움직이는 목을 바라보다

그만 눈을 들키고 만다.


그녀는 하즈키의 눈을 놓아주지 않았고,

뭔가 의심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그들은 서로의 눈을 탐색했다.

오랫동안 마주하며 침묵이 흘렀다.

하즈키도 한 잔을 모두 비워 내며

긴장감에 쓸데없이 컵을 구겼다.


구겨진 컵 속엔

숨기고 싶은 그녀에 대한

욕망이 가득 담겨있다.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즈키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빠르게 다가가 앉는다.

여전히 그녀는 하즈키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즈키의 수줍은 몸짓,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잡아당겼다.


어디서 튀어나온 용기인지,

하즈키는 자기 행동에

심장이 또 사고를 낼 것만 같았다.


그녀는 미동하지 않지만,

가쁜 숨소리가 숨길 수 없이

그의 귀를 타고 들어갔다.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는 눈,

그녀의 감정을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코가 맞닿을 정도로

그녀 얼굴과 하즈키의 얼굴을

바싹 갖다 대고 다시 눈을 마주했다.

마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숨을 짧게 들이마시고

그녀의 손 등을 살포시 움켜쥐었다.

차가움에 잠시 멈칫.

그녀의 눈에

하즈키의 눈이 지고 말았다.


출처, 오직 그대만



감정을 들키고 만 순간이었다.

하즈키의 눈이 먼저 감기더니

그녀의 차갑고 말랑한 입술이 느껴졌다.

아주 진한 풀 냄새,

그녀의 혀끝은 달콤하다.

하즈키의 몸 전체에

그녀의 향기를 잡아당겼다.


하즈키는 주위가

뱅뱅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정신이 아득하다.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약간 열려 있는 그녀의 입술은

발간 모습으로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었다.


세상에 있는 단어로

설명되지 않을 통증이

찡, 하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감정이 격해지더니

콧등까지 시큰거리고

시야도 흐려졌다.


머릿속에서 몸속으로

그리고 심장 속으로

그녀가 가득 들어찬 순간이다.

멈춘 시계처럼

움직임이 없는 그녀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품으로 안았다.

듬성듬성한 머리통을 쓸며

부러진 날개의 어깨를 매만졌다.

그녀가 하즈키의 귀에 대고 말했다.


“심장이 아파요.”


그녀 또한 하즈키와 같다는 말에

하즈키는 그녀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나도 그래요.”


그녀가 하즈키의 심장에

귀를 갖다 대며 파고들었다.

커다란 가방이

하즈키에게 밀려나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그 어떤 소리도

그들에게 들리지 않은 것 같다.

그녀의 몸은 한겨울에

벌거벗은 아이처럼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쉬이.”


하즈키는 그녀를

들여다보기만 해도

온몸의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마녀가 마법을 부린 것처럼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 길은 미로처럼

입구를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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