暗[암]

3. 쟁취

by 금봉




눈앞의 세상은 평화로웠고,

코하네의 모습과는

다른 반대의 말을 계속

걸어오는 것 같았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옆을 지나갈 때마다

평화로워 보이는 표정에

화를 내거나 질투가 나기도 했다.

아마도 네발로 기어 다닐 적부터

코하네는 그래야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이 오를 정도로

붉게 물든 산은

정말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하늘은 정신을 잃게 만드는

파란 알약처럼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신칸센을 타러 가는 내내

그들은 서로 말이 없다.

그들은 그저 말 없는

그녀를 보며 눈치껏 행동했다.


아마도 지금

코하네에게 필요한 건 침묵일 것이다.

코하네의 무릎 위를 타고 있는

아키라는 신이 났는지

연신 좌우로 흔들거리는 중이다.

코하네는 밖의 하늘을 올려 보며

눈을 감고 괴상하게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를 반복하고 있었다.


며칠 간의 불규칙한 잠과

심적 불안함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마호는 눈꺼풀이 저절로

입가 밑으로 내려가고 있음을 느낀다.

마호가 내민 코하네의 옆자리를

마다 한 하즈키는

자신과 눈이 마주쳐 주길 바라며

코하네의 맞은편에 앉아

눈을 끔벅거렸다.


하즈키의 턱 밑은

며칠 관리하지 못한 티를

제대로 내고 있었다.

불규칙하게 거뭇거뭇한 얼룩은

마치 성인식을 막 치른

아이의 모습과 같다.


마호와 같이 눈꺼풀이 무거웠지만

코하네를 두고

눈을 감을 수가 없다.

어느새 많이 자란 머리카락은

살색의 밋밋함을 감추고 있었고

불규칙하게 뻗은 그것들을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아키라의 구둣방을 나오니

다시 죄어오는 세포들의 움직임에

조금은 죄책감을 덜어도

될 것 같은 심정이다.

빠르게 변하는 창밖 풍경 중

쨍한 햇살이

핏기 없는 코하네의 얼굴을

발갛게 달아오르게 했다.



히로시예 료코


한 계절의 끝은 마지막을 발악하듯,

아직 뜨거운 날씨에

거미줄이 활개를 뻗친다.

대문 사이로 하얗게 보일 정도의

거미줄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일정하게 짜 놓은 거미줄은

그야말로 예술 작품이다.

아주 오랫동안 자기 집인 양,

머물렀던 모양이다.


코하네는 나무 작대기로

솜사탕을 만들어 먹듯

거미줄을 쭉, 잡아당겼다.

그러자 어디선가 튀어나온

배가 빵빵한 커다란 거미 하나가

대롱대롱 공중에 흩날리는 줄에

매달려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보기보다 탄탄한 거미줄은

좌우 끝은 살펴보니

먹이를 저장해 놓고

하얗게 미라를 만들어 놓은 모습도 보였다.

코하네는 화가 났다.


“너는 살고 싶은 거지?”


옆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죽은 먹이를 많이도

저장해 놓은 모습이다.

코하네는 살려고 바둥거리는

배가 빵빵한 거미가 얄미웠다.


어느새 온갖 잡초들로

화단인지도 분간되지 않는 곳에

그것을 작대기로 돌돌 말아

홱, 집어던졌다.

마호는 익숙하게 코하네를

따라 들어가더니

정리할 것 없이 텅 비어 있는 곳을

정리라도 하려는 듯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역시 하즈키에겐 낯선 공간이다.

밖에서 봤을 때도

꽤 넓어 보였는데

직접 들어와 보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집이다.

하즈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곳의 재단도

집 크기만큼 커다랬다.

하즈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곳에?”


코하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곳을 살며시 열었다.

열쇠라고 쇠로 된 고리가 전부다.

그 안에는 아키라의 것과

비슷한 도자기 모양의 것들이

늘어서 있었다.

하즈키는 태연한 마호와 다르게

입이 떡, 하고 벌어진다.

다른 어떤 도자기들에 비해

아키라는 작고 작았다.


코하네는 아키라를

츠키노 사진 옆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츠키노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할아버지가 역정 낼 일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의 배려를 해 본다.

코하네는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홀로 키득거렸다.


“일 년 만요, 할아버지.”


살아생전 늘

다른 여자를 끼고 살았던 할아버지가

이 정도도 이해 못 할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코하네는 다시 키득거린다.

아키라의 걸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야 편하구나 고맙다.”


“그곳에선 아프지 마세요”


마호도 뭘 아는지

티 나지 않게 따라 키득거렸다.

하즈키는 멀뚱히 코하네의 머리통만

바라볼 뿐이다.

코하네의 솟은 어깨에 힘이 풀리며

다다미에 온 힘을 빼고

벌러덩 누웠다.


따라올 필요 없다며

극구 말렸던 하즈키가

그제서 코하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즈키를 바라보는 코하네의 시선에

그는 기쁨의 눈물이라도 흐를 것만 같다.

그 어떤 말도 필요 없었다.

얼마 전 자신을 바라봐주던

그때 코하네의 눈빛이었다.

눈동자를 가리며 씩, 하고

웃어 보이는 그녀를

품 안에 쏙, 넣고 싶었다.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사람처럼

불안한 하즈키에 비해

마호는 그저 편해 보인다.

마치 마호의 집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신칸센에서 가끔 감기는

눈꺼풀 덕에

피곤함이 배는 줄어들었다.


하즈키도 따라 다다미에 벌러덩 누웠다.

서늘한 바람이 그들을 타고 사라진다.

코하네가 그 틈을 타

오래된 나무 냄새를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흐으으음 하아, 여긴 귀신의 집이야 큿.”


마호가 웃는다.


“큭.”


하즈키는 영문도 모르고

코하네의 웃음소리에

웃음이 따라 나오고 있었다.


“하하하하.”


코하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후미코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미닫이문이 틈이 벌어져

있는 것을 보더니 벌떡 일어난다.

방 안으로 들어가 투박한 소리가

날 정도로 문을 콱, 닫아 버렸다.

오랜만에 들어온 후미코의 방 안이다.


문이 닫히자 쩍, 하고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하즈키가 코하네를 따라

들어가려던 찰나,

마호가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그냥 둬요,

지금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

당신조차,

모르겠어요?”


하즈키는 반항 섞인,

또는 자신감 있는 대답으로

말하려 했지만,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하즈키는 코하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점점 위축되고 있었다.

하즈키는 대답 대신

아직 쥐고 있는 문을

놓지 못하는 중이다.

마호의 말이 맞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 말을 들은 척하고

싶지 않은 오기가 생겼다.

마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다시 단호하게 말했다.


“손, 치워요 그만.”


“헙.”


하즈키가 두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마치 전쟁에서

항복을 원하는 사람 같은

시늉을 해 보인다.


“어렵군.”


마호가 말했다.


“먹을 것 좀 사 올게요,

방해 마요 절대.”


하즈키는 다시 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한다.

마호는 대문으로 나갈 때까지도

하즈키를 계속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할머니 츠키노가

태워 버리려 했던 붉은 담요,

코하네는 츠키노 몰래

숨겨 두었던 붉은 담요를

꺼내 들었다.

후미코의 체취가

먼지와 함께 공기 중에

떠돌아다녔다.

담요의 짧은 털이

서로 엉켜

습기를 머금은 채 뭉쳐 있다.


아키라는 생전 이곳에

오랫동안 오지 못할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오래된 담요에서도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아키라는 이곳을 위해

큰 금액을 미리 맡기고

관리인을 통해 관리해 왔다.

마치 아키라가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가을이 늦게 찾아오는 곳치곤,

창문에 나무를 덧대어

놓은 모양을 보니

마음이 무척이나 급했구나 싶다.


코하네는 빠르게 몸을 웅크리더니

어린 코하네가 그랬던 것처럼

담요를 머리끝까지 덮어 보았다.

아주 오랜만에 하는 행동,

후미코의 규칙에서

벗어나 자의적으로 하는 행동이다.


귀한 빛이

삭은 담요 구멍으로

새어 들어왔다.

눅눅한 담요를

다시 끌어당기며

작은 빛은 사라졌다, 머뭇거리며

다시 비추었다.

답답한 공간과

어울리지 않게

며칠 내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릴 것 같았던 얼굴이

세상 편안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온몸을 둘러싼 긴장이

풀리더니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발개지는 것을 느꼈다.

작은 개미들이

세포 하나하나에 발을 닿고

걸어가는 느낌이다.


담요 속, 숨쉬기는

버거웠지만 코하네는 입가에

미소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코하네는 갑자기

손가락을 오므리며

경직된 것처럼 몸을 더 웅크렸다.

가슴과 목까지 열이 닿아

입속에서 뜨거운 김이 훅, 하고 나온다.


“프헛엇.”


출처 비밀



참고 참았던 뜨거운 울음은

짐승의 소리를 내며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직 문 앞에 서 있는 하즈키는

마호의 말처럼 걸음을 뒤로,

또 뒤로 물러나

그저 문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위험해 보였던 코하네가

이제 와서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엄마... 더워도 춥고

따뜻해도 추워,

자꾸 자꾸만 춥고

자꾸만 사라져."


흑백의 사진은 낡고 닳았다.

옛날, 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것들은

특유의 옛날 냄새가 난다.

표현하기 힘든 옛날 냄새는

중독성이 강하다.

분명 어제 보았던 사람 같았는데

그들은 사진 속에서

옛날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누가 나서서 말해 주지 않아도

후미코의 얼굴은

코하네의 얼굴과 똑 닮아 있었다.

사진 속의 후미코는

유난히 눈이 작고

눈두덩이는 넓었다.

작은 눈은 흰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은 눈동자가 커다랗다.


후미코는 마치 사진 속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코하네의 엄마가 분명하다.

신기한 건

할머니로 보이는 사진 속의

여자와 코하네의 엄마도

똑 닮았다는 것이다.

코하네, 후미코, 츠키노

세 사람은 대단히 비슷했다.


“끼이이이이익.”


미닫이문을 억지로

여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마호와 하즈키는

소리가 나는 쪽을

동시에 돌아보았다.

마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작은 상 위에

먹을 것을 꺼내 놓는다.


낡아빠진 뿌옇게 되어버린

유리잔은 아무리 씻어도

옛날 냄새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끼익, 하고 짧은소리가 들린다.

하즈키는 유리잔을

이리저리 살피며

사진 속 사람들이

쓰던 물건이라고 생각하니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뜨거운 물을 부어 놓은

컵 속에서 인스턴트 특유의

입맛 도는 냄새가 새어 나왔다.

하즈키는 코하네를 두고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를

채우려 하니 맘이 편치 않다.

마호를 보며 손가락으로

방문을 향해 보지만

마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둬요.”


“언제까지?”


“나올 때까지.”


그들은 빠르게 라면을 먹어 치웠다.

유리잔 탓인지,

늘 마시던 맥주 맛이

굉장히 낯설었다.

혀끝에서 맴도는 술은

목으로 넘기기가 버겁다.

용기를 내서 꿀꺽, 넘겨본다.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고…

놀랄 정도로 많이 닮았어요.”


마호가 식어 빠진

라면 국물을 남김없이

후루룩, 마시며 말했다.


“그거 알아요?

피해자, 혹은 죽어야 사는 자.”


하즈키는 자신이 알아듣지 못한 말이

코하네의 일임을 알고 되물었다.


“알고 싶군.”


마호는 입술을

유리잔에 잔뜩 머금고

술을 꿀떡꿀떡 잘도 마셨다.


“알아도 몰라요.”


마호는 하즈키를 놀리듯 빈정거렸다.

비닐 속을 뒤지며

작은 크기의 위스키를 꺼내 든다.


“줘요?”


하즈키는 숨을 크게 내쉬며

유리잔을 내밀었다.

처음 보는 위스키의 향은

굉장히 독하다.

마호처럼 유리잔에 입술을

크게 들이밀며

미지근한 술을 맛보았다.

거칠지만 잊지 못할

위스키 향은 꼭, 이 집과 같았다.

마호의 얼굴이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하며 말했다.


“전쟁은 가장 나약한 것을

먼저 잃게 만들지.”


전쟁이란, 단어에

하즈키는 잠시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있는

타다요시의

얼굴을 떠올렸다.


“후미코는 한국에서 온

재물이었고,

그들은 가장 나약한 존재였어요.”


하즈키는 후미코가

재물이라는 단어로 불리는 것에

잠시 놀라며 귀를 더욱 기울였다.


마호의 표정과

낮은 목소리는

하즈키를 압도했고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집중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었다.

처음엔 마호가 쓰는 단어들이

낯설어 신기했고

점점 후미코의 얼굴과

온갖 소리가 뒤죽박죽 되어

하즈키의 심장까지 괴롭히고 있었다.

미지근한 위스키는

홀짝, 잘도 들어갔다.


“화,라는 건 아무 쓸모도

도움도 되지 않았지,
숨기기에 급급한

피의자들의 완벽한

승이기 때문에… 아직은.”


하즈키는 알고 있었던

일들이 몰랐던 새로운 일들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

어떻게 이런 일들이.”


마호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당신도 완벽하게 숨기고 있는

그들에게 속은 거지

나 또한 그랬었고.”


하즈키는 코하네의 고통이

전해지는 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렸다.


“고개를 들 수가 없군.”


“용서,라는 단어가

용납되지 않지,

어울리지도 않고.”


어둠이 깔리고

밤이 시작됐지만

보름달이 유난히도 밝게 비춰준다.

어디선가 들리는 새소리는

왠지 서글프기까지 하다.

마호의 낮은 목소리는

소리 내지 않았고,

숨을 쉴 때마다

그가 들이켜는 술의 양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며칠 동안 느낀 모든 긴장이

땅속으로 파고들었고

얼굴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지만

커다란 몸을 숨길 수는 없다.

맑았던 하늘에

구름이 끼기 시작했는지

보름달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즈키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만, 마셔요.”


마호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코하네의 방문만 바라본다.

그의 신호라도 느꼈는지

신기하게도 미닫이문이 열렸다.

마호는 놀라지도

코하네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하즈키는 벌떡 일어나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녀는 퉁퉁 부은 눈으로

하즈키를 바라보며 함박 웃었다.

그 모습이 의아해

어깨를 잡은 손을

놀란 사람처럼 툭, 떨구었다.

마호가 웅크린 채 깔깔거린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술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마호가 그녀에게

유리잔을 내밀자

또 한 번 함박, 웃으며

날름 받아 마신다.

마호는 괜찮냐, 는

물음을 하지 않았다.

하즈키도 덩달아 아무 말 없이

남은 술을 들이켠다.

미지근한 술이

얼음덩어리도 아니면서

마실수록 정신은 더욱 또렷하다.


그들은 마주 보며

이유 없이 깔깔거렸다.

하즈키는 이번에도

덩달아 깔깔거리며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난 후,

그때야 정상인 것처럼

코하네는 또박또박 말했다.


“난 괜찮아 이제.”


마호가 대답한다.


“나도 괜찮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지만

하즈키는 생각나지 않았다.

코하네가 물었다.


“당신도요?”


하즈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코하네는 봉투 안을

뒤적거리며 먹을 것을 찾았다.

덩그러니 남은

하나의 컵라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쓸쓸하게 배시시 거렸다.

마호는 빠르게 물을 끓였다.


“조금만 기다려.”


하즈키는 그들 사이에

틈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잠시 두려움이 앞섰다.


틈이 있어도

들어갈 수 없는

틈일 것만 같았다.

하즈키는 그저

멋져 보이는 또는

어른 같은 마호가 부럽다.

마호를 바라보고 웃는

그녀의 얼굴은

하즈키에게 보이는 것 과는

다른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짠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그녀를 위해

마호는 라면에 물을

한가득 부어 담았다.

하즈키는 마호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배우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라면은 딱, 봐도

싱겁고 퉁퉁 불어 보였다.

그녀는 맛없어 보이는

퉁퉁 불은 라면을

호호, 불며 맛있게 씹어 넘기는 중이다.

마호는 그녀가

물을 가득 부어

퉁퉁 불은 라면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즈키는 그녀를 통해서가 아닌,

마호를 통해서 그녀를 또 들여다본다.

꽤 술에 휘둘려 버린 하즈키는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고 깜깜해진다.


‘젠장 할 위스키.’


술기운은 점점

감각도 무디게 만들었다.

어딘가 부딪힌 느낌이 들었지만

아프진 않다.

일어서려던 순간

술에 휘청거린 모양이다.


고개를 들어보려 했지만,

차가운 바닥이 맘에 들었다.

마호의 목소리는 분명

크게 들렸고,

귀에서 윙윙,

곤충의 날개가 말하는 것처럼

번역되어 하즈키는 키득거렸다.

코하네의 차가운 손가락이

하즈키의 머리통을

지나가고 있었다.

코하네는 하즈키의

머리칼을 보며 속삭였지만

그 또한 들리지 않았다.


하즈키는 내심

그녀와 함께 있어도

갈구하고 또 갈구하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났었다.

코하네의 감정을 의심할 때마다

마나츠의 살냄새가

기억 속에서 코를 자극했다.


코하네의 손가락이

자꾸 자신을 쓸었지만 공허했다.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안개에 갇힌

달의 모습이 보이다가,

보이지 않다가 멋대로

눈앞에서 움직였다.

부딪힌 것 같았던 어깨가

욱신, 통증이 밀려온다.

미지근한 위스키 탓일 것이다.

아마도 꿈인 것 같다고

코하네가 자꾸 속삭이는 것 같았다.

꿈이라면 눈을 더

질끈 감고 깨고 싶지 않았다.


출처, 남은인생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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