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별이 될 때까지 함께
갈피
바다의 색깔이
마치 1초마다 바뀌는 것만 같다.
태양을 오롯이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한참 후, 눈을 떴을 때
바다의 색은
눈동자를 아프게 할 만큼
쨍한 파란빛을 뽐낸다.
볕이 바다 위를
마음껏 뛰어놀며
빛의 선을 만드는 모습은 참, 신기하다.
늘 바다를 접하고 살면서도
바닷물에 발을 담근 건, 처음이다.
이곳은 노아가 입이 닳도록
설명했던 천국이 아닌가 싶다.
사방이 막힌 회색빛에
길들여진 눈이
심심할 겨를이 없이
선명한 자연의 색을
그대로 받아들이느라 정신이 없다.
코하네의 하얀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이틀 만에 변한
갈색 피부의 건강한 모습이다.
마호의 모친이 이 섬에
정착한 건 꽤 시간이 흘렀다.
그의 새로운 아버지란
사람의 고향이라고 한다.
신기한 건, 같은 나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굉장히 선이 굵고 색도 짙었다.
마치 노아처럼,
이방인처럼 말이다.
마호의 엄마 미쿠는
도쿄에서 신선한 달걀을
주던 사람 같지 않게
건강한 모습으로
검게 그을려 있었고,
팔뚝에는 보이지 않던
근육까지 붙어 있었다.
미쿠는 마치
인디언 같은 옷을 걸치고 있었고
머리도 길게 늘어뜨린 채,
자연에 푹, 파묻혀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미쿠가 웃을 때면,
가지런하고 하얀 이를
여덟 개 이상 드러낸다.
코하네는 그런 그녀가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
자신도 따라
여덟 개가 되지 않은 이를
애써 드러내며 웃었다.
마호는 한 달 동안이나,
이곳에 머물렀고
그 또한 원래 이곳에 정착하고
살았던 원주민처럼
아주 검게 그을려
건강함을 뽐내고 있었다.
코하네는 이곳을 방문하기 전,
많은 고민에 부딪혔다.
따뜻한 날의 결혼을 앞두고
하즈키를 두고 홀로
도쿄를 떠나오는 게
옳은 건가,라고 의문했다.
물론 하즈키는 흔쾌히,
오히려 그녀를 더욱 부추기며
다녀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즈키는 늘, 그렇게
그녀에겐 예스인 사람이다.
그렇게 코하네는 등 떠밀려
한 번도 타 보지 못한
비행기를 타고 말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비행기에 착석하고도
비행기의 바퀴가 굴러가고
있음을 알고도,
벌떡 일어나
내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코하네는 지금,
파란 하늘과 바다와
은빛 모래들을 보고 있었고,
죄책감이 들 정도로
단 한 번도 하즈키가 생각나지 않았다.
오늘 코하네는 아직
하즈키의 목소리를
확인하지도 않았고
감동의 그림들만
눈 안에 넣는 중이다.
겨우 이틀이 흘렀을 뿐인데,
마호는 하루의 반을
뛰는 것에 열중했다.
코하네의 앞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왔다 갔다를 하고 있는지,
손가락으로 세고 있던 그녀는
금방 풀이 죽어 포기한다.
마호의 뜀박질이
조금씩 지쳐간다는 것을
속도로 느낄 수 있었다.
멀리서도 땀이 모래 위에
뚝, 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코하네를 비추는 태양이
순식간에 마호로 변해 있었다.
“학학학하악.”
코하네의 얼굴에만
고맙게도 마호의 그늘이 생겼다.
코하네는 얼른 물통을 들어
팔을 쭉, 뻗어 올린다.
마호는 물을 얼굴에 붓는 건지,
입안으로 들이미는 건지,
분간할 수가 없을 정도로 퍼붓는다.
검게 그을린 그의 근육이
그녀의 얼굴 가까이서
마치, 나 좀 보라며,
울룩불룩 점점 더 튀어나오려는 것 같다.
코하네는 검지로
마호의 허벅지를 꾹, 눌러보았다.
돌덩이 같은 근육에
손가락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아얏.”
마호는 미소로 답한다.
다시 코하네가 말했다.
“진짜네?”
마호는 다시 미소로 답한다.
코하네는 빈 물통을
흔들어 보이며 입맛을 다신다.
“그만 들어갈까?”
“그래야겠지?
목이 마르거든 힛.”
마호는 땀으로 끈적이는 손을
목에 두른 수건으로 닦으며
앉아 있는 코하네에게
손을 내밀었다.
“친절한 마호.”
“아주 좋아.”
“응?”
마호가 코하네의
그을린 볼을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이렇게 건강해 보이니까.”
“힛, 내 생각도 같아.”
마호는 마치 만화 속에 나오는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지금 마호의 웃는 얼굴을 보니
미쿠가 웃을 때 보이는
가지런한 여덟 개 이상의
치아와 굉장히 닮아 있었다.
마호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코하네의 하얀 원피스에 묻은
은빛 모래들이
바람에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이곳은 4월부터 10월까지
쭉 비가 내린다.
그날을 앞둔 지금,
이곳은 정말
천국의 날씨인 듯하다.
점점 해가 바다와
가까워지고 있었고,
오렌지의 달콤한 향이
날 것 같은 색을 띠며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제법 자라난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고
일정한 방향 없이
찰랑거리며 코하네의 코를 간질인다.
미쿠의 집은
전체가 목조로 되어 있지만,
하얀 시멘트와 함께
어우러져 인상적이다.
원래 아주 오래된 고택을
개조했지만 구조가
많이 바뀐 건 아니라고 한다.
마호의 새아버지는
이곳에서 숙박업을 한다.
처음 이 집을 지은 건
새아버지의 아버지이며
대 가족이 함께 살았던 탓에
여러 개의 방으로 꾸며있었고
함께 살던 가족들은 사망하거나,
또는 대부분 도시로 생활을 옮겼다.
그렇게 그는 자연스럽게
경험도 없는 숙박업을 하게 되었다.
그는 도시에 정착한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처음 도쿄라는 곳을 가게 되었고,
길을 지나다가 좌판을 정리하는
미쿠를 발견한다.
그는 미쿠를 처음 보았던 그때를 꼭,
발견이라는 단어로 말했다.
이유는 질문하지 않았지만,
보물섬에서 보물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과 같았다고 했다.
그는 긴 머리카락을
쪽 찌고 있는 미쿠가 정말 신기했다.
아무리 그가 헛기침을 뱉거나,
괜히 아스팔트 바닥을
발로 툭툭, 치거나 하는
소리를 들어도
그녀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뻔한 남자다움의
과시는 역시 역효과였다.
“이보시오, 그 생선들 모두 얼마입니까?”
역시 미쿠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생선은 두 마리 이상 팔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에
그는 말을 더듬거렸다.
“왜? 왜요?”
“하루 파는 양이
정해져 있고
다른 분들께도 드려야 합니다.”
미쿠의 절인 생선은
동네에서 꽤 인기가 있었다.
정해져 있는 양 때문에
헛걸음을 치는 사람들도
코하네의 기억 속에도 선명했다.
하지만 미쿠는 늘
아키라의 생선은
늘 크고 신선한 것으로
미리 종이에 돌돌 말아 놓곤 했었다.
마치 친절한 마호처럼 말이다.
그날, 그는 미쿠에게
자신의 평생을 바친다,라고
다짐한 약속을 지켰다.
물론 그는 두 달여 동안이나,
일도 미룬 채
거의 도쿄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만큼 미쿠에게 온갖 정성을 쏟았고,
그렇게 그들은 지금
완벽하게 함께다.
그는 켄타라는
멋진 이름을 갖고 있었고,
선이 굵고 큰 얼굴과 체격 때문인지,
그 어떤 사람이나,
미쿠까지도 겐타를 별명으로 불렀다.
이 섬에서는 집 안의 모든
액운을 물리쳐 주는
토기로 만든 사자를
시사라고 불리는데,
길을 가다가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섬에서 꽤 유명하다.
그러고 보니,
겐타가 왜 멀쩡한 이름을 두고
시사라는 사자의 이름으로
불리는지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아도
그의 모습을 보면
한눈에 이해가 된다.
마호와 코하네는
해변을 따라 걸었다.
마치 우거진 숲처럼
가로수들이 풍성하게
길을 따라 있는 곳을 지나면
드디어 그들의 집에 다다른다.
그들의 집 가는 길은
콧속에 빻은 페퍼민트 잎을
가득 집어넣은 기분이 들게 했다.
콧속으로 들어간
신선한 공기는
심장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그들의 집은
어마어마하게 길고 커다랗다.
지붕 위에는 어김없이
시사 한 마리가 턱, 하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특이한 건 담벼락을
시멘트 벽돌로
층층이 쌓아 놓은 것에 비해
대문은 따로 있지 않았다.
쉽게 말하자면 담벼락 사이를
뻥 뚫어 놓은 곳으로
들어가면 끝이다.
미쿠와 시사의
긴 머리카락은
뒷모습만 보면 남, 여가
확인되지 않는다.
근육이 튀어나온
시사의 종아리를 보고 나서야,
코하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미쿠의 하얗고 가지런한 이는
언제 보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일찍 왔구나?
미리 준비해 놓으려 했는데 말이야.”
“제가 도울게요.”
미쿠가 눈을 찡긋거린다.
“괜찮아, 코하네
가서 좀 쉬고 있으렴.”
마호가 재빨리
코하네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씻고 나올게요.”
어느새 오렌지빛의 하늘이
점점 까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2층에는 모두 다섯 개의 방이 있는데,
그중에서 코하네가
머무는 방이 가장 넓다.
계단을 올라가면
맨 끝 쪽의 위치고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바다와 모래가
펼쳐져 있다.
코하네는 자꾸
말도 안 되는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어디론가
눈을 떨구면
다시 그 상상으로 돌아간다.
밖이 제법 어두워졌다.
이젠 정말 하즈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두 발과, 두 팔이
자꾸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대야에 수돗물을 틀었다.
코하네의 상상은
끝을 모르고
수돗물에서도 바다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손을 담그고 얼굴을 씻어 내린다.
겉면에서 나온 모래의 색이
대야 위에서 반짝거렸다.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칼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코하네는 새 원피스만 걸치고
카펫 위에서 몇 번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반복하며 걸었는지 모른다.
후미코가 문을 걸어 잠글 때보다
더 불안한 감정이 든다.
이 묘하고도 불안한 감정의
정체를 읽을 수가 없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누군가 대신 선택해 준다면
그것에 따를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럴 수는 없을까, 라며
심장이 방망이질이다.
카펫 위에 스며들지 않은
물방울이 아직 맺혀 있었다.
결정했는지 코하네의
얼굴보다 더 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전화번호를 돌리는 시간이
꽤 걸리는 중이다.
하즈키는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르게 대답했다.
“코하네?”
코하네의 얼굴에는
이유 모를 죄책감이 가득 남았다.
“응, 나예요.”
한참 동안 하즈키의 숨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다.
“하즈키?”
수화기 너머 그의 곁에서
누군가 채근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겐토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어, 미안.”
“겐토 씨가 왔나 봐요.”
“응.”
하즈키는 굉장히
말을 아끼고 있었다.
“저녁은 먹었어요?”
“아직.”
하즈키를 만나고 난 후,
이렇게 어색했던 적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하네는 자신 때문에
생긴 이 불편함에
다시 또 미안해졌다.
수화기를 오랫동안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내려가 봐야 해요,
또 연락할게요.”
하즈키는 코하네의
냉정한 말투에 조금 놀랐지만
빠르게 수긍했다.
“어 그래.”
“안녕”
“응, 안녕”
코하네는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하즈키를 만나고
단 한 번의 하루도
그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원하지 않든 원하든,
불편한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에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다.
고맙게도 누군가의
발소리가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문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뚝.”
“들어가도 돼?”
“응, 마호.”
마호가 방에 들어서자,
싱그러운 비누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못 들었어?”
“응?”
“응, 저녁 먹자고.”
“어, 통화하느라.”
어쩐지 코하네의 얼굴이
자꾸만 붉어진다.
마호가 젖은 그녀의
머리칼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마호가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잡으며
코하네에게 다가갔다.
마호의 발이 그녀에게
전진할 때마다
코하네의 발은 뒤로, 뒤로 후퇴한다.
그 모습에 그가 잠시
멈춰 서서 그녀의 머리 위에
수건을 얹으며 말했다.
“말려야 해 또 감기 들어.”
마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코하네의 목소리가 커지며
그가 잡고 있던 수건을
잡아끌었다.
“그만, 그만해.”
마호는 잠시 놀라는 것 같았지만
애써 미소 지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 어 미안.”
그의 발이 후퇴하며 말했다.
“십 분 후 내려와.”
그녀는 대답도,
고개도 끄덕이지 못하고
마호를 보낸다.
코하네는 온몸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점점 마호와 눈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성과는 다르게
자꾸만 심장이 빠르게 뛰고
두 뺨은 열기로 가득해진다.
코하네는 억지로
하즈키를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리며 그의 동선을
기억해 내려 애를 썼다.
하즈키가 펄럭이던
코트의 모양까지도
생각하려 했다.
다시 미쿠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번엔 굵고 묵직한
시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류우우!”
“코, 하, 네에.”
코하네는 벌떡 일어나
카디건을 걸치고
아주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콩콩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그 짧은 거리를 뛰며
숨을 헐떡거렸다.
미쿠가 말했다.
“코하네, 여전히 계단을
뛰어다니는구나.”
코하네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힛, 늑장 부려 죄송해요.”
“죄송은 무슨, 손님이잖니?”
시사가 장작을 뒤적거릴 때마다
짙은 붉은색과
파란색의 불꽃이
따닥 거리는 소리를 내며
요란을 떨었다.
그 장단에 맞춰
돼지고기를 철판 위에
올리는 마호의 모습은
영락없는 시사의 아들 같다.
그들 세 가족은 꽤,
잘 어울린다.
미쿠는 숙박객들이
불편하지 않게
조금 늦은 저녁을 준비했다.
손님들이 드나드는 곳에서
바비큐 파티를 했다 가는
바비큐의 양은
굉장히 모자랐을 거라며
나눠주지 못한 것에
미안했는지 내내,
그 말을 되풀이한다.
코하네는 육식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장작불에 구워 먹는 고기는
젓가락이 끊이지 않는 맛이었다.
바비큐를 다 먹어 갈 무렵,
미쿠는 주방에서 큰 접시를
들고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자, 이것 좀 봐.”
마호와 코하네가
동시에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접시를 들여 보았다.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입도 함께 커다래졌다.
시사가 미쿠를 거들며 말했다.
“아주 크지?
잡기 힘든 물고기야,
한데 오늘따라, 느낌이 좋았지
으허허허허.”
시사는 긴 수염을 매만지며
거드름을 피운다.
미쿠가 마치 어린아이를
칭찬하는 듯
시사의 뒤통수를 두어 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주 귀한 생선이란다
귀한 손님들이 왔으니…
자 맛있게 먹으렴.”
미쿠의 말하는
손님이란 단어에는
귀한 아들 마호도
들어가는 모양이다.
그들은 정말 똑같은 발음으로
똑같은 억양으로 동시에 말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 모습에 미쿠는
한 번 더 두 손을 모으며
미소 짓는다.
“그래, 자 당신도 어서 들어요.”
“그래그래, 먹자고
우린 원래 생선 배는 따로 있거든?
하하하하.”
마호가 호리병에 담긴
술을 시사의 잔에
따르며 말했다.
“늘 감사합니다, 아저씨.”
꽤 오랫동안 겐타를
무언으로 반대하며,
미쿠와 연락하지 않던 마호가
이제 온전히 겐타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사랑스러운 언어에
익숙하지 않던 시사는
어울리지 않게
살이 터질 것 같은
두 볼을 부끄러워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괜한 젓가락은
생선 살을 건드려 본다.
멋쩍은 시사를 보던
코하네가 분위기를 몰아
손바닥을 마주하며 말했다.
“아줌마, 아저씨, 저도요,
감사합니다.”
코하네는 벌떡 일어나
머리카락이 흙과
마주칠 정도로
허리를 깊게 구부려 인사한다.
“이런 천국에도 와 보고,
정말 매시간이 행복해요.”
미쿠가 코하네의
머리를 쓸며 말했다.
“코하네, 나도 그렇단다,
너희들이 있으니
더욱 그래 당신도 그렇죠?”
시사는 미쿠를
정말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럼, 그럼 그럼.”
그들은 정말 시사의 말 대로
엄청난 양의 고기를
먹었음에도
생선 또한 말끔히 해치웠다.
시간 내내 정말
웃지 않은 때가 없었다.
시사는 정말 이야기꾼이다.
시사의 말로
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이야깃거리가 많다고 했다.
가장 재밌었던 이야기는
젊은 부부 한 쌍이
일주일을 머무는 동안,
단 한 번도 신발을
방 안에 신고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의아했지만,
그들은 방을 들어서기 전
문 앞 복도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다녔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후,
시사는 몇 번이나
신발을 신고 들어가라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던
외국인이었고 또한
그들이 창피할 것이다,라는
미쿠에 말에
포기했다고 한다.
젊은 부부가 있는
일주일 내내,
시사는 섬세하지도 않은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그 신발이 그렇게
눈엣가시라 말했다.
하지만 미쿠는 복도에 놓인
신발에 먼지라도 날아들까,
그 걱정에 하루에도 몇 번씩
신발이 보일 때마다,
마른 수건으로
광이 날 때까지 닦아 놓았다.
시사는 미쿠를 말하면서
어떻게 이런 사람을
만났는지 모르겠다며
하늘 위로 두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하늘에 감사할 뿐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밤공기가 시원하다고 느낄수록
장작불은 작은 모양으로 타들어 갔다.
시사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 들으며
따뜻한 날의 결혼을
모르고 있던 미쿠가 말했다.
“마호 그리고 코하네,
그리고 당신
우리 이렇게 살아 볼까?”
미쿠는 마호와 코하네의
사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마호의 엄마로서
그의 감정과
코하네에게 모든 것을 다함, 을
보면 그랬다.
그들 사이에
하즈키라는
중요한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알고 있지 못했다.
미쿠의 입장에서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있을 인연이라고
생각한 것이 당연할 것이다.
아키라의 생각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미쿠의 말을 들은
마호는 코하네보다 더
놀란 눈치다.
역시 시사는
미쿠에 말에 맞장구를 친다.
“그 시간이 더 앞당겨지면
아주 좋겠어
한 번도 잡지 못한
물고기도 잡고 말이야
허허허허허.”
“당신은, 또 물고기 타령이에요?”
“하하하.”
마호의 얼굴은
어둠에서도
상기된 표정이 드러났다.
의외로 코하네는
잔잔한 미소만 지을 뿐,
당황하지 않았다.
마호가 미쿠를 보며
이마를 약간 찌푸리며 말했다.
“어머니, 코하네는 자주 올 거예요.”
“코하네, 너도 이곳이 맘에 들지 않니?
이곳은 너와 너무 잘
어울리는 곳이야.”
코하네는 미쿠의
달콤한 말에 아니,라는
말은 할 수가 없다.
“네, 천국을 보진 못했지만
꼭, 아키라 할아버지가
나올 것만 같거든요.”
그녀의 말에
어색하게 변해버릴 뻔했던
분위기가 웃음으로 가득해진다.
“하하하하.”
더 이상 장작불은
활활 타오르지 않는다.
남은 불씨가 사라져 갈
준비를 하며 붉게 또는 검게
자리를 잡는다.
시사가 남은 맥주를
말끔히 들이켜며
미쿠의 손을 잡아끌었다.
“귀한 물고기 때문에
귀한 하루였어,
미쿠 먼저 들어가자고.”
“네 그래요!
마호, 더 먹을 것이 필요하면 알지?”
마호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네, 그럼요,
걱정 말고 쉬세요.”
코하네도 따라 인사한다.
“아저씨 아줌마,
편히 주무세요.”
“그래, 코하네.”
시사가 등을 보이며
크게 소리를 지른다.
“사랑 얘기는
조금만 하고 들어가 쉬어.”
“당신도 참,
마호 불씨 끄고 들어가는 것
잊지 말고.”
“네, 얼른 들어가세요.”
그들이 자리를 비우고
잠시 적막이 흘렀다.
장작의 불빛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마호가 흙을 장작 위에
들이붓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춥지 않아?”
덥힌 흙 속에서도
붉은빛은 살아남으려
애쓰는 모양새다.
“으응, 괜찮아.”
마호는 나무 작대기로
괜한 불구덩이에
연기를 만들며 들쑤신다.
“마호.”
“어.”
“아줌마가 한 말,
내가 불편할까,
신경 쓰고 있는 거지?”
그는 말이 없다.
“이상해, 우린 왜
나이를 먹을수록
설명해야 하는 일들이
늘어나는 걸까…
그땐 정말 네 눈만 봐도,
대답하지 않아도, 우린…
다 알았는데.”
마호는 코하네의
얼굴도 보지 않는다.
“마호.”
“응.”
“난 그냥 너라면 모든 게,
다 괜찮았는데.”
갑자기 강한 밤바람이
그들의 자리를
회오리치며 지나간다.
코하네의 머리칼과
얼굴에 타고난 장작
찌꺼기들이 날아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머리 위에 하얗게
눈이 내린 것처럼 보인다.
마호가 빠르게 다가가
다시 또 코하네의
머리칼을 털어내고 있었다.
코하네는 두 팔을
자신의 겨드랑이 속으로
집어넣으며 고개를 들자마자
보이는 그의 복숭아뼈를 보았다.
그것은 쉴 새 없이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호.”
그는 여전히 그녀를 보지 않는다,
아니 볼 수가 없다.
“응.”
“난 이제 괜찮지가 않아.”
다시 한번 강한 바람이
그들을 지나친다.
마호는 미동도 없이
코하네의 머리칼만
털어내고 있다.
“네가 힘든 건 싫은데,
그런데 내가 괜찮지가 않아.”
마호가 코하네의
두 팔을 잡으며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어둠에서도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것이 보인다.
마호는 코하네가
혼란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혼란스러움을
꽉, 잡아 주고 싶었지만
그게 또 옳은 답인지, 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마호는
코하네 보다 더 혼란스러워 보였다.
마호는 아무 말 없이
무릎을 꿇은 채,
그녀를 감싸 안았다.
귀 기울여 들어보지
않았던 그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마치 말발굽처럼 빨랐다.
“쿵쿵쿵쿵.”
코하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정확할 수가 없어,
그런데 정말…”
마호가 어렵게 말하려는
코하네의 말을 잘랐다.
“쉬이… 저기 좀 봐.”
마호가 하늘 위로
손가락을 뻗어 가리킨다.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 둘, 셋,
수도 없이 많은
별이 보일 거야
점점 많아지지.”
그들은 오랫동안
하늘 위로 고개를 들고 있었다.
마호의 말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별이
그녀의 눈 안에 가득하다.
그녀가 감탄사를 뱉는다.
“아아… 아름다워, 너무너무.”
하늘을 보고 있던 마호는
마치 별을 세고 있을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았다.
빠르게 뛰던 심장이
아예, 뛰기를 멈춘 것처럼 아팠다.
따뜻한 날에
멀리 있는
저 별들처럼
코하네는 날아갈 것이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혼란스러워하는 코하네의
날개를 부러뜨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미쿠의 말처럼
코하네와 함께
이곳에서 별이 될 때까지
함께 하고 싶다.
의도치 않게 그의 입에서
말이 툭 튀어나왔다.
“별이 될 때까지, 함께.”
코하네가 마호를 바라본다.
코하네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마호와 눈을 마주했다.
코하네는 정말
예전처럼 괜찮지가 않아 보인다.
목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뜨거운 무엇이
심장을 태우고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마호를 보지 못했던
시간 동안 느꼈던
불안한 감정과도 비슷했다.
아니, 어쩌면
마호를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감정이 아니었을까, 란
생각도 들었다.
마호가 신선한 달걀을
하나 더 코하네의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리숙하고 성급한 판단으로
시간을 달려온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코하네는 아직도
심장을 마구 찌르는 듯한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다.
마호의 짙은 눈썹이
꾸물꾸물 자꾸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손바닥이
그녀의 목덜미와 두 뺨을
쓸어내렸다.
코하네는 무슨 생각으로
눈을 감아버렸는지,
마호는 무슨 생각으로
코하네의 입술을 탐했는지
모른다.
밤바다의 물결처럼
마호는 잔잔했고 따뜻하다.
이 몸짓은 그냥 사랑이었다.
이때 코하네가
기억할 수 있었던 건,
마호의 뺨에서 흐른
바닷물을 맛보았다는 것.
마호는 이 순간 시간이 멈춰,
자신의 두 다리와
그녀의 두 다리가
흙바닥 깊숙이 뿌리를 내려
몇백 년이고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되길 바랐다.
일 년이 훌쩍 넘은 시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들은 아주 가까이서
붉게 충혈된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호의 커다란 두 손은
실수일지 모를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부르르 떨리는
마호의 손이
코하네의 얼굴 주변을
더듬거렸다.
마호가 조용히 속삭였다.
“왜, 넌 알지 못했을까,
내 이 사랑을.”
결국, 작은 코하네의
눈에서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그는 결국 날아가 버릴
그녀를 다시 꼭, 안았다.
마호는 사랑의 감정으로
코하네를 안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마호의 어깨에 기댄
코하네는 영락없는
그의 여자처럼 보였다.
까만 어둠에서
어디선가 불빛이 새어 나왔다.
미쿠는 그들이 눈치챌까,
재빨리 불을 껐다.
미쿠는 그들과 함께
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부푼 꿈을 갖고
잠이 들 수 있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같이
그들은 별이 될 때까지
함께 할 거라며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마호가 말했다.
“더, 추워질 거야.”
코하네는 어깨에 기댄 채
그를 올려 보았다.
코하네는 갑자기 어디에서
용기가 나왔는지,
그에게 짧은 입맞춤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런 자신에게
매 순간순간, 깜짝 놀라는 중이다.
“코하네?”
“어, 으응.”
“그만 들어가자.”
“응.”
코하네의 두 뺨이 다시 발그레하다.
“먼저 들어가,
난 정리 좀 할 게.”
“같이 해.”
마호가 미소 짓는
코하네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답하며
의자 위 담요를
그녀의 어깨 위에 두른다.
하얀 연기만 뿜어내는
장작 사이로
하얀 눈꽃이 하늘 위로
날아가는 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연기마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방 안은 마호가
미리 피워 놓은
전기난로 덕에 훈훈하진 않지만
그나마 냉기는 사라졌다.
한낮의 더위를 생각해 보면
이곳의 밤공기는 제법 차다.
마호는 창문의 잠금장치까지
확인한 후 이불속에서
빼꼼, 얼굴만 내밀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커튼은 열어 둘 게.”
“응?”
“불을 끄면 제법
하늘 덕에 환해.”
“고마워.”
생각을 더듬어 보면
그녀는 늘,
마호의 뒷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 어떤 모습보다 더
자주 본 기억이다.
마호는 늘 그렇게
신페이처럼
그녀를 챙기기만 했다.
‘왜, 몰랐을까.’
“잘 자.”
그는 마지막 등
하나마저 끈다.
“마호.”
방문을 연 채,
또 등을 돌리며 대답했다.
“응.”
“등이 보기 싫어.”
“어두운데?”
마호의 대답에
그녀는 갸르륵, 웃는다.
“잘 자 마호.”
희미하게 그가
미소 짓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한참 동안 어둠에서
무엇과 사투를 벌이는 중일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마호가 걷는 발소리가
이제야 들리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마호의
긴 한숨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예전처럼 마호를
곁에 두고 잠들기도
이젠 괜찮지 않다.
코하네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살아있는 것에 대한
굉장한 감정들을 느꼈다.
온몸에서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분명 살아있다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떠나고
남은 아키라까지 세상을
떠나고 난 후부터,
살아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즈키를
생각하지 않고
그녀의 삶을 말할 수는 없다.
그에게 느낀 통증은
참, 아릿했고
즐길 수 있을 만큼의 기쁨이었다.
코하네는 덜컥 겁이 난다.
다시 마호가 사라지거나,
다시 마호를 만날 수 없거나,
다시 만질 수 없거나,
수많은 상상이
그녀의 심장과 폐를
가만두지 않았다.
온몸의 세포들이
그곳에서 그녀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벌을 내리고 있었다.
결국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코하네의 몸이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괴상한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입을 틀어막고
애를 쓰는 중이지만
고통이 너무나 커
그 소리는 조금씩, 조금씩
새어 나간다.
‘왜, 왜.’
그녀는 아예
이불속으로 몸을 숨긴다.
마치 후미코가
무언가를 두려워했을 때,
숨었던 것처럼,
후미코의 어릴 적 모습처럼,
둥근 달걀처럼,
몸을 말아 쥐었다.
하루가 더 지나가면
마호를 못 볼 것이다.
마호의 약속도
이야기도 아니지만
코하네는 알고 있었다.
말아 쥔 몸을 일으켜
달려가 말하고 싶다.
‘별이 될 때까지 함께.’
고통이 조금씩 잦아들 때
파도 소리가 귀에 들어오며
파도처럼 잠이 쏟아진다.
“별이 될 때까지… 마호.”
그는 약속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