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재회
마호의 집이 다가올수록,
마치 아키라의 심부름할 때처럼,
아주머니가 달걀을 챙겨줄 때처럼
생선 굽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코하네는 마호의 불 켜진
방만 바라보며 걸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굳이 이유라고 붙이고 싶진 않았지만
그를 그냥 둬야 한다는 것쯤, 잘 알았다.
코하네는 마호를 잃는다는
생각만 해도 세상도 함께 멈춰버릴 것이라며
늘 마호에게 말했다.
정말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이란 생각으로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때, 마호의 방에서 불이 꺼진다.
초인종에 갖다 댄 손을 내리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고민에 빠진 코하네는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한참을 시멘트 바닥만 내려 보다,
결정한 듯,
다시 구둣방으로 걸음을 옮긴다.
“드르륵, 찰칵.”
코하네가 자주 듣던
마호의 라이터 켜는 소리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마호가 서 있다는 것을 느꼈다.
꾹 참았던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애써 침을 삼키며 눈물을
가슴으로 밀어 넣는 중이다.
그녀는 언제나,
마호에겐 늘 눈에 띄는 사람이다.
담배를 첫 모금 빨아 넘기자마자,
내쉴 시간도 없이 숨이 멈춰버렸다.
그녀였다.
하얀 연기를 뿜으며
담배가 계속 타들어갔다.
코하네의 발이 꼼짝할 수 없이
시멘트 바닥에 붙어 버렸다는 것을
마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머리 모양을 다듬더니
괜한 헛기침을 했다.
“크엇 컥, 코하네.”
코하네는 마호의 목소리를 듣고
안도하며 몸을 돌릴 수가 없다.
정말 강력한 접착제가
바닥에 있었던 게 분명하다.
마호는 빠르게
그녀 앞으로 걸어왔다.
코하네는 바닥으로 내내 떨구던
고개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다.
마호와 눈이 마주쳤다.
마호의 눈은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호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했다.
“왔어?”
마치 어제 보았던 것처럼 그는 말했다.
코하네는 마호를 마주하고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차가운 공기에 코하네의 코가 붉게 변했다.
“춥지? 안으로 들어갈까?”
“마호…”
코하네는 눈을 떼지 않고
마호를 보았다.
키가 큰 마호는 단단한 어깨로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리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굉장히 수척하고
단단한 어깨는 마치 땅으로
흘러내릴 것 같다.
언제 정리했을지 모를
수염은 꼭, 아키라처럼
길이가 맞지 않은 상태로
길어져 있었다.
코하네가 마호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대려 하자,
마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이런 일은 있었던 일도
아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마호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미, 미안.”
코하네가 눈물이 맺힌
눈동자를 감추며 배시시 웃었다.
건너편 구둣방을 가리키며
그녀가 말했다.
“마호, 밥… 먹으러 가자.”
머뭇거리던 마호는 꼭,
반대의 뜻을 말할 것 같았다.
코하네가 먼저 빠르게 말했다.
“밥, 먹어야 해.”
“코하네.”
코하네는 마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가자.”
움직이지 않던 발이
코하네의 손에 이끌려
걷기 시작했다.
코하네는 마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지만
도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
마호의 집에서 구둣방이
이렇게 멀게 느껴진 건 처음이다.
멈추지 말아 줬으면 한
마호의 걸음이
다시 느려지고 있었다.
“좋아 보여, 다행이야.”
코하네는 뭐가 그렇게
좋아 보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걷기만 한다.
“난, 아주 잘 지내고 있어,
바빠서 잠을 잘 시간도 부족해,
문두스는 여전하니까.”
다리 위에서 부는 바람은
쌀쌀맞게도 불친절하다.
사방으로 불어오는 바람 덕에
마호의 길어진 머리칼이
사방으로 흐트러진다.
“오랜만에 시간을 냈어,
엄마에게 가려고 해,
그곳은 이곳처럼 춥진 않겠지.”
코하네가 구둣방을
백 미터 앞에 두고 멈춰 섰다.
마호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잘 지내지만
잠에 들 시간이 없어서,
그래서 얼굴이 그런 거야?”
코하네의 생각은
모든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코하네 난 괜찮아.”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난, 괜찮, 지 안, 아
괜찮지가 않아?”
“코하네.”
“마호는 내가
괜찮아야 하는 사람이잖아?
근데 내가
괜찮지가 않아 마호.”
쌀쌀맞은 바람이 다시
마호의 머리칼을 훑고 지나갔다.
“미안해.”
“왜 늘 미안해, 왜…”
마호가 천천히
코하네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류.”
코하네는 알고 있다.
마호의 감정은
하즈키의 감정과도 같은 것,
아니 어쩌면 더 독한
고통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마호를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모든 것을 처음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알았다면
하즈키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코하네의 욕심대로
그저 딱, 한 가지
마호를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마호를 위해서라면
그것 또한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코하네는 마호의 얼굴을 보니
혼란스럽고 그를 금방이라도
잃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코하네, 난 늘 여기 있어.”
마호의 점퍼에
코하네의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묻어났다.
마호는 주머니 속에서
코하네가 만들어 준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눈물을 닦아내니,
바람이 더욱 차게 몰아쳤다.
“마호.”
코하네의 발간 볼에
손을 살짝 갖다 대며 대답한다.
“응.”
“나도 그래.”
“응.”
코하네가 마호를 따라
고개를 끄덕인다.
“얼굴이 얼었다, 들어가자.”
코하네가 코를 훌쩍거리며
또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두워진 밤거리가
그리 싫지는 않다.
겨울의 달빛은 왠지
더욱 밝게 빛나는 것 같다.
동그랗게 뜬 보름달이
시멘트 바닥에
하즈키의 그림자를 만들어 준다.
가로등에 비친 그림자보다
더 작아 보인다.
그들 덕에 하즈키는
가까운 마트를
몇 군데나 그냥 지나쳤는지 모른다.
하즈키는 생각했다.
떠난 타다요시를
만약 다시 보게 된다면
막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눈에서 놓지 않고
뚫어져라 바라볼 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코하네 그리고 마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차가운 바람이
시원할 정도로
겨드랑이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하즈키는 몇 개 남지 않은
코하네가 좋아하는
노란 레몬을 봉투에 담았다.
먼 거리를 걸어온 덕분에
값비싼 캔 맥주만
가득 담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사이 땀이 식어
시원했던 바람이
굉장히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봉투를 내려놓고
옷깃을 꼼꼼하게 여민다.
조금씩 다시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낮에 내린 거리의 눈이
보기 싫게 흙과 섞여 질척거렸다.
눈이 내리다,
보름달이 훤하다,
다시 눈이 내린다.
“날씨 한번 괴상하군.”
구둣방에 놓고 온
장갑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하즈키의 발은
미끄러운 눈밭을
빠르게 잘도 걸어간다.
두 손 가득한 짐에
문을 열 수가 없다.
이제 막 들어온 마호가
재빨리 문을 열었다.
하즈키는 덥수룩한
그의 수염과
긴 머리칼을 보고 놀란 눈치다.
“오랜만이에요, 하즈키.”
“아, 마호.”
마호가 봉투를 잡아끌었다.
하즈키는 움직이지 않은 채
마호의 긴 머리칼에
눈이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뺏기지 않으려는 듯
봉투를 손에서
놓지 않는 하즈키에게 말했다.
“줘요, 봉투.”
“아, 고맙습니다.”
하즈키의 머리 위,
어깨 위가 눈이 쌓여
한가득이다.
유키코가 한마디 건넸다.
“눈은 다 털고 들어와요,
눈 한번 요란하게 오네.”
코하네가 마침
따뜻한 차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하즈키, 이리 와요.
손이 꽁꽁 얼었어.”
코하네는 난로 옆자리를
하즈키에게 내어준다.
“응, 괜찮아.”
노아는 눈이 계속 내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구둣방 앞을 계속 쓸었다.
한 번 쓸고 난 자리는
다시 굵은 눈이 내려앉는다.
노아의 얼굴은 마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유키코가 코하네를 부른다.
“코하네.”
“네.”
“좀 도와줘.”
유키코는 코하네가
주방에만 들어가면 꼭,
큰일이 일어날 것처럼
들어오지 못하게만 했다.
오늘따라, 유키코는
코하네 이름을 자주 부르는 중이다.
유키코는 진짜 어른처럼
마호와 하즈키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응, 가요.”
노아가 들어놓은
비틀스의 음악이
그 새 한 바퀴를 돈 모양이다.
마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리 찾아온 크리스마스 같군.”
“나쁘지 않네요.”
딱딱하게 굳어 있던
손가락이 점점 붉어지며,
따뜻한 녹차가
온몸을 감싸더니
차가운 기운이 서서히
녹고 있었다.
하즈키가 말했다.
“하아, 별일 없이
잘 지냈나 물어도 돼요?”
마호도 따라 차를 후후
불어내며 말했다.
“벌써 물어 놓고…”
“하하, 대화법은 여전하네요.”
마호가 이제야
겉옷을 벗으며 대답했다.
“그것, 어디 갑니까?”
“코하네 머리 칼 많이 자랐죠?”
“머리칼이 나오는 순간,
순간 봐서 그런지 잘 모르겠군.”
하즈키는 심통처럼 보이는
마호의 말투가
그리 싫지는 않다.
오히려 그의 말소리가
반갑다는 생각만 들뿐이다.
“그럴 줄 알았지.”
마호가 짧게 피식, 거린다.
“쳇.”
하즈키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그 수염은 계속
그 자리에 있을 모양인가?”
“왜? 나름 다듬는 중인데…”
“하하하 잘 어울려서
하는 소리입니다.”
마호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할 작정이다.
“코하네가 아주 건강해 보여요,
얼굴을 막상 보고 나니
마음이 편합니다.”
마호가 건네는 말속에는
정말 수많은 뜻이 숨어있다.
하즈키에 대한 고마움과
믿음과 신뢰가 생겼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코하네를
자주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것과
자신의 감정을
이성이 이겼다는 뜻일 것이다.
코하네를 갑자기
마주했을 때의 굳은 표정은
점점 녹고 있는 얼음처럼
한층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유키코는 방금 쪄낸
콩을 소쿠리에 담아낸다.
“으앗, 뜨거워.”
“유키, 괜찮아요?”
“응 이쯤이야.”
유키코의 행동은
빠르고 정확하다.
짙은 녹색의 콩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하얀 소금을 톡톡,
소리가 날 정도로
두드린 후 흩뿌린다.
마치 따뜻한
시멘트 위에 내린
하얀 눈이 녹아 없어지는
것처럼 금방 사라져 버렸다.
코하네는 가장 짙고 통통한
콩을 손가락으로 밀어
입으로 집어넣었다.
정말이지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그런 흔한
찐 콩의 맛이 아니었다.
피곤함과 불안함이
순식간에 녹는 맛,
유키코의 손 안에서
완성된 음식은 늘 최고다.
“아, 유키 너무 맛있어요.”
유키코의 미소에
아키라의 미소가 옅게 나타났다.
“코하네, 내년이 좋겠어.”
코하네는 다시
콩 하나를 입에 털어 넣었다.
“네?”
“결혼 말이야.”
콩을 씹고 있는
모습이 잠시 멈춘다.
“노아도 나도 따뜻한
그때가 좋아.”
“아, 유키, 그럼 여기서
결혼식을요? 와 너무 기뻐요.”
코하네는 유키코의
손을 잡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너도 함께할 테니까,
정말 기쁜 일이지.”
유키코가 빠르게 눈을
깜박이며 코하네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
한참을 입안에
콩을 불린 채 생각에 잠겼다.
“더 생각할 참이야? 말할까?”
“아, 유키 난 아직.”
“그래, 아직 그러니까
내년 따뜻한 날.”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저 사람도 그럴 테고...”
유키코는 코하네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확인해 볼 생각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혹시 마호에 대한
생각 때문이야?”
의외로 코하네는 하즈키에 대한
감정은 아주 정확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대답은 아주 재빨랐다.
“아니에요.”
유키코가 바나나를
바구니에 담으며 말했다.
“그럼 된 것 같은데?”
“유키…”
“코하네, 내 이름
그만 불러 주시겠어요?”
유키코가 코하네의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자, 가져가
마호는 배고플 거야”
노랗게 잘 익은
바나나 바구니를 그녀에게 건넸다.
“네.”
코하네가 바나나 바구니를
들고 걸어오자,
하즈키와 마호가
동시에 일어나
서로 눈을 마주하고 크게 웃는다.
마호는 하즈키에게
한 손을 내밀며
가라는 시늉을 하고 앉았다.
“코하네 내게 줘요.”
바나나 바구니는
생각보다 꽤 무거웠다.
“고마워요.”
그때 노아가
시뻘겋게 얼은 얼굴로
들어오더니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봐요.”
노아는 눈을 쓸다 쓸다
포기한 모양이다.
창밖에 눈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촘촘하게, 굵게,
바람을 타며 내리고 있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그들은 모두 동시에 입을 아,
하고 눈은 동그랗게 말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주방에서 막 나온 유키코도
느지막이 입을 아, 하고
감상하는 중이다.
노아는 정말이지 비틀스의
열렬한 팬이 분명하다.
다시 또 yesterday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유키코가 따뜻하게 데운
술을 마치 차를 따를 때처럼
각각의 잔에 따라낸다.
마호는 시원한 맥주를 택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코하네는 마호를
끊임없이 바라보았다.
정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마호는 예전처럼
다정하고 따뜻했다.
마호의 따뜻한 미소를
보고 나서야, 이제야,
마음속 텅 빈 느낌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코하네는 머릿속에서
함께, 따뜻한 날의 결혼, 이란
유키코의 말이 떠나질 않는다.
그때 노아가 유키코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키, 말했어요?”
유키코가 어깨를 으쓱하며,
코하네에게 대답을 던져주었다.
코하네는 무척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노아가 하즈키와 마호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따뜻한 날, 결혼하는 거예요,
함께요.”
하즈키와 마호가 동시에
놀란 눈을 하고
코하네를 바라보았다.
잠시 시간은 멈춰버렸다.
마호의 눈썹이 찡긋하더니,
코하네를 바라보며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때 마호의 표정은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세상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따뜻한 날, 신부 잘 어울려.”
하즈키는 마호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이나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쌓지도 않은 서로의 우정이지만
그는 마호를 겐토만큼
신뢰했고 좋아했다.
노아가 서로의 잔을
채워 주며 거들었다.
“함께 축하해요!”
얼떨결에 그들은
함께 잔을 들어 올린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거세게 내리는 눈은
눈에 띄었다.
어느새 코하네의 얼굴이
정말 새 신부처럼 발개졌다.
노아가 레코드판을 뒤적이면
공기 중에 다시 또
아름다운 노래가 섞여 스며든다.
Bee Gees
-Morning of my life♬♬
노아는 음악이 나오자마자,
음악에 대한 영화 이야기를
길게 풀어놓았다.
유키코는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그에게 감탄사를 연발하며 반응한다.
이야기 도중, 가끔 불쑥,
튀어나오는 영어 발음은
정말 글처럼 고불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빈 병과 빈 캔들이
늘어나는 사이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마구 쏟아지던 눈이 멈추었다.
잠이 드는 시간이
늘 일정한 노아는
이미 유키코와 신과 함께
잠이 든 상태다.
아직 눈이 말똥말똥한
마호와 하즈키의
이야기는 꽤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유키코가 정성스럽게 담아낸 찐 콩,
마지막 하나가 소쿠리에서
홀로 남았다.
마호는 또 버릇처럼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비닐 소리를 낸다.
늘 그렇듯, 함께 하는
시간의 마지막은 꼭,
마지막 담배가 마호를 기다린다.
아키라의 의자에 앉아
잠이 든 코하네가
작은 소리에 뒤척이며 일어났다.
조용히 일어서려던
마호가 눈을 찡긋거린다.
“미안, 깨고 말았네.”
하즈키가 그의 말을 받았다.
“바라 놓고…”
“이런 또 들켰군.”
남자 둘이 마주 보며
하하거렸다.
작은 눈이 더 작아진
코하네가 담요를 박차고 일어섰다.
“마호, 같이 가.”
“응? 추워.”
“같이 가.”
그녀는 때아닌 고집이다.
“저 깊은 눈을 밟으면
넌 아마, 사라질 수도 있어.”
“으응?”
하즈키가 말했다.
“그것 참, 큰일이군 큿.”
코하네는 이미 긴 겉옷을
걸치는 중이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보다
더 큰 모자도 잊지 않는다.
절대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마호가 하즈키에게 말했다.
“같이 갑시다.”
하즈키 또한 마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겉옷을 입고 난 후다.
하즈키가 벌건 얼굴로
웃으며 으쓱거린다.
마호가 문을 열자마자
들이닥치는 바람에
고개를 숙였다.
마호는 다시 문을 닫으며 말했다.
“바람이 대단해.”
하즈키가 코하네의 모자가
날아갈까, 목도리로 칭칭 감아낸다.
그 모습을 본 마호는 이제 됐다
라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문을 열었다.
“간다.”
그들은 문을 박차고
나오자마자,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작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바람을 등 뒤로 돌아서 보지만
거세게 내렸던
쌓인 눈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정말이지 강한 태풍이
곧, 들이닥칠 것 같은 느낌이다.
코하네는 뭐가 그리도
신이 났는지
연신 깔깔대는 중이다.
“으아아악, 이히힛.”
정말 코하네가 사라진 것처럼,
그녀는 눈 속에
갇혀버린 모습이다.
마호와 하즈키는
그 모습에 동시에 하하거리며,
코하네를 두고 도망가는 척, 이다.
“그것 봐, 사라진다고 했지? 크크.”
“마호, 짓궂어
하즈키 나 좀 빼 줘요.”
정말이지 쌓인 눈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남자 둘의 걸음도 더디기만 하다.
“그럴까?”
그들의 장난에 코하네는
아예 만세를 부르며
소리를 지르며
눈 위에 두둑, 거리는
소리를 내며 철퍼덕, 엎드린다.
“으아앗.”
그들은 동시에 멈춰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고 굳어 있었다.
엎드린 코하네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얗게 작은 눈사람이 된 모습이다.
“큭, 이러면 걸을 수 있어서 엇.”
온몸에 달린 하얀 열매가
조금씩, 조금씩 떨어진다.
마호가 재빨리 다가가
눈을 털어내며 말했다.
“여전히 짓궂어 코하네.”
코하네는 연신
웃음소리만 연발한다.
몰아치는 흰 눈은
내리는 중인지,
쌓인 눈이 바람에 실려 날아드는 건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높고 깊은 눈 위를
걷느라, 입에서 쌕쌕, 거리는
소리가 잦아들 새가 없다.
마호의 집 앞에 다다르자,
바람은 더욱 강하게 불어
한 치 앞을 확인할 수
없을 지경이다.
마호가 말했다.
“안 되겠어, 들어갔다 가요.”
바람에 몸이 비틀거리는
코하네를 그들은
양쪽에서 나란히 붙잡고 있다.
하즈키가 대답할 시간 없이
마호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그들은 바람에 밀려가듯,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발을 들인다.
순간 어디선가 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아마도 바람에 커다란 무엇인가가,
눈 위로 떨어진 것이 분명하다.
마호는 좀 더 늦었다면, 이란
생각을 하니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코하네의 가늘고
기다란 눈이 커다래진다.
“허엇, 무슨 소리지?”
마호가 바람에 덜컥, 덜컥,
거리는 문을 꼼꼼하게
걸어 잠그는 중이다.
“아마, 뭔가 떨어진 거 같아.”
하즈키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아.”
그들은 잠시
맞은 눈과 바람에
넋이 나가 있는 상태다.
녹을 새 없는 눈은
겉옷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누구 하나 얼굴이
멀쩡한 사람이 없다.
발개진 얼굴로
투명한 콧물까지 흐르는 중이다.
하즈키가 칭칭 감아 놓은
코하네의 목도리 위로
맑은 콧물이 뚝, 하고 떨어진다.
코하네가 정신없는 틈을 타,
마호는 그녀를
제대로 놀려 줄 작정이다.
“으아, 콧물.”
하긴 그런 걸로 창피할
그녀가 아니다.
코하네는 고개를 숙여
그가 가리킨 방향을 내려 보았다.
“응? 어디?”
코하네의 태연한 모습에
그들은 한 번 더 웃었다.
조금씩 온몸에 땀이
맺히기 시작할 무렵,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코하네는 구둣방에서
남은 음식과 치우지 못한
빈 그릇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유키코에게 혼이 날 게 뻔하다.
어디선가 달콤한
고구마 냄새가
나무 사이로 흘러 들어온다.
코하네는 미소를 지으며
눈 한번 뜨지 않았다.
그들은 소리 없이
고구마 냄새처럼
달콤한 잠으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