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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JAZZ Oct 16. 2024

난기류 5

카페에서

 우리는 30분 정도 침대 위에서 더 빈둥댄다. 준호가 나를 껴안기도 하고, 내가 준호를 껴안기도 한다. 준호의 하얀 등에 입술을 맞춰보기도 하고, 순박하고 총기 있는 눈을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30분을 족히 채운다. 그러다가 왠지 모를 조급함이 다가온다. 브런치를 먹으러 나가기로 했는데, 지나치게 늦장을 부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누가 얼른 나가자고 재촉하는 것도 아니고, 준호가 성격이 급한 것도 아닌데, 나는 괜히 마음에 찔려 먼저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간다.

대충 씼고 나와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한다. 선크림을 먼저 바르고, 파운데이션으로 덧댄 다음, 눈썹의 빈 곳을 대강 채워준다. 그리고 그 날의 날씨와 맞는 색을 고민하다가 새파란 옷을 고른다. 나는 새파란 옷에 흰색 바지를 입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부터 나는 파랑을 좋아했다. 바다와 하늘, 우울의 색, 파랑이 가진 기묘한 매력은 끝이 없었다.

 내가 준비를 하는 도중에 준호도 밖에 나갈 채비를 하고, 우리는 같이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거울 속에 비친 서로의 얼굴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장난을 치고 내려간다. 나는 괜히 표정을 찡그려도 보고, 웃긴 표정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준호는 내가 조금만 장난을 쳐도 좋아해준다. 그는 하하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 친다.

 우리는 샌드위치가 맛있는 근처의 카페에 간다. 나는 에그마요 샌드위치, 준호는 단호박 샌드위치를 시키고, 커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통일한다. 우리는 도로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석에 나란히 앉는다. 날씨는 화사하다. 구름이 점점이 박혀있고,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다. 이 정도면 좋은 날씨라고 부르기에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진동벨이 울리자 준호가 커피와 샌드위치를 가져온다. 나는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물고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린다.

 "맛있다."

 "하하, 맛있으면 맛있는 거지, 그걸 그렇게 입 밖으로 말할 정도야??"

 "진짜야, 한 번 이거 먹어봐."

 나는 준호의 입에 에그마요 샌드위치를 장난스레 집어넣는다. 준호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입이 왕방울처럼 커진 채로 샌드위치를 열심히 씹고는, 나를 째려보고는 체할 것 같다는 뜻으로 가슴을 팡팡 친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또 웃는다. 나는 순간 깨닫는다.

 '나는 지금 행복하구나. 이 행복을 잘 간직해야겠다.'

 행복은 솜사탕처럼 쉽게 녹아버린다. 슬픔은 진흙처럼 옷에 한 번 묻으면 나에게 쭉 붙어 있는다. 나는 오랜만에 자각한 행복을 붙잡으려고 감사하는 말을 되뇌인다. 오랜 우울증 투병 생활에서 얻은 지혜이다. 일상의 여러 일들에 감사하는 습관을 가지면, 우울증 극복에 도움이 된다.

 순간 햇살이 건너편 건물의 유리창에 반사되어 내 눈을 찔러온다. 따끔한 느낌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앗'소리를 내고 만다. 준호가 어리 둥절하게 나를 쳐다보고는, 내 어깨에 팔을 둘러준다. 졸지에 창가석에 앉아 어깨동무를 한 꼴이다. 나는 약간 부끄러우면서도 지금 상황이 매우 즐겁다. 준호와 나는 전우애가 있었다. 힘든 상황을 같이 겪어냈고,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할 때도 많았지만, 우리는 결국 이겨내였다. 우리는 서로의 옆에 있어주었다.

 우리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빠르게 먹어치우고는, 창 밖을 바라보며 실 없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저기 지나가는 아주머니의 옷이 엄청나게 화려한데, 저걸 입고 학교에 가면 1억을 주겠다면 입을 것인가? 너무 큰 소음을 내며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주인장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 등이 우리의 대화 주제이다.

 한적한 도로 저 편에서 구급차가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먼저 들렸다는 말이 올바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사이렌 소리가 내 귀를 때리고, 나는 순간 움츠린다. 그리고 구급차를 보고는 안심하고 나는 계속 창밖을 바라본다. 도로가 텅 비다시피 하여 구급차는 재빠르게 움직인다.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는 구급차의 움직임이 다급해 보인다. 큰 소리와, 빠른 속도, 그리고 경각에 있을 환자까지, 하나의 장면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준호가 말한다."너는 아마 연봉으로 2억을 준다 해도 구급차 운전사는 못 할 거야."

 나는 동의하며 말한다."그렇지, 나는 1종 면허가 없으니까."

 "그 뜻이 아닌 걸 알면서도 면허를 이야기 하다니, 인정하기 싫은가 보지? 하하"

 "흥, 나도 알아. 내 성격에 구급차 운전을 하다가 내가 구급차에 실려갈 일이 생길 거라는 거 말야."

 준호는 박장대소한다. 우리 사이에 나의 우울증은 상처가 아니다, 이미 아물어 크레이터 모양이 되어버린 흉일 뿐이다. 남들은 내 흉을 보며 추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준호와 나에게 이는 영광의 상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준호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나의 흉터는 빨갛고, 건드리면 안되는 상처였다. 나는 준호에게 어제 이태원에서 있던 일들을 차근하게 얘기한다.

 "어제 민 형이 너무 취해가지고, 챙기느라 고생 좀 했어."

 "어떤 고생을 했는데? 궁금하네."

 "아니 취했는데, 피자집에서 곤히 잠들어 버린 거야, 그 형이. 나랑 한 형은 집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진짜 난감했어. "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민 형이 또 친구가 많잖아? 근처에 친구한테 연락이 닿아가지고 인수인계해주고 튀었지."

 "하하, 그래서 어제 몇시에 들어왔다고?"

 "어제 새벽 4시?, 그래도 첫 차 타고 오던 때보다 훨씬 건강하지?"

 구박받을 줄 알면서 하는 이야기이다. 그는 내 건강에 큰 신경을 쓰고 있었다.

 "으이구, 수면 패턴을 잘 맞춰야 해, 너 멘탈이랑 건강이랑 생각하면 정말 할 말은 많지만 하지 못한다, 내가."

 나는 결국 예상한 대로 구박을 듣고 말았다는 것에 왠지 모를 쾌감과 서러움을 같이 느낀다. 다른 20대들은 밤을 새서 놀아도, 음주가무를 즐겨도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순간 억울해진다. 나는 이 감정을 억누르고 화제를 전환한다.

 "근데 민 형을 그렇게 데려다주고 나니까, 또 옛날 생각 나더라."

 "우리? 다시 만났을 때?"

 "그래, 이 자식아.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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