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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JAZZ Oct 18. 2024

난기류 7

손, 한 번 더 잡아줄게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 5살 나이 차이에 대하여 마지노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나에게 진지한 호감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민을 쳐다보았다. 민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자신은 괜찮으니, 원하는 바를 이루고 오라는 뜻이었다. 민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이 기회를 마음껏 활용하기로 했다. 나도 욕심을 부리고 싶어졌다.

 "그러면 준호 씨,"

 "네? 왜요?"

 "준호 씨, 아니 준호 형, 우리 같이 2차 가는 거 어때요?"

 "푸핫, 그거 알아요? 지금 그 말을 하면서 친구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리고 있어요."

 나는 당혹스러웠다. 얼굴에 열기가 올라와 볼이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내 당황스러움을 숨기고 애교로 승부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아, 왜 그래요."

 "왜 그러긴요, 귀여워서 그렇죠. 하하."

 준호는 생각보다 호탕한 사람이었다. 나는 준호를 처음 보았을 때 그가 상당히 무뚝뚝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눈빛에 동정 말고는 아무런 빛도 비쳐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시 본 준호는 활기찼고, 당돌한 사람이었다.

 "근데 일행 있잖아요. 일행은 괜찮아요?"

 "일행이요? 네 뭐, 괜찮아요."

 민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그는 이번엔 두 손으로 엄지 척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준호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고 웃었다. 이제 합법적으로 둘만의 시간을 보내러 갈 수 있었다.

 "그러면 바는 됐고, 클럽은 어때요?"

 "클럽이요? 어디를 얘기하시는 거에요?"

 "종로 3가에 클럽 비슷한 술집이 있거든요. 가까워요."

 나는 클럽을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자고 하니 나는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괜히 까칠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비행기에서 추태를 부린 점에서 늦어버린 감이 있지만, 나는 대인배처럼 보이고 싶었다. 클럽을 처음 가는 것도 비밀로 한 채 나는 그를 따라나섰다.

 종로 3가의 어느 골목에 들어서니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케이팝 댄스 음악이었다. 유리창으로 내부를 보니, 드랙퀸이 공연중이었다. 조명이 현란했고, 드랙퀸의 화장도 현란하였다. 나는 순간 기가 죽어버렸다. 나는 드랙퀸을 실제로 처음 보았다. 그들의 엄청난 기세에 나는 어벙하게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몸을 때리는 음악 소리가 느껴졌다. 순식간에 귀가 멍멍해졌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있었고, 다들 춤을 추고, 서로 키스하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준호에게 손을 붙잡혀 클럽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클럽 중앙은 지옥철과 같이 숨 쉴 틈 하나 없었다. 취기가 올라와 그나마 버틸 만 했지만, 내 신경이 점차 곤두서는 것이 느껴졌다.

 준호는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춤을 잘 춘다기보다는 흥이 많아보이는 춤이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자연스레 붙잡고 같이 춤을 추었다. 나름의 용기를 낸 행동이었다. 그와 나는 클럽 중앙에서 여자 아이돌들의 호통 소리와 애교 소리에 맞추어 계속 스텝을 밟았다. 몇 잔의 칵테일을 마셨고, 준호의 품에 안겨 따뜻함을 즐기기도 하였다.

 지금의 나는 술을 끊었지만, 그 때의 나는 술에 나름 강한 편이었어서,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준호는 주량이 그리 많지 않은지, 말이 어눌해지고 몸의 균형을 못 맞추기 시작하였다. 자꾸만 거대한 덩치로 나에게 기대기도 하였고, 의미 없어 보이는 말을 웅얼거리기도 하였다. 나는 슬슬 나가보아야 할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옆에서 드랙퀸 한 명이 우리에게 "어머 벌써 나가? 자기?"하며 우리에게 친한 척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그 때 기력이 쭉 빠져있어서 그 혹은 그녀에게 대답하지도 못하고 나와버렸다.

 우리는 손을 잡고 골목을 나가 종로 3가 대로변으로 나섰다. 새벽 3시쯤이었다. 준호는 만취하여 균형을 자꾸만 잃었고, 나는 그런 그를 계속 챙겨가며 온전하지 못한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순식간에 음악소리가 없어지니 세상이 고요하게 느껴졌다. 물론 지나가는 술집마다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클럽의 폭력적인 소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나는 그를 부축하여 골목을 빙빙 돌아서 대로변에 도착했다. 평소에 공간 감각이 별로 없는 탓이었다. 새벽의 종로에서는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았다. 나는 준호에게 그의 주소를 묻고는 카카오택시를 여러번 불러보았다. 우선 만취한 그를 택시에 태워보내고 나서 나는 N버스를 타고 집에갈 심산이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택시가 잡혔다. 3분 뒤에 택시가 우리 앞에 나타날 예정이었다.

 나는 3분 동안 웅얼거리는 그와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었다. 밤공기가 차다고, 혹은 오늘 즐거웠다고 얘기했던 것만 같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번뜩 내가 전화번호 교환을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번호를 몰랐다. 지금 택시를 그를 택시에 태우면 다시 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 택시가 얼른 다가왔다. 나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 그에게 번호를 찍으라며 들이대었다. 그는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뭘 망설이는 거지?' 나는 두려워졌다. 그는 다시 나를 보지 않을 생각일지도 몰랐다. 그저 하루 흥미로운 동행이었을 뿐, 자신의 인생에 개입하게 두지 않을지도 모른다. 잠시 손을 잡아주었던 것으로 내가 너무 크게 착각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계속해서 내 휴대폰을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거나하게 취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진심으로 불안해졌다.

 "번호 안 줄래."

 그는 술에 취하더니 존댓말을 버렸고, 과감해지기도 했다. 술에 취하기 전의 그였다면 거절하더라도 부드러운 말로 거절하였을 텐데, 나는 속이 상했다. 주제 파악의 시간이었다. 내 매력이 그에게는 별로 큰 감흥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는 없었다.

 왼쪽을 바라보니, 택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에 적힌 차량 번호와 다가오는 택시의 번호판을 비교해보았다. 9977, 이 택시가 맞았다. 나는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를 이제 보내줘야 했다. 그는 미소지었다.

 "번호 줄까?"

 "아니에요, 됐어요."

 "우리 집으로 갈래?"

 취기가 다 날아가버렸다. 사람 마음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빈정이 조금 상했다. 번호를 준다는 것인지 아닌지, 집에 가서 그저 하룻밤만 즐기고 말겠다는 것인지, 그의 의도가 무엇이든 나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이었다.

 택시가 우리 앞에 와서 섰다. 나는 그를 보내줄 작정이었다. 그의 집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나는 택시 뒷좌석 문을 열고 그를 집어넣었다. 덩치가 커서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뒷좌석에 타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한 마디를 했다. 나는 그 한 마디에 마음이 움직여 그의 집에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손, 한 번 더 잡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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