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ELJAZZ Oct 18. 2024

난기류 9

정신과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내 안에 있는 것은 공허였다. 내 동반자, 나의 삶을 조종하는 운전수, 모두 다 공허였다. 나는 공허를 자각했었다. 청록색 티셔츠에 흰 가운을 입은 정신과 의사, '김'과 대화하고 난 후였다.
 "동호 씨는 우울하다기보다는 공허한 느낌을 계속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일상 생활 중에서 느끼는 공허감이 너무 커서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시는 것 같고요. 우리는 앞으로 이 공허에 대해 계속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목표 설정과 함께 상담 세션이 끝나버렸다.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주지했다. 내 무기력의 원천은 공허였다. 내 기운은 모두 내 안의 공동이 빨아먹은 후였다.
 얼마 전 대학 친구들과 한강에 갔다. 보드게임 몇몇을 골라서, 주사위를 굴리고 벌칙으로 인디언 밥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무언가를 참고 있었다. 나는 재미를 느꼈고, 즐거움도 느꼈지만, 그 배경에는 항상 내 귀에 들리는 소음, '그만하고 싶다.'라는 말이 계속 되고 있었다.
 무엇을 그만하고 싶은 것인가? 나조차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나는 그저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보드게임이든, 친구들의 얼굴이든, 나에게는 진정한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나는 항상 참고 있었다.
 나는 항상 지루함을 참고 있었다. 나는 세상 모든 것이 재미없었다. 게임을 해도, 술자리에 가도, 항상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참아가며 자리를 지켰다. 다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내 인생은 미풍에도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지루함을 참아가며,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었다. 그들을 웃기기 위해 재밌는 농담을 하였고, 같이 잘 지내기 위해 나의 소망은 접어두었다.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았다.
 집에 있으면 밖에 나가고 싶었다. 지루하기 때문이었다. 밖에 나가면 집에 가고 싶었다. 밖도 마찬가지로 지루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빙빙 돌아가는 내 생각의 속도와 맞추어 주지 않는 세상이 야속했다.
 세상은 너무 느리게 돌아갔고, 내 성질머리는 급했다. 세상 사람들은 천천히, 여유 있게 행동했다. 나는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어차피 의미 없는 행동인데, 어차피 똑같은 일들인데, 그들은 즐기면서, 혹은 여유롭게 인생을 살아갔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봄이 아름답다고 하여도 나는 봄을 느끼지 못했다. 겨울이 매서우면 나는 그대로 몸이 떨려오는 추위를 느꼈다. 나는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하수구처럼, 나는 썩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공허 때문이었다. 나는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누구도, 심지어 준호마저도, 나의 의미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나와 같이 밥을 먹어주는 친구와 나에게 안부 전화를 걸어주는 부모님과 항상 내 옆에서 같이 잠드는 준호까지, 나는 그들 모두를 내버려두고 나아가고 싶었다.
 나아간다는 것은 결국 종언을 향해 간다는 의미였다. 나는 외줄 위에서 발을 빠르게 움직였고, 아마도 끝에 다다르면 추락할 것이었다. 날개가 꺾여버린 새처럼, 땅으로 곤두박질할 것이다.
 나는 내 공허의 원천을 모른다. 그저 기억나는 시절부터 내 몸과 마음에 진득하니 붙어잇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공허는 모래주머니처럼 내 발목을 붙잡고, 내가 가는 곳마다 나를 방해했다. 나는 공허를 죽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공허를 죽이려면 숙주를 죽여야 했다. 내가 그의 영양분이 되는 숙주였다.
 
 김 선생님은 나와 일주일에 한 번, 40분의 상담 세션을 진행했다. 나는 그와 상담하며 내 마음의 작동원리를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고, 내 속의 이야기를 뱉어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의 질긴 정신병을 치료하는 길은 멀었다. 나는 상담이 끝나고 나면, 광화문에서 파란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버스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마음은 마치 바다같았다. 때론 잠잠하지만, 바람이 조금만 불어와도 파도가 생기고, 태풍이 오면 해일이 몰려왔다. 나는 내 마음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애인의 심장박동을 느끼듯, 뱀이 미끄러지며 나아가는 움직임을 느끼듯 나는 내 마음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일렁이는 마음을 그저 바라보고 있으면, 금방 집에 도착했다.
 준호는 정신과 상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김치찌개가 끓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저녁밥을 해줄 뿐이었다.
 나는 그가 해주는 김치찌개를 좋아했다. 단백질이 많이 들어간 두부를 쓴 것과, 자극적이지 않도록 조절한 맵기를 좋아했다. 잡곡밥과 계란, 생선과 김치찌개를 같이 상에 차려두면, 든든한 저녁상이 완성되었다. 나는 그가 차린 식탁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 마음 속 헛헛함을 그가 껴안아주는 기분이었다.
 나는 금세 평소의 나로 돌아갔다. 공허는 내 마음 속으로만, 표정은 웃는 얼굴로 돌아갔다. 나는 그와 같이 먹방을 보며 하하호호 웃었고, 밥에 찌개를 떠먹으며 맛있다는 말을 연달아 했다.
 "잘 먹는 걸 보니 아주 뿌듯하구만."
 ''형이 해준 건 항상 맛있지. 짱이야.''
 나는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려 그에게 최고라는 뜻을 보여주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담아주었다. 나는 울고 싶었다. 김치찌개가 맛있어서, 그가 너무 착해서, 그리고 그가 내 상한 마음을 알고 있어서, 나는 울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웃어제꼈다. 살아오면서 배운 지혜였다.
 나는 그에게 나의 공허를 감추고, 내 깊은 슬픔을 감추고 나아갔다. 그와 같이 누워 지나온 일상들을 이야기했다. 오늘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험상궂은 날씨,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 우리는 세상을 뒷담화하였다. 세상은 우리를 저버렸기에, 세상에 우리가 져 버렸기에, 우리는 두 외톨이로서 같이 살아갈 따름이었다.
 그와 나는 같이 김치찌개에 밥을 먹는 사이였고, 같이 카페에 가서 여러 의문을 해소하는 사이였고, 같이 길거리를 걸어다니면서 아무 이야기나 주고 받는 사이였다. 나는 그와 있으면 편안하다고 느꼈다. 준호의 큰 덩치가, 마치 나를 감싸주기 위해 있는 것처럼 듬직했다.
 그와 일상을 보내다가 가끔 혼자가 되면 나는 외로움을 자각했다. 나는 내 깊은 어둠을 밖으로 꺼내 바닥에 깔아두었다. 검은색 방바닥과 검은색 벽은 나의 친구였다. 나는 습기가 가득한 날 널어놓은 빨래처럼 퀘퀘했고, 구석에서부터 물들어갔다. 준호가 없기에, 내가 이토록 별 볼 일 없는 인간이기에. 내 삶의 의미는 무로 시작해서 무로 끝났고, 그나마 나를 부축해주고 있는 것은 너였기 때문에, 나는 숨 쉴 수라도 있었다.
 이와 같은 나날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네가 친구를 만나러 가면,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러 가면, 난 예전의 나로 돌아갔다. 내 인생은 이어졌고, 나만의 시간으로 분절되었다.
 나는 나에 대해 알지 못했고, 네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짐작하지 못하였다. 아마 불쌍함, 안쓰러움, 그리고 희망하기로는 사랑이 있기를 바랐다. 애정 결핍이었다.
 나는 시간을 때우려 사람들을 만났다. 센스를 발휘해 농담을 하였고,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술집과 클럽을 뺀질나게 들낙거렸다. 사람들은 나를 좋아해주었고, 나는 나를 소모해가며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두었다.
 양초에 불을 붙이면 촛농이 흘러내리듯, 나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면 급격하게 힘들어졌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여러 사람들의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내 온 신경을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나를 좋아하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미움받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였고, 체득하였다.















이전 08화 난기류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