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는 이런 나를 아파했다. 준호는 가끔 나의 손을 잡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갈색 눈을 바라보며 그의 동공에 비친 나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는 나에게 자주 말해주었다. "너는 훌륭한 면들이 많아.""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네가 최고야."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말들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좋은 사람이 맞았고, 귀여움 받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을 비추는 투명한 거울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었다. 다만 나는 나를 몰랐다. 사랑하기에는 지나치게 깊고, 시끄러운 침묵. 나는 이런 모순을 껴안고 잠을 잤고, 준호는 나를 껴안고 잠을 잤다.
나는 그래도 준호에게 자주 말했다. "나 그래도 많이 나아졌어."준호는 긍정하면서도, 의아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준호는 나에게 예시를 들어달라고 했다. 그의 말버릇이었다. 그는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어 예시를 중요시했다. 나는 예시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이상하다. 나 똑똑하지 않았나?' 나는 나의 지능을 믿었다. 그렇지만 예시를 들어달라는 그의 요청 앞에서 나의 작은 머리는 아무것도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잊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모아온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습관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나의 불행을 말하는 동안, 불행의 사례들은 싸그리 잊혔구나. 나는 느낌만 알고, 요점만 알고, 내 진상은 모르는구나. 나는 개탄스러웠다. 그에게 내가 어떻게 나아졌고, 얼마나 자신감이 차올랐는지 말하고 싶었다. 내 머릿속을 맴도는 말들은 반향될 뿐이었다.
나는 그래도 그에게 어떻게든 대답해보려고 애를 썼다. 예를 들면 "그래도 나는 이제 형이 나를 처음 봤을 때보다 용기있어." 혹은 "많이 외향적으로 변했고, 자기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되었어." 이런 말들에 이은 네 반응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나아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흔들렸다. 바람이 불면 나는 순식간에 뿌리부터 흔들렸다. 아직은 발전이 필요했다.
"나는 네가 더 나아지면 좋겠어."준호는 이렇게 말하며 나를 부둥켜안았다. 나는 그 말에 동감하면서도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정신과에 처음 간 이유는 준호 때문이었다. 준호는 나의 공허를 처음 발견하고 나서 당황했었다. 나는 가끔 이유없는 무기력에 빠져들었으며, 가끔 침울한 채로 침대 위에 누워 그저 시간을 때웠다.
그럴 적의 나는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죽고 싶어했다. 그렇지만 나는 죽지 못했다. 무기력이 찾아오면 이번에야말로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자살하지 않으면 언제 자살할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럴 기운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궁극적으로는 삶을, 그리고 짧게는 우울증 삽화를 그만두고 싶었다. 그 때는 내가 우울증이 있는지도 몰랐었다. 남들도 나처럼 공허를 안고 살아가는 줄 알았고, 남들도 다 죽지 못해 사는 줄로만 알았다.
나는 건강이 좋지 못했다. 비문증과 비주얼 스노우, 부정맥과 이명, 체지방과 무기력, 점점 악화되는 아토피 등 새로운 증상들이 매번 추가되었다. 나는 대학병원을 본가 들리듯 들리며 나의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전전했지만 누구도 나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말해주지 못했다.
나는 이렇게 가다간 한 25살 쯤엔 내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남은 건강은 점차 줄고 있고, 이 기세면 병마가 나의 몸을 다 먹어치우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3살 쯤이었다. 준호와 사귄지 1년 쯤 되었었다.
준호는 그런 나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어쩌면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불가해한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신기해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무기력을 가끔 그의 소매에 묻혔다. 같이 카페에 가서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다며 집에 돌아가고, 집에서 침울해 있으면 그는 나에게 산책을 권했다.
그는 그저 말로만 끝내지는 않았다. 평소에 지식욕이 많은 준호의 특성, 문제를 보면 해결하고야 마는 그의 특성이 만나 나를 치료하기 위해 애를 쓰게 되었다. 준호는 영양제 유튜브를 엄청나게 보기 시작했다. 비타민, 오메가 3, 유산균 등 몸에 좋다는 것을 인터넷 상으로 교차 검증해가며 나에게 최고의 영양제 조합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의 영양제를 먹었고, 그가 추천하는 병원을 가고, 그가 바라는 운동을 했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한약을 먹으며 건강을 겨우 붙들고 있던 나는, 기능의학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준호가 지시해준 방향이었다.
기능의학은 대증적 치료에 치중한 현대의학을 보완하기 위해 생긴 의학이었다. 아토피가 너무 심해져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에게 준호는 원인 치료를 권했고, 이는 기능 의학으로 가는 길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장 건강, 자세,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내 피검사 결과는 회색지대에서 최악이었고, 이는 장 내 미생물을 관리하지 못하고, 자세를 삐뚤게 살았던 탓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의 치료 방법은 자율신경계를 복구시키는 방향이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장 치료와 도수 치료에 들어갔다. 우선 장에 작용하는 항생제로 장 내 균을 밀어내 버렸으며, 수액과 천연 허브 항생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식조절로 장을 건강하게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먹을 수 있던 것은 채소, 생선, 잡곡밥 등이었고, 먹지 못하는 것은 술, 우유, 계란, 매운 음식, 기름진 음식이었다. 이들을 먹는 이상 나에게 장 건강은 없다고 하였다. 그렇게 6개월 정도 포케나 샐러드를 먹으며 나는 버텼다. 나는 살도 쭉 빠지고, 장도 많이 건강해져 그의 장 건강 이론을 믿게 되었다.
그에 더불어 나는 도수치료를 받았다. 삐뚫어진 척추와 목에 눌려버린 자율신경을 다시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스트레칭을 배웠으며, 준호와 도수치료사의 권유에 요가도 시작하였다. 점차 모든 것이 나아질 것으로만 생각했다.
꽤나 많은 것들이 좋아지고는 있었다. 붉게 발진이 올라오던 피부가 갈색으로 진정되었고, 엑스레이로 찍은 목의 모양은 c커브를 그리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변화였다.
그렇지만 나는 우울했다. 맑은 하늘에도 구름 한 점이 있다는 것이 슬펐다. 알 수 없는 무기력이 나의 발목을 붙잡고 나아가지 못하도록 애쓰고 있었다. 나는 붙잡혀 있었고,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좋아지고 있었지만, 낫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인정 없이는 인식이 없고, 인식하지 않으면 회복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 자신을 동정하였으며, 나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으며, 나는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나아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