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족 15편) 엄마와 누나와의 대화 2편

by Aroana

가족 x편’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어쩌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가정사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브런치를 지인에게 오픈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의 멘탈을 뒤흔들었던 가정사를 단지 팩트 중심으로 건조하게만 나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주관적 입장에서 말해보려 한다.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는 글이라는 것을 미리 양해 구한다.


“대익아, 그냥 솔직히 말할게. 너를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창피해서 그래. 우리는 너를 응원해. 네가 하는 거니까 뭐 알아서 잘하겠지. 그런데 그런 너를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포장해야 돼? 내년이면 서른두 살인데 변변한 직장 하나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고작 책 한 권 썼다고 어떻게 이야기를 해. 그게 대수야? 창피해서 말을 못 하겠어. 요새도 가끔씩 동생 분은 어떻게 지내요라고 나에게 물어보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영어독서 관련해서 책을 썼는데 지금은 야간에 그냥 알바하고 있어요 라고는 내 입에서 차마 떨어지지 않더라. 그나마 지금 네가 회사 들어갔으니까 ‘직장인’ 이라고 포장이라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또 나오면 우리가 뭐가 되니? 매형들한테 물어봐. 다 지금 네 앞날만 걱정하고 있어. 그러니까 제발 정신 좀 차려라!

가족들이 나를 어떻게 소개할지 몰라 창피해한다는 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엄마의 표정 역시 누나가 본인이 하고 싶었던 말을 속 시원하게 해준 것에 대해 후련해하는 것 같았다.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 우리 가족에게 창피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이 주제를 대화를 통해 풀어갈 수 있다고 여겼던 내가 처음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이런 이야기는 가족과 상의하면 안 되는 짓이었다. 주관이 뚜렷하다면 누가 뭐라 해도 그냥 앞으로만 나가야 했다. 꿈에 대한 지지와 호소를 언급하는 것은 그 대상이 가족이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대익아. 우리가 열심히 설득했는데도 네가 넘어오지 않는 것처럼, 너 역시 우리를 설득해서 응원해달라고 이야기하지 마. 속으로는 누구나 응원할 수 있지. 그런데 차마 입 밖으로 내뱉으면서까지 잘하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어. 지금처럼 잔소리는 계속될 거고 가족들은 여전히 너를 걱정할거야.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냥 해. 대신 이 정도의 스트레스는 그냥 네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 겨우 이 정도도 못 버티는 거야? 우리는 이 정도 수준의 잔소리는 해야 돼. 왜냐고? 가족이니까. 네가 생판 남이었으면 그냥 빈말로라도 응원하면 돼. 그런데 가족이니까 안 되는 거야. 그냥 받아들여. 이 정도는 견뎌가면서 네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

성공만 하면 이 모든 게 부질없다는 누나의 말에 동기부여가 되긴 했다. 결국 내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허울뿐인 말이 아니라 결과물로 나타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성공을 하려면 과정을 거쳐야 되고 그걸 겪는 동안만이라도 내버려둘 수 없냐고 항변해 보았다. 다시 한번 거친 팩트폭행이 들어왔다. 이 정도도 이해 못 해줄까라는 내 아쉬움은 어느새 이 정도까지 너를 이해해 주어야 되는 거냐로 바뀌었다.


이날 주고받았던 이야기는 참 많은 의미를 남긴 대화였다. 가족의 진심을 알았고 또한 반드시 일어서고야 말겠다는 강한 전의를 다지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동기부여가 이런 게 아니었다는 점에서는 많이 슬펐다. 독설로 가득 찬 동기부여는 삶을 결코 희망적으로 만들지 못한다고 생각해서였다.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열의는 결국 사람을 냉정해지고 이기적으로 만들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응원받는 삶 속에서, 적어도 내 꿈을 지켜봐 줄 수 있는 가족들 앞에서 원하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가족 유대관계가 남달랐기에 조금 더 특별한 기대를 가져보았고 대화도 해보았지만, 결국 우리 가족 역시 평범했다. 책을 냈음에도 가족에게서는 인정받지 못했고 나는 고작 1회의 강연만 가져본 아무것도 아닌 작가였다.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했던 엄마에게서는 특히 더 진한 아쉬움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를 존경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혼 후 남겨진 상처에도 서울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엄마의 고생담은 솔직히 나의 그것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오죽했으면 엄마의 인생사를 책으로 엮어볼 생각까지 했었을까? 엄마 덕분에 나 또한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시대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빚 갚느라 등골이 흰 다고 투정을 부려도 뿌듯했고 변변찮은 직업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더 이상 가족에게 비전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앞으로도 없다고 다짐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꾸준한 잔소리와 지속적인 멸시 속에 그냥 묵묵히 내 길을 걷는 것이다.


회사는 곧 관두겠지만 그래도 인생은 악착같이 살 것이다. 반드시 결과물로 보답해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할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의무는 철저히 지켜가며 계속해서 내 안의 창의적인 것들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keyword
이전 27화(가족 14편) 엄마와 누나와의 대화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