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회사에서 퇴사하며 갑작스러운 공백기를 맞게 되었다. 기획했던 엄마의 에세이도 이제 물 건너갔고 나는 소설이나 써보자는 생각에 한동안 서점에 출퇴근하며 글을 썼다. 그리고 얼마 후 깨달았다.
“아..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
몇 주간의 짧은 방황 후 곧바로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나로서는 이 공백기가 무의미했다. 상환액을 올리겠다고 큰소리 친 이상 내 말에 책임을 져야 했다. 못해도 100만 원은 갚아야 하는 데 단순 알바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무조건 실 수령 200만 원은 넘어야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정규직 일자리의 급여를 사수해야 생활이 안정되고 글쓰기는 그다음이었다. 야속한 현실에 답답함이 밀려왔지만 어떡하랴. 이게 내가 선택한 삶인데... 4대 보험까지 감안하면 나에게 주어진 업무가 결코 만만하진 않을 것이다. 도망쳐 나왔을 땐 몰랐는데 회사 밖에 나와 보니 이제야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결국 나는 둘 중 하나에 대해서는 상당한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했다.
다시 이력서를 뿌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필터를 걸렀다. 조금이라도 내적 성장이 기대되는 회사에 지원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회사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이제 필수였다. 취미는 결코 생존 활동에 우선할 수 없었다. 나는 어차피 취업은 될 것이라는 (이상한) 확신을 가지며 기왕 들어갈 회사라면 내가 자신 있어 하는 직무에만 이력서를 넣었다. (그럼에도 출퇴근 거리는 고려했다!)
곧 두 곳의 회사로부터 면접 제안이 들어왔다. 하나는 회계직무의 인력파견 업체였고 또 한 곳은 자체 신문을 발간하는 보험 전문지 기자였다. 면접에서 인력파견 업체는 최종 합격을 통보받았고 기자직은 1차 면접만 통과했다. 급여나 업무 환경을 비교했을 때 인력파견 업체가 훨씬 조건이 좋았다. 연봉 자체가 기자보다 월등히 높았으며 회사도 집에서 가까웠다. 반면 기자는 직무가 주는 무게감 자체가 달랐고 회사에서도 워라밸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 말해 주었다. 장점이라고는 사무실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정도? 그것 말고는 외적 조건으로 딱히 기대될 것이 없었다.
보통은 최종합격을 먼저 통보해 준 곳에 미련 없이 가는 나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죄송하다고 이야기하고 기자직에 도전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차피 고생할 직무라면 매력적인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 평생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아볼 기회가 없었을뿐더러 보험 분야라면 판매 자격증도 가졌을 만큼 내 나름대로의 경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글 쓰는 것이 업인 만큼 내 글을 못 쓴다 한 들 글쓰기에 대한 훈련은 될 것 같았다. 사실 그 요인이 가장 컸다. 내가 열정을 불태워도 왠지 이 직무는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2차 면접에서도 합격한 나는 일주일 뒤 그렇게 기자가 되었다. 10월 말 캐주얼 바 퇴사 및 의류회사 물류팀 입사 → 11월 말 물류팀 퇴사 → 12월 말에 다시 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글을 쓰고 싶어 안달한 놈이 백수가 되자 곧바로 한계에 부딪혀 이번에는 가장 힘든 직무로 돌아왔단 점이다. 취업하면서 나란 놈도 참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가족과 치열한 토론을 거치며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떵떵거렸는데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는가. 그래도 다행인 건 그렇게도 누리고 싶었던 (소위 말해) 괜찮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했단 점이다. 내 나이대가 주는 현실적인 불안함에 대한 고민이 컸는데 이번 기회에 어쨌든 해소되었다. 이제 나는 다시 한번 버티기만 하면 된다. 이왕 기자가 된 거, 정말 최선을 다해 버텨보며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