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제대로 적응도 해보기도 전에 이미 나는 몇 번의 카운터펀치를 맞은 상태였다. 사람도 잃고 자존심도 잃고 남은 것은 오직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뿐이었다. 결과물로 보여주는 것만이 내가 사회로부터 겪은 망상의 부작용을 해소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의류회사에 들어갔을 때 내가 계획했던 인생의 최우선 목표는 ‘기반마련’이었다. 그렇게도 내가 제도권(4대보험, 정규직)에 들어오려고 했던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끝내야 할 의무’를 마치기 위해서였다. 내 집을 장만한다는 건 곧 이를 의미했다. 지금의 경제 상황에서 그동안 배워왔던 모든 지식을 동원했을 때, 나는 지금 시기가 마침내 나에게도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큰 베팅에 뛰어들게 되었다.
서울에서 집을 산다는 건 나에게 일종의 도박과 같았다. 애초에 나는 주식이나 기업 분석에 관심이 많았지, 부동산에 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아주 약간의 기초 용어만 알았을 뿐, 재테크에 관해서 부동산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무엇 보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었다. 엄마가 몇 년 전에 구매한 아파트의 가격을 뻔히 알고 있는데 미쳐버리게 올라버린 지금의 시세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물며 내가 이럴진대,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처음에 내가 부동산에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모두 다 부정적이었다. 이미 크게 올라버린 부동산에(특히 아파트에) 접근하려 하는 내 마인드 자체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내가 조금은 아쉬워하며 바라봤던 현상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대출이 안 나올 거라며 처음부터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이들의 태도였다.
“네가 무슨 집을 산다고..”
“취업했다고 바로 대출 안 나올걸?”
“그 월급으론 대출도 안 나와!”
“최소 1년은 다니고 나서야 대출이 가능해”
사실 처음에는 나도 이들의 말을 믿고 대출이 적게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대체 은행이 무엇을 믿고 나에게 큰 자금을 빌려준단 말인가. 태어나 한 번도 은행에서 돈을 빌려 본 적이 없는데 억 단위가 넘어가는 큰돈을 빌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에게 많은 압박과 긴장감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다들 담보에 신용대출까지 영끌을 해서 부동산을 산다는 데 나에게 그만한 신용이 있을 리는 만무하고 더군다나 이제 나는 갓 취업한 직장인이었다. 대단한 연봉도 아닌,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귀여운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었다. 하물며 남들 다 있는 흔한 주택 청약도 갖지 못한 채 자란 내가 부동산을 사겠다 하니, 다들 정신 나간 소리라고 하는 것도 이해는 할 만 했다.
그러나 나도 바보는 아니었다. 경제에 관해 아니, 적어도 현실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보다 세상을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나였다. 최후의 재테크 수단으로 부동산을 택했던 이유는 그것이 내가 가진 가장 최선의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먼저 담보대출은 금융권으로부터 초장기로 안정적인 자금을 빌려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경제가 좋을 때 신용을 풀 베팅으로 당겨 주식을 사는 것과 부동산을 구매하는 것은 차익만 실현하는 조건으로 봤을 때 사실상 같은 원리다. 다만 여기서 주식과 부동산은 몇 가지 큰 차이점을 보이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베팅을 할 때 부동산은 주식과는 차원이 다른 레버리지를 이용해 ‘자산’을 선점할 수 있다. 부채를 내가 감당할 능력만 된다면 자산이 오르는 시기에 부동산은 (수익률이 아닌 금액에서) 주식을 압도한다. 물론 부채의 이자는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담보대출은 우리에게 초장기로 대여해주고 금리를 고정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쉽게 말해 우리 스스로 상환 능력을 꽤 현실성 있게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 부동산은 실물 가치라는 가장 큰 매력이 있기에 자산이 하락해도 우리는 이용 가치를 누릴 수 있다. 중·단기 매매에 관심이 없다면 그냥 눌러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부동산을 구매하는 데 망설이는 사람들의 심리가 대부분 처음 받아보는 큰 빚을 지게 되었을 때의 ‘부담감’에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부담감을 애써 외면하고자 미루고 미뤄 결국 끄트머리에 가서야 막차를 타거나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대출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대출을 받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진짜로 이것을 실행에 옮기겠다는 ‘의지’였다. 고민과 실천의 간극을 메꾸는 것은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지금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음을 여기고 있는 가이다.
캐주얼 바에서부터 ‘사회적 지위’를 가지겠다는 명분하에 이런 생각을 가졌을 때, 사람들은 과연 내가 했던 지난한 고민의 과정을 알기는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