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기억될 만한 150만원의 빚

by Aroana

대학교 입학 후 3학년 때 까지는 기숙사에 착실히 붙어살았다. 그러다 애널리스트라는 인생 첫 직업을 목표로 삼은 이후 나는 자취를 택하게 되었다. 공부를 위해 휴학을 선택하면 기숙사에서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참에 자취도 해볼 겸 호기로운 마음으로 기숙사 밖 정글로 뛰어 들었다.


우리 대학 근처의 원룸 시세는 대략 2~30만원(2014년)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나는 이것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이 때 우연히 길에서 본 전봇대에 자취방 소개문구를 보게 되었다.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12만원 방이 있다고 홍보를 한 것이다. 나는 누가 볼새랴 잽싸게 전단지를 낚아 채고는 다음 날 전화하여 방 구하기에 나섰다.


처음에 부동산 사장님은 이런 저런 좋은 방을 소개하면서도 그래도 이왕 지내는 거 쾌적한 상태가 좋지 않겠냐고 계속 나를 설득했다. 나는 솔직히 흔들렸지만 끝내는 모른 척 원하는 방의 컨디션을 고수했다. 그리하여 본 12만원 짜리 방에서 나는 그만 기겁을 하고 말았다. 여긴 도저히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보인 그곳에는 냉장고, 책상 등 어떠한 옵션도 딸려 있지 않은 그냥 순수 '룸'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죄송합니다 하고 포기를 하려는데 사장님은 그럼 18만원 짜리 방이 있다며 그걸 한 번 보여주겠다고 했다. 나는 고민을 하다 그냥 구경만이라도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간 곳은 의외로 학교에서도 가까웠고(도서관을 다녀야 했기에) 옥탑 구조라 독립성도 확보되는 괜찮은 집이었다. 책상과 옷장, 침대, 냉장고, 가스레인지 등 시설만 구렸지 갖출 것은 다 있었다. 충분히 탐낼 만한 조건이었으나 문제는 가격, 나에게는 100만원의 보증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았다.


사실 방을 구하기에 앞서 나는 당시 돈이 바닥 난 상태였다. 애널리스트가 되기 위한 자격증 수험 비용에 돈을 다 썼기 때문이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던 200만원을 이미 여기에 꼬라 박은 뒤로 자취는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이 집을 보게 된 것이고 지금 이렇게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내가 보증금으로 난색을 보이자 사장님은 그럼 주인과 통화를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보증금과 월세를 깎을 수 있는 기적이 발생했다. 보증금을 무려 50만원, 월세를 3만원이나 인하해준 것이다. 나는 이 보다 더 좋은 조건은 가질 수 없다는 판단하에 덜컥 계약을 하겠다고 지르고는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 했다.


처음으로 누나에게 150만원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애초에 돈 거래는 절대 하지 않는 나였지만 나로서는 지금의 결정이 해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지였다. 부모님에게는 차마 손을 벌릴 수 없었다. 서로는 각자의 인생을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중이여서 나까지 부담을 주면 안 되었다. 그렇게 큰 누나의 도움으로 무사히 자격증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 되었다.


조금은 구질구질한 삶이었다. 교내 청소 도우미 알바를 통해 아침 7시 반까지 학교 건물을 청소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물은 대학교 정수기에 받아와서 해결하고 점심은 학교에서 식권배급 알바를 통해 한 끼를 때웠다. 여름에는 더위로 인해 아침부터 도서관에 가서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추울 때는 패당을 껴입으며 잠을 자면서 난방비를 아꼈다. 내 첫 CFA 1차 수험생활의 단면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이혼 조정을 위해 잠깐 대전에 온 적이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잘 지낸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엄마를 내 자취방에 초대했다. 분명 같이 외식도 하고 난방도 틀어주며 나름 늠름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훗날 엄마는 나에게 그 날 자면서 눈물을 훔쳤다고 고백했다. 아들 내미가 이런 곳에서 생활한다는 게 그때는 여간 미안했다고 하면서 말이다. 과거 교내 편의점에서 일했던 이점을 활용해 저녁마다 그곳에 들려 폐기 음식을 자주 가져오곤 했는데.. 흐릿한 기억이지만 그 음식이 혹시 엄마에게도 전달 되지는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누나에게 진 빚은 1년 동안 2번에 걸쳐 갚았다.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누나에 대한 고마움이 컸었는데 이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 되었다. 내가 돈을 빌려간 사실을 알고 나중에 매형이 누나에게 동생들 지원 좀 작작 하라며 나무랐던 이야기를 시간이 지나서 듣게 된 것이다. 그 때는 정말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달라는 것도 아니고 빌려달라는 거였는데.. 스스로 자격증 비용 다 마련하고 열심히 공부해보겠다고 해서 나온 행동이었는데..


당시 누나와 매형에게는 앞으로 어려운 처지를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그 때는 1년에 두 번을 걸쳐 갚아야 했던 현실에 무척 분개했다. 한 번에 털고 싶었음에도 생활이 안돼 분할 상환한 것이 못내 한스러웠던 것이다. 150만원이 뭐라고.. 지금 내가 가진 빚 3억(아파트 대출금)에 비해서는 무척 초라한 금액이지만 나에게는 지금도 의미 있는 채무로 기억에 남는다.


벌써 10년도 넘은 이야기고 누나와 매형하고는 여전히 사이 좋게 지내고 있다. 가족간의 우애도 꽤나 돈독한 편이다. 다만 이 내용을 글로 적은 이유는 나에게 있어 당시의 서운함은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쪼잔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떡하랴.. 이게 나인걸..

이전 10화'내가 할 수 있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