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날

by Aroana

목요일, 마감 날이 밝았다. 어제 저녁부터 하루를 꼬박 지새며 총 11개의 기사작성을 마무리 했다. 시간은 오전 6시, 10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모니터에 머리를 처박으며 피곤함을 어깨에 한가득 짊어진 채 출근할 준비를 한다. 샤워를 하고 찬물로 얼굴을 박박 문지르며 잠이든 눈꺼풀을 깨워본다. 머리를 말리며 거울을 바라보는 내 모습은 초췌함으로 덮여있다. 6시 30분, 늦지 않게 서둘러 집을 빠져나온 나는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이용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 편의점에서 핫식스 2개를 구입하고는 이번 주 기사의 '마감'을 준비한다.


보험전문 기자로 일한지는 4개월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힘들 걸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일의 강도가 이 정도일 줄은 미처 상상을 못했다. 6년전 보험설계사로 일한 경력과 평소 글쓰기를 좋아해 자신감으로 무장했지만 조금만 채찍질을 가하자 곧바로 한계를 드러냈다. 매주 마감을 겪으면서 나는 '마감'이라는 용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용어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당일에 기사를 작성하는 선배들과 달리 전날에 초안을 작성해왔음에도 마감 날에 나는 누구보다 바빴다. 오전에는 내가 썼던 기사의 어휘, 문맥 등에 대해 한 웅큼의 수정사항을 검토 해야 했고 오후에는 이번 주 지면에 올라가는 기사의 최신 뉴스거리를 요약하는 일을 맡았다. 제정신이었으면 모두 다 금방 끝냈을 일들이다. 그러나 24시간을 뜬 눈으로 지샌 나에게 집중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점심시간 뒤 이어지는 노곤함은 나를 잠자는 숲 속의 모지리로 만들었고 수차례 테이블과 입맞춤을 나누는 과정에서 어영부영 역할들은 수행되었다. 눈이 빨개질수록 마감 시한에도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오후 7시, 하루하고 반나절을 꼬박샌 나에게 드디어 퇴근이라는 자유가 주어졌다. 나는 그렇게 반주검이 된 채로 사무실을 터벅 터벅 빠져나왔다.


문제는 그 때 부터였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길을 걷는데 외로움이 사무치게 밀려왔다. 이대로 집에 가기에는 분하고 억한 내 감정을 달래줄 누군가가 필요해 보였다. 아무에게나 붙잡고 위로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한 마디. 아니, 단지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모습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연락처를 뒤져가며 만날 수 있는 친구를 물색했다. 두 명의 친구로부터 거절 답신이 왔고 다른 한 명에게 연락하려니 또 거절을 받기가 두려웠다. 한참을 통화 버튼만 만지작 거리다 결국 내려놓았다. 혼자 술집이라도 가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극도의 피곤함에 취기까지 더해지면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몰라 망설였다. 생각은 마지막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집 앞 동네에 다다를 무렵 체념한다. 결국 혼술로 오늘 하루를 보상한다.


배달비를 아끼기 위해 근처 중국집에 가서 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술안주를 주문한다. 편의점이 근처에 있지만 기어코 마트까지 가서 술을 사 집에 온다. 시간은 9시가 되었고 때마침 허기짐이 찾아왔다. 유튜브를 통해 나만큼 외로운 사람들의 영상을 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한 잔 한잔 들이키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우연히 바라본 거울에서는 홍조 빛을 띤 괴물의 형상이 서 있었다. 머리로는 역겨움을 느끼고 있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베시시 미소를 띠고 있다. 밥은 아직 남았고 눈꺼풀이 고생했다며 지친 나를 토닥거린다.

그렇게 오늘 하루의 외로움도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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