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했던 20대 후반의 시절에서 가장 많이 위로를 받았던 노래를 말해보라면 단연코 블랙넛의 '내가 할 수 있는 건'이란 노래다. 가수의 성향은 논외로 치고 가사와 그것을 전달하는 블랙넛의 쇼 미더 머니4 당시 공연 버전은 내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랩이 시작되기에 앞서 구질구질한 찌질함이 묻어나오는 고백, 힘든 시간들과 싸워 이겨내려는 후반부의 가사 전달력은 마치 내가 그 무대 안에 서 있는 듯 했다.
이 노래가 귓가에 익을 때 쯤 나는 보험설계사를 그만둔 시점이었다. 남아있는 상처라곤 자기관리에 실패해 10kg 이상 늘어난 내 모습에 대한 혐오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내가 선택한 일에서 실패를 맛본 좌절감이었다. 사실 그만두기 전 나에게는 설계사의 삶에 대해 같이 의지했던 여자 동료가 있었다. 초창기 보험에 대한 니즈가 충만했을 시기, 갑자기 이 친구가 영업에 대한 회의감으로 그만두려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마다 나는 고민 상담을 해줄 정도로 내 업에 자신감이 있을 시기였다. 그러다 이 친구는 다시 마음을 바로 잡고는 다른 보험사에 이직을 해 새로운 삶을 꾸리면서 비교적 잘 나가게 되었다. 한편 나는 몇 번의 무너짐을 극복하지 못해 보험영업에 대한 정을 완전히 떼버렸다. 그 후 이 친구는 나를 데려오기 위해 몇 차례 연락을 시도했고 그렇게 우린 정 반대의 위치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당시 그 친구를 볼 때 마다 내 얼굴에는 미안함과 창피함이 교차했는데 지금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 화끈 거린다. 입에 발린 비전을 얘기하며 보험업에서 살아남겠다고 다짐했던 나였는데 몇 달이 지나서 나는 백수 나부랭이가 되었고 그 친구는 잘 나가는 영업인이 되었다. 그 때 연락을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진따 같은 모습을 그 친구에게 보여준 게 참으로 한이 된다.
그 후 인생이 안 풀린다고 생각할 때 마다 코인노래방에 가서 이 노래를 참 많이 불렀다. 보험설계사를 그만두고는 취업준비를 하면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자괴감에 휩싸였다. 지금 하는 이 취준이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 하면서도 당장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되고 싶은 것들에서 자격은 박탈 당했고 나이는 무책임하게 먹어가고 있었다. 백수를 제외하면 나에게 남아있는 타이틀이라곤 '취준생'이 전부였고 그건 거부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나는 이 시절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막연히 꿈꿔보며 부를 때 마다 감정을 최대치로 담아 열창했다.
난 힘든 시간들과 싸워
난 힘든 시간들과 싸워
달력을 벌써 7개나 갈아치웠지만
내가 쏟은 시간들이 안 아까워
난 힘든 시간들과 싸워
난 힘든 시간들과 싸워
넘어져있는 너 절대 포기하지마
내 손 잡아 너도 나와 같다면
이 노래는 그리고 1년 뒤 호주 워홀을 가기로 마음 먹으면서 또 한 번 가슴을 적셔주었다. 막연했던 삶의 발자국들이 조금씩 길이 되는 과정이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계획에도 고된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내 투잡의 일과는 멘탈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언젠가 되갚아줄거야
날 향한 비난들 전부
다 부러움들과 질투로 바뀌도록
당시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고 주변 친구들이 모두 나보다 잘 나갈 때라고 여겨지던 시기였다. 모아놓은 돈이 없어 악착같이 일을 하면서도 사회의 시선에 따가운 눈총을 많이 받아야 했다. 그 때 마다 나는 혼자 코인노래방에 가서 가사를 하나 하나 곱씹으며 울분의 감정을 이 노래에 연신 담아냈다. 우울한 기분이 들 땐 막막한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라는 마음으로 불렀다면 의지에 불타 오를 때는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다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란 자세로 목청 껏 외쳤다.
여전히 이 노래 제목의 취지가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로서 작용 되었으면 좋겠다. 간만에 또 노래방에 가서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 좀 해주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