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전' 날 있었던 이야기 2편

by Aroana

수요일 저녁이었다. 나는 독서실에서 과목별 정리 노트를 한 번 훑어보는 것으로 최종점검을 마쳤다. 평소 보다 일찍 집에 도착해서는 TV를 보며 내일 있을 수능을 위해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그러다 배에서 갑자기 꼬르륵, 허기짐이 찾아왔다. 공복이었던 나는 그 날 따라 유독 만두가 먹고 싶어 근처 마트에 가서 잽싸게 사오기로 했다. 마트까지의 거리는 불과 수백 미터였다. 나는 자전거의 폐달을 힘차게 밞으며 만두를 손에 쥐고는 양손을 허공에 휘날리며 넘실넘실 위태롭게 도로를 질주했다(쉽게 말해 자전거를 두 손 놓고 타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앗 뿔싸!, 돌아오는 도중 도로에는 움푹 패인 부분이 마치 부비트랩 마냥 매복돼 있었던 것이 아닌가. 자전거가 그 곳을 지나갔을 때 내 몸은 이미 균형감각을 상실한 뒤였다. 핸들이 속수무책으로 뒤틀려지자 내 몸은 순식간에 허공을 날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두 세 번 굴러간 상태였다.


도로 한복판에서 벌어졌기에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될 뻔 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차들은 지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오른쪽 어깨 쪽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아픔이었다. 어깨 통증은 오른쪽 상반신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고 나는 내 몸에 뭔가 심상치 않은 문제가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왼쪽 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움켜 잡으며 근처 소방서까지 힘겹게 발을 디뎠다(다행히 소방서는 사고지점에서 가까웠다). 지나가는 소방대원 아무나에게 대충 상황설명을 하고는 빨리 병원에 좀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태어나 처음 타보는 구급차 안에서 누워있는 동안 내 얼굴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것은 아픔에 대한 고통과 내일 수능을 이 모양 이 꼴로 치를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서 새어 나온 마음고백이었다.


병원에서 X레이 촬영 결과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고 단지 쇄골에 금이 갔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러나 의사는 지금 상태로 움직이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며 어깨고정을 위해 며칠간 입원을 권했다.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당장 다음날이 수능인데.. 해놓은 게 아까워서라도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왼손으로 푸는 한이 있더라도 나에게는 수능점수가 반드시 필요했다. 시험만 보고 입원하겠다고 말하고는 겨우 임시방편이 가능한 수준의 처치를 받았다. 곧바로 부모님이 병원에 오셨다. 엄마는 팔걸이가 된 나를 보고는 눈시울이 붉어지시다 이내 고개를 돌리셨다. 집에 와서 부모님이 "괜찮냐"를 제외하고는 서로가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없었다. 그렇게 수능 전날의 마지막 밤은 어깨 통증으로 뜬 눈으로 지새우다 시피 했다. 시험 날, 나는 결국 왼손으로 모든 답안지를 개판으로 적고는 다음 날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이 때를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재수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학교는 둘째 치더라도 제 실력발휘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채 받아들인 성적표를 그냥 인정할 수 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수시 1차로(내신100%) 지원한 대학교가(선생님의 끈질긴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 합격한 상태이긴 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원했던 학과도 아니었고 재수를 하더라도 노력의 결실을 성과로 확인받고 싶었다. 도쿄대를 목표로 했던 드라마를 봐오면서 무수히 많은 명대사를 수집한 나였는데, 고작 이뤄낸 결과가 2년간의 수능공부는 단 1%도 반영되지 않은 지방 사립대였다니..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인강에 그렇게 돈지랄을 하고 학원비에 학습지까지 해가며 부모님의 등골을 빼먹었을까? 수능을 본 뒤로 한 동안 자책감과 죄책감으로 우울한 날을 보냈다.


이랬던 내가 재수를 단념하고 학교를 다니게된 배경은 의외로 또 단순했다. 현실인식이 빨랐던지 시간이 지나서 내 수준의 한계를 인정한 측면이 컸다. 잘해봤자 '인 서울'은 힘들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겨우 지역의 국립대를 목표로 삼자니 차라리 이곳에서 학점이라도 잘 받아 조기졸업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 와서야 말하면 애초에 나는 그냥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 의지가 없었던 것 같다. 지난 2년의 성적을 내가 잘 아는데 그걸 획기적으로 끌어올린다? 당시엔 인정하기 싫었겠지만 그 정도의 자신감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학교 오티 때 찾아간 대학교의 정경을 보면서 재수에 대한 불씨는 완전히 사그라졌다. 기대와 달리 캠퍼스가 생각보다 이쁘더라. 어쩌면 나는 그냥 빨리 놀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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