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개인의 성격에서 나타나는 자존감 하락, 어떤 사건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뜻대로 되지 않는 감정기복, 그로 인한 각종 이상증세들까지... 이런 것들을 우리는 꼭 의학적 소견을 받아야지만 확인 가능한 것일까?
나는 대체로 성격이 둥근 편이다. 특별히 무언가에 예민하지도 않고 결과에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은 더 더욱 아니다. 외부로 보여지는 이미지에는 늘 높은 자존감이 뒷받침 되는 것 마냥 행동한다. 일상에도 만족감을 느끼며 사는 편으로 비춰지는 편이다.
인생을 살면서 감당하기 버거운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맞서지 못할 때는 자기방어로, 터 놓지 못할 때는 외로움이 찾아온다. 일렁였던 감정의 동요에 무력해지고 삶의 의미마저 퇴색될 때는 무기력함이 우리의 육체를 짓누른다. 형태를 알 수 없는 감정의 이상증세는 우리의 예민함이 절정에 치달을 때 가장 확실하게 느껴진다.
살면서 정신과를 몇 번 가봐야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은 아니었다. 몇 몇 사건들을 겪은 후 가해지는 감정의 상태에 보다 정밀한 진단을 얻고 그것을 이겨 내보기 위함이었다. 무기력함, 우울감, 공허함, 특히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책임감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싶은 순간들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무기력함에 공허함이 더해지는 날엔 그냥 다 때려치고 싶은 기분들이 불쑥 불쑥 찾아왔다. 때려친다는 말도 소극적인 표현인 것 같다. 그냥 '다 놔버리고 싶다'는 느낌. 그래. 손에 쥔 걸 그냥 놓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피어났던 것 같다. 나를 치료해줄 병원을 검색해 봤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갈 법도 했지만 나는 이 문제에 강한 방어기제가 작동했다.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어쩌면 지금까지도 내가 망설이는 주 된 원인이지 않나 싶다. 그건 바로 의지를 하게 된 순간 빼앗길 지도 모른다는 내 '자유의지' 때문이었다. 정신과 선생님에게 의탁한 순간 왠지 나는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자유의지마저 선생님에게 기대야 한다는 '두려움'이 강했다. 그것만큼은 뺏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감정을 오롯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고 주문하며 마음상처 만큼은 자가치료를 통해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내가 자가 치유하는 방법은 이렇다. 나는 일단 우울감이 들어서면 한 없이 쳐지게 되는 내 상태를 인정한다. 그저 기분에 충실하도록 늘어짐의 명령을 받으면 그것을 받아들인다. 억지로 이겨내보려는 감정을 짓지 않는다. 우울한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더 고독해지기를 통해 내 감정이 아파하는 것을 느낀다. 필요하면 술도 적당히 섞어준다. 그런 다음 취기가 올라올 때 까지 기다리다 잠을 청한다. 이러한 일과를 반복한다.
외로움이 몰려올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나를 밀어주지 않고 내 힘듦을 몰라줄 때 그것을 억지로 타인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지 내 자신에게 얼마 만큼 외로워하는지를 물어가며 내면에 솔직해지려 노력한다. 때로는 이 감정을 글을 통해 표현해보려 노력하고 가끔은 코노에 가서 목청껏 외친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 까지.. 외로움이 지칠 때 까지 감정의 무게를 받아낸다.
생각해보니 감정의 기분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해 해준 촉매제로 술이 꼭 있었던 것 같다. 술을 마시며 감정이 증폭되고 환각을 통해 나는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 같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그래, 한 잔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