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험에 가입한 이유

by Aroana

살면서 내 의지로 보험에 가입한 적은 단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보험설계사로 일했을 때 실비의 위력을 알고 나서 가입한 것과 두 번째는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가입한 경우다.


보험설계사를 하고 있었을 당시 내 실비 금액은 만 원 정도 했었던 것 같다. 단독실비로 가입을 했었는데 적어도 나는 이 정도 금액이면 그래도 꾸준히 유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설계사를 그만두고 불과 몇 달 만에 나는 이 보험을 해지했다. 이유는 뭐.. 뻔하다. 백수가 되고나서 고정비를 한 푼이라도 줄여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고 호주에서 영어책 읽는 비법을 수련(?)한 끝에 이걸 이용해서 책을 내게 되었다. 당시에는 캐주얼 바에서 야간 일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에세이에 대한 초고도 조금씩 준비하던 시기였다. 여기에 앞으로는 책 출간과 함께 나를 알릴 수 있는 활동(강연, 유튜브, 영상 촬영 등)을 여기저기 벌일 계획을 세웠다. 밤 11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9시에 일을 끝마치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카페에서 영상 편집을 하고 집에 와서는 글을 쓰면서 강연 계획 준비 등으로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만들어갔다. 원 잡 임에도 불구하고 잠을 하루에 4~5시간만 겨우 잘 정도였다. 이러다 문득 쓰러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과로 때문에 무슨 병이라도 들면 이보다 더 멍청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든 것이다. 이 때는 자진해서 내가 보험설계사에게 연락하고는 실비와 암 보험을 가입했다. 처음에는 암에 대한 넉넉한 보장을 받으려 했으나 없는 살림에 가입설계서를 받고 보니 '확실하게'는 '적절하게'로 다시 '최소한'으로 주머니가 작아졌다. 그렇게 치면치레 수준의 보장만 겨우 들었다.


보험에 들고 나서 귀신 같이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설상가상으로 내 근무 시간마저 위태해지는 단계까지 다다랐다. 과로를 걱정해 들었던 최소한의 보험이 돌연 잉여시간이 생겨남으로써 최대치의 보장으로 탈바꿈해 버렸다.


어찌됐든 이후부터 나는 보험을 줄곧 해지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 해지해 봤자 환급금이 빵원 이어서 때문은 절대로 아니다. 말 그대로 보험의 성격이 100% 이기에 내 시간을 좀 더 온전히 쏟을 수 있어서다. 엄청난 과로를 하고 시간을 그냥 막 내 마음대로 놀려 써도 몸에 대한 걱정을 크게 하지 않는다. '아파도 돈이 나오니까...' 무슨 개떡 같은 말이냐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보험이 주는 마음의 위안이 사실 아~주 없지만도 않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걱정을 아예 배제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과거에 내가 호주 워홀을 가려 했을 때 한국에서 미리 의료보험을 들었는데 금액이 30만원 정도 했었다. 결국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하고 고스란히 비용처리가 되었지만 덕분에 호주에서 의료비에 대한 걱정은 일절 하지 않았다(대신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건강검진부터 했다!)


지금도 투 잡을 뛰어가며 인생을 정말 치열하게 보내고 있다.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생활만 3년 넘게 지속하고 있고 어떻게 보면 건강을 돈과 바꾸는 삶을 사는 중이다. 물론 나도 참 고민이다. 틈만 나면 내 몸을 더 혹사시킬까만 연구 중이니까. 돈은 벌어야 겠고 하고 싶은 것은 많고 시간은 참 빨리 흘러간다.


어떻게 내 시간 안에서 온전한 취미생활을 해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시간을 꾹 꾹 눌러담을 수 있을까?


그래도 보험 덕분에 이게 다 가능한 활동이라고 조금은 위안 삼아 본다. 그래도 쪼끔은 몸에 대비를 하고 있으니 이런 저런 생각도 해볼 수 있다고 자위해 본다. 오랜만에 보험앱 좀 켜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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