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라는 감정

by Aroana

인생에서 가장 큰 불안을 느꼈던 시기를 꼽자면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24살의 CFA 1차 시험 탈락이었다. 고2 때 경제에 관심을 가졌던 나는 대학교에 입학해서 목표를 애널리스트로 잡고는 각종 금융 자격증을 취득하며 자기계발에 열중인 꽤나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당시 선택한 진로는 내 학벌과 스펙만으로는 거리감이 제법 멀게 느껴졌다. 이 같은 환경을 극적으로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강력한 한방을 지닌 무언가가 필요했고 CFA는 애널리스트들이 선호해하는 자격증이었다. 나는 뚜렷한 목표 설정을 바탕으로 CFA 1차에 도전을 했으나 결과는 참혹한 탈락을 맞이하고 말았다. 낙방을 받아들이고 이 때 내가 들었던 생각은 앞으로 애널리스트라는 진로를 가지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었다. 주변에서 모진 이야기를 했을 때도 담담하게 대처하며 꿈을 키워갔던 나였는데 이 시험은 고작 1차 만으로도 나를 주눅 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불합격을 대비해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건만.. 한 방의 무너짐은 내 멘탈 마저 잔인하게 앗아가 버렸다. 이 때부터 방황을 좀 했었다. 어디에 어떻게 취업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건 단순히 눈을 낮춰야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무엇을 위해, 어떤 열정을 쏟아야 할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뭘 해도 시시했고 앞으로의 인생 계획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랐다. 졸업은 다가오고 있는데 전공을 살려 취업할 자신도 없었다. 그 흔한 토익 점수 하나도 평균을 넘기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었다. 그게 내 인생 첫 불안이었다.


두 번째는 '나라는 사람은 평범한 사무직이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를 알았던 때였다. 방황을 거지고 취업준비를 통해 들어간 어느 중소기업의 경영지원 부서. 두 시간이 걸리는 출퇴근 시간과 박봉에도 불구하고 처음 한 달은 만족하며 다녔다. 중소기업에 들어온 이상 누구나 다들 박봉으로 시작했을 테고 출퇴근 시간은 직장인이라면 감내해야 하는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인사·총무 였던 나는 관련 카페에 가입도 하고 커뮤니티도 가져보려 하는 등 어떻게든 그 곳에서 전문성을 쌓아보려 노력했다. 다행히 회사는 성장하는 무역회사 였기에 성과만 인정 받으면 급여 인상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정말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의 사회생활에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점점 출퇴근 거리에 지쳐가고 박봉에 저축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견디질 못했다. 흔한 직장 선배와의 갈등도 유도리 있게 넘어가질 못하고 술로써 이겨보려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그러면서 '아 이거 다른 회사 들어가서도 분명 비슷할텐데.. 지금 이거 하나 견디지 못하면 다른 곳도 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다음 일은 또 다른 '취업준비'가 아닌 '그저 돈만 버는 일이 되겠구나' 싶었다. 뭔가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다만 딱 거기까지. 역시나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막막했고 무지했으니까. 이후의 삶은 호주 워킹홀리데이라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불안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걸 느끼는 순간 삶의 항해가 아주 뿌연 안개로 덮여있다는 것이다. 내가 디디려 하는 발자국이 앞을 가리키는 건지, 옆인지, 뒤인지를 판단 할 수 없다. 일단은 내딛고 그곳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그저 믿어야만 한다. 멈출 수도 없다.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 언제 폭풍우가 몰아칠지 몰라 나라는 놈은 어딘가로 가 있어야만 한다. 캄캄한테 나침반도 주어지지 않은 채 버려져서는, 어딘지로 모르는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순간. 그 때 지닌 사람의 마음이 아마 불안함일 것이다.


지금도 그 불안을 느낀 채 살아가고 있다. 다만 조금은 무뎌졌을 뿐, 멘탈이 약해지면 어김없이 강력하게 나를 흔든다. 마음속 나침반을 통해 뿌연 안개에 노를 저으며 그곳이 내가 가는 방향이라고 그냥 믿어야 한다.

이전 22화마음 상처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