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중이다. 퇴근 후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샤워 후 노트북을 키며 내가 느끼는 감정을 기록하고 있다.
요즘 들어 종종 버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책임감'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에 누구보다 더 많은 노동시간을 탐하며 '온전한 자유'를 누르기 위해 남들 보다 다양한 취미 활동을 수집하고 있다. 런닝, 글쓰기, 독서, 피아노 등의 취미 생활은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원동력을 제공해준다. 때로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고 나는 이것들을 하면서 내 삶의 존재 의의를 찾는다. 런닝을 하며 건강한 체력에 자부심을 느끼고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생각을 순환시켜 준다. 그러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순간이 오면 현재의 내가 그래도 꽤나 괜찮은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마저 들게 해준다.
문제는 이것들을 골고루 하려니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하지 못하는 나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일에 치여 운동에 버거움을 느끼면 거기서 오는 자책감이 글쓰기로 이어지고 다시 독서로 피아노로 이어진다. 때에 따라서는 어느 것 하나 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날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정신 차려 보면 식탁에는 기름진 음식과 술잔만이 한심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에 내 페이스대로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데도 종종, 아니 자주 나는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삶을 보낼 때가 많다. 퇴근 후 운동을 마쳐 다음 취미 활동을 하려는데 시간은 어느 새 수면을 재촉하고 있다. 글감은 떠오르지 않고 샤워 후 찾아오는 노곤함은 곧장이라도 나를 침대로 안내하려 애쓴다. 그럴 때면 피아노를 치는 것에도 부담을 느낀다. 당장의 우선순위는 글이었기에 피아노는 안중에도 없고 결국 나는 잠을 자며 그렇게 두 개의 취미를 날려 버린다.
내가 그렇게 이상적인 사람만은 아니다. 네 가지 모두 잘하기만을 바라지도 않는다. 때로는 기간을 두고 천천히 하고 싶은 취미 생활만 하자고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 오늘 런닝을 했으면 그걸로 하루 일과에 만족을 하고 내일 글을 썼으면 또 그걸로 만족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운동을 쉬어보기도 했고 글, 피아노 등을 기간을 두고 하지 않아 보기도 했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까지. 하고 싶어 안달이 나도록 충분히 쉰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쓰지 못했고 피아노,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피곤함이라는 그럴싸한 핑계 앞에 모두 다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것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요리도 내가 직접 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으니 더 이상 뭔가를 쪼갤 수도 없는 노릇이 되었다. 분명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지만 흐지부지 해지는 것 같은 느낌. 내가 개척한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한다는 느낌. 나에게는 그 것이 삶의 버거움으로 다가왔다.
사실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일이다. 일을 줄여야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 놈의 일을 손에 놓지 못하고 있다. 격주에는 토·일요일을 쉬는 날임에도 매주 일요일마다 4시간씩 파트 타임 알바를 하고 있다. '풍족한 취미생활을 갖자'와 '한 푼이라도 벌 수 있을 때 벌자'의 대립에서 욕심은 서로가 결코 타협이 되지 않는다. 일을 할 때는 제테크 방송을 통해 어떻게든 소비를 줄이고 한 푼이라도 더 저축을 해볼까를 고민한다. 그러다 퇴근 후가 되면 어떻게 하면 내 취미를 보다 더 잘 즐길 수 있을가를 고민하며 무너짐을 반복한다.
그 끝에는 결국. 술. 또 값비싼 안주.
참. 무엇하나 쉽게 타협을 못하는 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