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나는 내 청소년기 시절 힘들 때 마다 의지를 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지만 한 때 친구 목록에 '수호천사'로 분류됐을 만큼 특별했던 사람. 존재만으로도 큰 위안이 돼주었던 사람. 오늘은 그 누나에 대한 짧은 회상이다.
이 누나를 알게 된 것은 '세이클럽'을 통해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 온라인 채팅 사이트에서 나는 누나가 그냥 목록(지금으로 치면 추천목록 같은 개념이다)에 떳길래 인사말이나 던져 볼까 싶어 '안녕하세요'를 보냈다. 보통 이러면 대부분의 반응은 '누구세요?'가 먼저 나오는데 누나는 살갑게도 나에게 맞호응을 해주었다. 나보다 2살이 많았던 누나는 중학교에 다닌다고 하였다. 동네 친구 말고 다른 지역에 사는 누군가와 친구를 맺은 적은 이 누나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우린 온라인 채팅을 통해 로그인이 되어 있으면 쪽지를 건네며 안부를 물었다.
친 누나가 세 명이나 있었지만 내 중·고등학교 시절은 사실상 외동이나 다름 없었다. 큰 누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이 취업전선에 뛰어 들었으며 둘째, 셋째 누나도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서울로 유학 아닌 유학을 가야 했다. 졸지에 혼자가 된 나는 처음에는 그 상황을 즐겼다. 컴퓨터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부모님을 제외하면 나에게 간섭하는 사람도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바로 정서적 외로움. 나는 친누나들에게 고민을 토로하기 보다는 되도록 삭히고 혼자 푸는 성격이었다. 장래에 대한 고민이며 부모님의 치열한 다툼, 사춘기 시절의 방황을 주로 혼자서 끙끙댔다.
중·고등학교 때 나를 가장 괴롭혔던 부분은 부모님의 다툼이었다. 아버지는 단순히 말로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직접 물건을 부수려 하고 손찌검도 자주 행사하려 했다. 초등학교 때는 큰 누나가 우리 세 남매를 대신해 항상 앞장서며 아버지의 폭력을 정면에서 맞섰지만 모두가 떠나고 난 후, 그 짐은 오로지 내가 지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점은 이 시점에서 내가 아버지의 폭력을 어느 정도 무력화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예전처럼 엄마와 우리 남매들이 뒷동산에 숨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밥상을 엎고 고성방가에 경찰을 출동시킨 적은 있었어도 엄마와 내가 맞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적극적으로 아버지의 팔과 다리를 봉쇄하고 엄마의 아바타가 되어 아버지가 지쳐 쓰러질 때 까지 말대꾸로 응수를 해줬다.
한바탕 일처리를 하고 난 후에는 늘 현타가 세게 밀려왔다. 엄마는 내 덕분에 살고 있다며 나를 기특하게 여겨줬지만 아직 감정이 성숙하지 못했던 나는 남은 분노와 끓어오르는 감정을 해소하지 못했다. 얘기할 사람이 필요했지만 말할 상대가 없었다. 나는 종종 밖에 나가 노래도 부르고 소리도 지르면서 그런 식으로 내 안의 화를 달래곤 했다. 이 때 가장 심적으로 의지를 했던 사람이 바로 이 누나였다. 물론 누나에게 이러한 사실을 전부 알리진 않았다. 다만 누나와 그저 소식을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감정이 마구 가라앉았다. 누나에게 집안 문제로 힘든 일을 겪었다고 이야기를 하면 누나는 내가 말할 때 까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저 잘 견뎌낼거라고 위로해 주며 좋은 말을 자주 담아주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위로. 누나와 대화(쪽지, 메일, 문자 등 다양한 방면으로 누나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를 하고 있으면 그냥 너무나 편안했다. 정말 '수호천사'라고 느껴도 좋았을 만큼 누나는 존재만으로도 내가 어딘가로 크게 엇나가지 않게 해주었다. 심적인 외로움을 덜어주는 유일한 존재였다고나 할까?
사실 누나와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나누지는 못했다. 당시 나는 너무나도 쑥맥이어서 누나에게 호감을 살만한 행동도, 더 개인적 친분을 다지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연락처를 알고 있음에도 전화하지 않았고 어디 사는지 알고 있음에도(멀지 않음에도) 가려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아니었던 것 같다. 뭐랄까. 당시는 약간 누나를 신비로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아주 가끔은 누나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성격도, 가족관계도,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지만(점점 잊혀지는 거였으면 좋겠다) 점점 누나에게 받았던 따뜻한 마음만 남게 되는 것 같아 오늘을 빌려 추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