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회적 이슈에 관한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대체로 침묵하는 편이다. 치열한 논란이 예상되는 주제에 대해서 입장을 밝히는 것도 되도록 피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살다 보니 어쩌다 글쓰기에서 나도 모른 사이 자기검열을 하게 되었다. 대체 왜 나는 그런 태도를 유지해야만 했을까?
사실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게 된 배경에는 나름의 변명이 있다. 먼저 나는 한 쪽 입장만을 지지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한다. 설령 내 입장이 정해졌다 하더라도 말로만 이야기할 뿐, 그것을 글을 통해 기록하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이건 내 성격에 관한 문제인데, 일방적인 주장만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내 주장을 요구하면 그것을 관철시킬 수 있는 논리를 펼쳐야 한다. 그러나 이럴 경우 때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주장을 비판해야 할 때도 있는데, 나는 내가 충분히 알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되도록(또는 거의) 비판을 하지 않는 성격을 지녔다. 스스로에게 있어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기준을 굉장히 높게 세웠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판을 표현하는 방법을 직설이 아닌 비유적 어법으로 하는 것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최근의 어떤 사회 이슈를 비판하고 싶다면 각종 통계 자료로 그것을 보충하기 보단 소설의 형식이나 개인의 견해라는 내용을 강조하며 입장을 에둘러 표현한다.
쓸데없이 유명하지도 않은데 유난을 떤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의도는 아니고 대게는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멋대로 지껄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해당 이슈(글, 영상, 사진 등)가 왜 이렇게 나왔는지 파악을 하고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갖추어야 하는지 등은 전부 자료조사이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숙지해야할 내용들이다. 가볍게 쓰기는 싫고 자세하게 쓰자니 심적 부담만 한 웅큼 지게 된다. 그나마 쉬운 것은 대체로 중립 모양을 머릿 솟에 인지한 채 각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좋은 점만을 보려고 노력한다. 삶을 사는 데도 마찬가지다. 무슨 대단한 신념이 있어서 삶의 방향을 신념대로 사는 것이 아닌, 그 때 그 때 나에게 좋은 점을 취사선택해 가며 유연한 삶을 살려고 노력 중이다.
이 같은 이유로 나는 읽은 책의 내용을 웬만하면 비판하지 않고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한다. 설령 그 책에서 일부 정보가 틀리고 때로는 거친 관점으로 쓰여 있어도 저자가 그렇게 쓰게 된 배경을 먼저 이해하려는 편이다. 그런 관점을 유지하다 보면 나름 보이지 않았던 부분에서 새로운 생각이 나기도 하고 또 개인적으로는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진다는 느낌도 받는다. 저자의 생각이 나와 추돌되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다만 그것이 비판받을 정도로 안 좋다 하더라도 그냥 적지 않을 뿐, 견해의 차이만 인정하는 것으로 정리한다.
이렇게 나는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한계를 지니고 있는 터라 더욱 더 에세이를 읽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에세이는 읽다 보면 사람들의 생각을 훤히 들여다보는 기분을 갖는다. 그들의 비밀도 괜히 나만 몰래 보는 것 같고 특정 사안에 대해 '올바름'을 표시하는 주장은 그냥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왠지 내 입장은 밝히지 않은 채 그들의 입장만 쏙쏙 빼내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글쓰기를 통해 꾸준히 시도 중이다. 애초에 정답이 없을 것 같은 주제를 골라 개인이 다양하게 수렴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종종 내 생각을 이야기 한다. 어차피 나란 사람이 겪고 느끼고 생각한 부분에 관한 내용이니까. 어떻게 보면 경험이 내 글쓰기에 있어 가장 근간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