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단지 판타지 속 인물이었다는 것은 정말 우연치 않은 사건 때문이었다. 때는 초등학교 3~4학년 어딘가 쯤 이었다. 우리 집은 비록 부부싸움은 자주 일어났지만 간간히 화목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특히 크리스마스 날에는 산타할아버지가 늘 내 머리맡에 무언가를 놔주었다. 양말은 걸어주지 않았을지 언정 어떤 식으로든 다녀간 흔적을 남겨놨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이 오면 나는 진심으로 부모님과 누나들에게 갖고 싶은 물건을 말하고 다녔다. 그것이 꼭 선물로 오지는 않았을지라도 말이다. 시즌 때가 되면 나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겠다는 착한 다짐도 자기 전에 잊지 않고 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며 그의 존재를 설파했다. 산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친구들에게는 그게 꼭 선물로만 보답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분명 너의 마음 속에도 다녀갔을 것이라면서 할아버지는 전 세계를 (밤에만) 도느라 바쁘기 때문에 정말 불쌍하고 필요한 사람에게만 선물을 준다고 대변 아닌 대변을 했다. 산타가 우리 부모님이라는 사실은 무시로 일축했다. 일단 내가 했던 간절한 기도의 대상은 결코 부모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물을 받았어도 나는 부모님께 감사함을 느꼈던 것이 아닌 산타에게만 고마움을 전했다. 도무지 생각을 해도 가끔씩 악마로 돌변하는 아버지가 결코 산타였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살림에만 정신없을 엄마가 그 날 하루만을 위해서 머리맡에 선물을 놔둔다는 게 당초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산타가 내 기도를 듣고 분명 응답 해주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은 아니러니 하게도 내가 가장 의지가 필요한 순간에 깨졌다. 엄마와 서울 외갓댁으로 피신을 갔을 때였다. 전날 밤 어김없이 아버지는 집안 살림을 때려 부셔가며 죽일 듯이 엄마를 괴롭혔다. 어쩌다 찾아오는 부부싸움이야 참을 수 있지만 술만 마시면 개새끼가 돼버리는 짐승 앞에서 엄마는 더 이상 전투력을 상실했다. 다음 날 저녁, 나와 엄마는 결국 서울 외갓댁으로 도망을 쳐버렸다. 하필 그 때는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날 이었다. 부부싸움의 현장에 있었던 것은 가슴 아팠지만 곧 집을 나선다는 생각에 어린 나는 약간의 설렘을 느꼈다.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가 내 상황을 분명 알고서는 불쌍히 여겨 꿈에서 머리도 쓰담아 주고 소정의 선물도 놔두고 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한 밤 중의 고속버스와 지하철, 또 다시 버스를 타며 밤 12시가 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승강장에서 보이는 텔레비젼에서는 벌써부터 산타 할아버지가 여기저기 등장해 선물을 나눠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서 빨리 외갓댁에 가자며 엄마에게 재촉을 했다. 도착해서는 부리나케 잠들기를 바랬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전하며 위안을 받을 요량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어수선했으며 상황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갔냐고 물었다. 우물쭈물해 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현실감이 팍 느껴졌던 나는 그렇게 마음 속 산타를 보내주게 되었다.
잠깐 하루 안 올 수도 있는 거지, 깜빡했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을 법도 했다. 그런데 뭐였을까? 내가 그 때 느꼈던 현실감이란 그 날 딱 하루, 1년에 한 번 산타 할아버지에게 내가 처한 어려움을 고백하는 시간이었는데 뭐랄까... 그것이 철저하게 외면 당한 느낌이었다. 설령 엄마가 다녀갔다 말하더라도 나는 더 이상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았을 것 같다. 바뀐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날, 그렇게 산타는 나를 배신했다.
PS.
힘든 하루를 겪으면서도 내가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엄마에게 산타가 왔냐고 물었을 때 엄마의 가슴이 어땠을지는 솔직히.. 상상하기가 좀 힘들다. 어쩌면 나의 순수한 질문이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