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인 지금은 소득 활동에 거의 전부를 쏟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안에서 기어이 시간을 짜내 취미활동을 할 뿐, 하루 24시간의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반면에 20대의 내 삶에는 공부와 알바의 치열한 균형을 저울질하던 시기였다. 알바를 통해 사회의 쓴 맛을 일찍 맛보기도 해봤다가 미래를 고민할 때면 배움의 비용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가 늘 고민되던 시절이었다. 그 첫 시작은 재경관리사 자격증을 준비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대를 제대한 2011년 11월 1일, 이미 27일의 긴 말년 휴가를 보낸 터라 전역이 새삼 새롭지는 않았다. 이 때의 고민은 앞으로 복학하기까지 4개월여 동안 무슨 계획을 세울지 였다. 150만원짜리(당시로는 풀 타임 급여로 이 정도가 적정이었다) 알바를 하면 최소 400만원(3~4개월)이라는 목돈을 쥘 수 있기에 그 돈이라면 대학시절의 비상금으로는 충분한 액수였다.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던 나는 어차피 놀 계획이라면 돈을 벌면서 복학을 맞이하자는 편이었다. 그래서 첫 계획은 돈을 모으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전역을 하자마자 바로 틀어지게 되었는데 이유는 군대에서 즐겁게 읽었던 회계 관련 교양서 때문이었다.
제대 후 이전의 회계학 지식에 갈증을 느껴 취미 삼아 어둠의 경로로 재무학 강의를 들어봤는데 어라?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강사가 종종 기업의 재무구조를 이야기하고 분식회계 관련 썰을 풀어주니 뭔가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온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점차 제대로 한 번 공부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어졌고 결국 나는 '재경관리사' 자격증 이라는 다소 의외의 도전까지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중에서 보면 참 괜찮은 도전이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이 도전을 매우 큰 리스크라고 판단했다. 제대 시점이 매력적이었기에 나는 서너 달 동안 괜찮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놀 수 있는 것도 덤으로 언질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자격증 취득은 내가 회계를 전혀 공부해보지도 않았고(1학년 때 졸면서 들은 회계학 원론이 전부) 준비 비용은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지원 받아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는 이제 겨우 군대에서 탈출 했는데 또 다시 뭔가를 배우려 한다는 게 영 마뜩치 않았다. 그냥 취미로 인강 몇 개 본 걸 가지고 이걸로 호들갑을 떨려 하는 내 모습이 못 미더워 보인 것이다. 놀고 싶은 마음도 여전했고 아직 스스로에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회계 교양서를 단순히 읽는 것은 즐거웠는데 이걸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있지 않을 것 같았다. 꽤 여러가지로 복잡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내가 돌아서게 된 것은 한 번 빠질 때 제대로 빠져보자라는 생각이 나를 좀 더 자격증을 준비해보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어찌보면 이것도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2 말에 처음으로 역사에서 경제로 관심사가 바뀌었고 그 이후로 지속해서 경제 교양서를 파다 이번에 또 이렇게 세부 항목으로 관심이 깊어지게 되었다. 사실 이런 기회들이 살면서 흔치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나는 내가 역사에서 경제로 관심이 바뀔 줄 한 번도 예상해 보지 못했으니까) 나는 눈을 딱 감고 한 번 베팅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떨어져도 회계에 대해 아쉽지 않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이 지식은 내가 경제를 좋아한다면 써먹을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다(이 때 처음 인생에서 '기회비용'이란 것을 피부로 체감한 것 같다) 리스크에 대한 부담은 여전했지만 당시는 배움의 열망이 사회활동 욕구보다는 조금 더 높은 것 같았다. 그렇게 결국 나는 이 선택으로 인해 눈물나고 피말리는 수험시절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장래까지 영향을 미치는 삶에서 첫 번째 동기를 제공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