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oana Nov 05. 2024

치욕적이었던 전투화 발 냄새 사건

나는 평소에도 발에 땀이 많은 체질이다. 거기에 활동적이기까지 하니 무좀에 쉽게 걸린다. 대학교 1학년 때는 무좀 때문에 기숙사 사람들에게 민망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고 창피함을 무릎 쓰고 한동안은 발가락 양말을 신어보기도 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실내화에 땀이 솔솔 차고 있다. 


발 냄새 때문에 겪은 아주 치욕적인 사건을 소개하자면 군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뭐 사실 군대에서 무좀 한 번 안 걸리고 발 냄새 정도 안 난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그걸로 인해 대대적으로 망신을 당한 것은 나에겐 정말 큰 충격이었다. 그 땐 화장실이 생리활동을 위한 공간으로만 여기지 않았을 정도니까.


우리 부대 안에는 로비에 전투화를 살균 보관하는 큰 신발장이 있었다. 그래서 평소에 발에 땀이 많이 나고 전투화가 잘 젖는 장병들은 보통 자신의 관물대가 아닌 살균 신발장에 전투화를 보관했다. 갓 상병 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발에 땀이 너무 많이 차 벗기만 하면 양말에서 아주 고약한 냄새가 올라왔다. 심지어 양말은 늘 축축히 젖어 있었고 거기에 나오는 땀은 전투화까지 베어 안에도 냄새가 스며들고 있었다. 그 때 당시엔 그게 무좀인지 뭔지의 원인을 잘 몰랐다. 무좀이라 하면 발가락이 간지러워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았고 유독이 땀만 지나치게 많이 차올랐다.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눈치 챘다면 간부에게 얘기해서 배려를 받었어야 했는데 창피함이 몰려 그럴 자신이 없었다. 이제는 도저히 관물대에 전투화를 보관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신발을 벗으면 전투화 발냄새가 생활관 내에까지 퍼져 버렸던 것이다. 나는 신문지를 돌돌 말아 전투화에 넣고 살균 신발장에 보관해 가며 마음을 졸인 채 이 사단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어떤 병사가 살균 보관함에서 신발을 꺼내려는데 그 안에서 역한 냄새가 풍기자 비명을 지르고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구경거리에 관심이 있는 병사들은 그 주위에 몰려 들었고 대체 어떤 신발이 그런 고약한 내를 풍기는지 수군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여기에는 나를 가장 폐급 취급하는 생활관 선임(군대에서는 어디서나 존재하는 악마 같은 선임이다)도 있었다. 그 선임도 도대체 어떤 놈이냐고 하면서 범인 찾기에 안날이 나 있었다. 잠깐 밖에 나갔다가 난리가 난 상황을 목도하게 된 나는 그야말로 얼굴이 창백해져 머리가 삐쭉삐쭉 서버렸다. 밀려오는 수치심과 창피함이 머리 끝까지 올라왔고 바지에는 당장 오줌이라도 나올 기세였다. 진짜 탈영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선임에게 내 신발이라고 말하고는 '죄송합니다'를 연신 반복했다. 


밀려오는 비아냥과 수건거림을 온 몸으로 감당한 채 신발을 부대 밖에서 말리는 것으로 조치를 받았다. 곧 악마 선임에게 일상적인 쌍욕을 쳐 먹었다. 사실 나는 갈굼 정도는 금방 견딜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무리 자존심이 짓밞힌다 한들 매번 쳐먹어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는 사정이 다르더라. 내가 느끼는 자존감이 완전히 바닥으로 내려 꽂아 정신이 돌 직전이었다. 내 평생 살다가 이런 거지같은 상황에서 욕을 쳐먹는 게 한심하고 쓰레기 같아서 였다. 군대에서 죽고 싶다는 마음도 아마 이때가 처음이지 않았을 듯 싶다. 일·이병도 아니고 이제 상병인데.. 그 수근거림 속에는 나 보다 후임인 애들도 있었을 텐데.. 그 상황을 떠올리자니 도저히 부대에서 생활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냥 악마 선임이 갈구는 대로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완전히 얼이 나가 있었다. 


아마 그 사건 이후 포대장실로 가 면담을 했었던 것 같다. 포대장은 내 혈색부터 걱정 되었는지 나를 극진히 살펴하는 것 같았다. 상병까지 돼서 부대 내 적응 문제로 면담을 받는 것도 쪽팔리고 관심병사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주옥 같았지만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말 한마디면 폐급이 되는 대신 군 생활은 편해질 수 있었다. 이미 내가 저지른 상황은 바지에 똥을 싼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체생활이고 뭐고 필요 없고 그냥 못 버티겠다고 말하기만 하면 근무 빠지고 업무에서 배제되고 알아서 시간만 가다가 전역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놈의 같잖은 자존심인데도 참.. 상하더라. 그래도 겨우 버텨 상병까지 됐는데.. 인정은 못 받더라도 생활관 안에서 내 역할은 다 하고 싶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잘 적응해서 군 생활을 하겠다고 포대장에게 이야기 했다. 그 후 며칠 뒤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했다. 상병이 돼서 기분이 좋다며 부대에서 잘 나가고 있다고 피눈물 나는 거지말을 했다. 발 냄새 때문에 부대가 왈칵 뒤집힌 것도, 다른 마음을 먹어봤다는 사실도 부모님은 아마 꿈에도 모르실 것이다. 


이후의 조치로 다행히 나는 당분간 전투화 신는 것이 면제 되었다. 활동화로 업무를 보는 것이 허락 되었으며 나 역시 끝나면 발의 청결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건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